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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그게 정확하게 뭐임?

사실 나도 잘 몰라

by 끄적끄적 Mar 31. 2025

“끝났습니다. 단 한방에 게임이 끝났어요.”

“정말 예술같은 장면입니다.”


브런치 글 이미지 1

[ 2024 롤드컵 T1 우승 ]


 여러 스포츠경기들을 보면 한 번씩 나오는 해설들이 있다. 


‘예술같은 장면입니다.’


 왜 그 많고 많은 표현 중에서 예술이라는 단어를 선택했을까? 스포츠 경기 뿐 아니라 파스텔톤으로 색을 채운 하늘이나 선명하다 못해 동공을 의심할 정도로 파랗게 빛나는 바다를 보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그림 같다는 말을 입에 붙이고는 한다.


 어쩌면 예술이라는 것은 인간이 자연스럽게 감명받거나 울림을 느끼는 그 무언가가 외적으로 표현되는 그 자체를 의미하는 게 아닐까 싶다.


“진짜 그림 너무 멋있지 않아?”

“어떻게 노래를 그렇게 부르냐?”

“연출 진짜 미쳤다.”

“그 구절을 읽는데 순간 온몸이 찌릿하더라.”


 완벽하게 정의되지도 않고 획일적으로 정립할 수도 없지만 우리는 무언가에 대한 감동을 느낄 때 누군가의 공감을 바라게 된다.


‘나만 그렇게 느끼는 거 아니지?’


 자신이 느꼈던 그 순간의 희열과 감동을 혼자만 느꼈음을 아니기를 바라며. 누군가에게 기대어서 사는 게 사회동물인 인간의 본능이기에 아마 예술로 통해 느껴지는 자신만의 자극을 누군가 함께 공감해 주기를 원하는 게 아닐까 싶다. 때로는 가까운 누군가에게 내가 느낀 그 감정을 공유하기 위해. 또는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누군가에게 내가 가진 취향의 대중성과 위대함을 알리기 위해.


“아... 난 사실 그렇게 잘은 모르겠더라. 이거랑 이거랑 뭐가 그렇게 큰 차이가 있는 거야? 두 개 차이가 있나?”


 예술의 고고함에 빠져있는 누군가에게 꼭 한, 두 명씩 이런 질문들을 하고는 한다. 사실, 나도 한 번씩 저런 부류 중 한 명이 되고는 한다.


“찐이랑 짭이랑 진짜로 구분을 할 수가 있어?”

“이게 그렇게 큰 의미가 있는 거야?”


 어쩔 때는 내가 막눈, 막귀인 것 같다가도 수많은 사람들이 내가 의문을 가진 무언가에 열렬히 환호하는 걸 보면 내가 이상한 건가 하는 의문에 빠지기도 한다.


“그냥 개인취향이지. 뭘 그렇게 따지냐? 그냥 싫으면 안 보면 되고, 좋으면 보면 되는 거지.”


 가장 맞는 말인 것 같다. 사람들의 취향을 특정해서 한 가지로 꼬집기는 조금 어려운 것 같다. 모든 것이 미세하게나마 차이가 있을 것이고 취향이란 것도 저마다의 호불호가 있을 것인데 예술이라는 잣대를 객관적인 지표로 만들기는 어려운 것 같다. 주관적인 관점에 따라 내가 예술이라는 객체를 얼마나 애호하는지가 그 사람을 취향일 것이고 나와 비슷한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하나의 조그만 대중이 되는 것 같다. 그러나, 그것과는 별개로 무언가 절대적인 무언가는 있는 것 같다.


스탕달 증후군

- 예술 작품이나 아름다운 경관을 접했을 때, 극도의 감동과 흥분을 느껴 신체적, 정신적 증상을 경험하는 현상


브런치 글 이미지 2

[ 스크로베니 예배당 벽화 ]


 스크로베니 예배당 벽화는 수많은 사람들에게서 스탕달 증후군을 일으킨 작품이라고 한다. 도대체 얼마나 아름답길래 사람들이 호흡곤란이 오거나 어지러움을 느낄까 싶다. 아니면 우리는 알게 모르게 이미 스탕달 증후군과 비슷한 증세를 한 번 느끼지 않았을까 싶다.


브런치 글 이미지 3

[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 ]


“돌아와서 구두 완성한다고 했잖아요. 이러고 있으면 어떻게 해요?”


 어렸을 때 봤지만 당시 정말 많은 눈물을 흘렸던 영화다. ‘태극기 휘날리며’의 마지막 장면이 나올 때 영화관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입을 막고 울고 있었다. 누군가는 터져 나오는 울음을 막기 위해 간신히 순간을 버티고 있었고 누군가는 흐르는 눈물을 막지 못하고 그대로 울음을 흘려보냈다. 분단의 아픔을 직접적으로 경험한 사람들이 대부분 없을 텐데도 불구하고 그 순간 수많은 사람들은 동시에 같은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Lazenca. Save us.”


 몇 년 전 하현우가 ‘음악대장’이라는 이름으로 가면을 쓰고 복면가왕이라는 프로그램에 나왔을 때는 수많은 사람들이 전율을 느꼈고, 꽤나 많은 사람들이 노래방에서 통곡의 벽 같은 높은 음역대에 도전했다가 목이 갈라지는 경험을 했다.


“100억 빚이 있는 차은우와 연애하기 vs 100억 자산이 있는 얘랑...”

“차은우.”


 예술품이라고 불려질 정도로 잘생긴 얼굴에도 우리는 다들 비슷한 감정을 가진다. 


“갖고 싶다. 저 얼굴.”

“다음 생에는 저 얼굴로 태어나고 싶다.”


 객관적인 지표는 없지만 압도적인 것에는 예술이라는 방면에도 꽤나 절대적이 기준이 존재하는 것 같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린아이들에 게도 이쁜 것과 이쁘지 않은 것에 대한 선호도는 가감 없이 나타나기에 개인적으로 예술이라는 기준은 꽤나 절대적인 선이 존재하는 것 같다. 다만 그것이 어떻게 표현되느냐의 차이일 뿐이고 어떻게 각색되느냐의 차이일 뿐이지. 사실, 예술에도 어느 정도의 가스라이팅은 있는 것 같다. 오히려, 내가 트루먼쇼의 주인공인가 싶을 때도 있고 말이다.


“와... 진짜 미쳤다. 너무 좋은데?”

“진짜 미친놈이냐? 이게 좋다고?”


 같은 만화를 보고 남녀가 각기 다른 반응을 보이고, 같은 음악을 듣고 각자는 서로 다른 평가를 한다. 내 이야기가 맞는 건가 싶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타인의 말이 옳을 때가 있고, 나 혼자만 다른 기준선에 살아가는 것 같다가도 뒤에서 은근히 내 의견에 옹호를 하는 사람들이 나올 때가 있다. 그런데, 사실 이건 예술이라는 것에만 한정된 이야기는 아니고 사람이 살아가는 모든 전반에 걸쳐진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예술이라는 존재에만 국한된 특수성은 아닌 것 같다는 말이다.


“무언가를 표현할 수만 있다면 그 누구나 예술가가 될 수 있다.”


 나는 누구나 예술을 할 수 있다는 주의이다.


브런치 글 이미지 4

[ 영화 '라따뚜이' ]


“Anyone can cook.”


 애니메이션 영화 ‘라따뚜이’에서 나오는 대사 중 하나이다. 태생의 귀천이나 존재의 차이에 상관없이 재능과 열정이 있다면 누구나 요리를 할 수 있다. 영화의 인물 중 독설을 사랑하는 평론가 ‘안토니오 이고’가 ‘누구나 음식을 할 수 있다,’라는 말을 반박하기 위해 주인공 ‘링귀니’가 있는 레스토랑에 혹평을 남기러 가지만 쥐가 만든 음식을 먹고 자신의 생각이 틀렸음을 인정하는 장면이 나온다. 아마, 영화에서 나오는 말처럼 누구나 요리를 할 수 있듯이 나는 누구나 예술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아무나’ 예술가로 성공할 수는 없겠지. 꽤나 긴 인고의 시간이 필요할 수도 있겠고, 꽤나 피나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개나 소나 다 예술하냐?"

"꼭 그런 건 아닌데 입으로만 예술하는 개랑 소가 많기는 하더라."


 진입장벽이 낮은 분야일수록 정점에 서기란 더 어려운 법이다. 모든 분야에는 고수가 존재하고 수많은 직종에는 장인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누구나 예술은 할 수 있겠지만 누구나 인정받기 힘든 것이 아마 예술의 세계가 아닌가 싶다. 그런데, 진짜 요즘은 무슨 글을 써도 다 세상에 나와있는 걸 따라 하는 느낌이지? 이런 게 휴먼 기믹인 건가? 근데 기믹도 잘하면 샤라웃 아닌가? 흠... 힙합은 잘 몰라서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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