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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강 혹은 파랑. 당신의 선택은?

이건 정치 이야기가 아닙니다. 정치이야기를 원하시는 분은 뒤로 가기를..

by 심색필 SSF

흑과 백. 적과 청. 당신의 선택은 무엇인가? ( 참고로, 이건 정치와 관련된 이야기가 아니다. ) 혹시, 매트릭스를 본 적이 있나? 네오에게 나타난 매트릭스의 사람들은 그에게 두 가지 약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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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매트릭스' ]


레드필과 블루필. 불편한 진실을 마주할 것인가? 아니면 꿈속에서 안락한 환상에 만족할 것인가? 당신은 선택은 무엇입니까?


“당신은 꿈을 이루기 위해 무엇을 했습니까?”


유튜브의 동기부여 영상에 나오는 수십 개의 썸네일에 박힌 문구들. 인간이 동물의 가장 큰 차이점은 이상을 쫓고 꿈을 꾸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살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하다. 단순히 생존과 번식을 위해 호르몬과 DNA가 시키는 대로 움직이는 것이 아닌 자기만족과 가치실현에 초점을 둘 수 있다는 것. 그게 인간이 가진 축복이자 저주가 아닌가 싶다. 어쩌면 꿈을 이루기 위해 살아가지만 꿈속에서 살기는 사실 그 말 자체가 조금 역설적이기도 하다.


“꿈속에 살면 꿈을 이루고자 하는 그 욕망이 실현된 거 아닌가?”


맞는 말 같기도 하지만 뭔가 조금 그 느낌이 다른 것 같다. 성취와 과정이 없이 그냥 생각하는 대로 꿈꾸는 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면 과연 그 성공은 달콤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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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 웹툰 '뷰티풀 군바리' ]


“하... 이 맛이 아닌데...”


네이버 웹툰 ‘뷰티풀 군바리’에서 한 부잣집 출신의 의경이 추운 날 근무를 서고 먹는 라면에서 쾌감을 느끼는 장면이 나온다. 평상시에 먹는 라면과 추운 날 고생하고 나서 먹는 라면의 차이. 같은 재료, 같은 스프가 들어간 라면임에도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먹었느냐에 따라 그 맛의 차이가 현격한데 누군가에게는 평생의 소원이자 숙원이 되는 꿈은 얼마나 더 큰 낙차가 존재할까? 굳이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꿈에서만 사는 걸 거부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난 그래도 내가 사는 이 세상이 프로그램이고 허구의 세상이라고 한다면 굳이 깨고 싶지 않은데?”


화장실에서 갑자기 가죽재킷을 입은 사람들이 우르르 려와 내게 두 가지 약을 준다면 과연 나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뭐... 일단 방으로 도망쳐서 신고부터 하겠지. 그게 매트릭스에서 온 놈들인지 아니면 그냥 집 쳐들어온 도둑인지 어떻게 알아?”


그렇지. 신고부터 해야지. 내 집에 허락도 없이 들어온 그 인간들은 이 블루필의 세상에서는 확실히 주거침입을 한 범죄자일 뿐이다. 레드필의 세상에서는 구국의 영웅이자, 기계로부터 세상을 보호하는 구원자일 수 있지만 일단 내 집에 마음대로 들어왔으니 서에 가서 제대로 얘기를 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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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시리즈 '러브 데스 로봇' ]


사실 영화에서 키아누 리브스라는 배우가 레드필을 먹고 세상을 구하기 위해 정진하며 인류를 구원하는 서사가 있지 않았다면 우리는 쉽게 레드필을 먹기 어려웠을 것이다. 내용은 다르지만 살짝 비슷한 형태의 이야기가 있다. 넷플릭스 시리즈 ‘러브 데스 로봇’ 에피소드 중 ‘독수리자리 너머’. 스포를 방지하기 위해 이 짧은 단편영화의 이야기를 풀지는 않겠지만 해당 영상을 보고 나면 진실을 목도하는 게 그렇게 좋은 것만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데... 그런 논리라면 마약을 먹고 뿅 가는 환각에 빠지는 것도 괜찮다는 거야?”


뭐... 뿅 가보지 않아서 모르겠다만 과연 약으로 만들어진 환각이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꿈을 보여줄 수 있을까 싶다.


“성공에는 지름길이 없다.”

공부던, 운동이던 사람들은 일정 한계치에 도달하기까지 지름길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물론, 약을 써서 몸을 좋게 하던가 편법을 써서 어느 수준 이상으로 도달하는 인간들이 있다고는 하지만 과연 스스로에게 떳떳할까? 현실을 마주하기 싫어서 레드필을 먹을 용기도 없는 사람들이 약으로 꿈보다 더 꿈같은 세상을 보고 싶다는 건 지나친 만용이 아닐까 싶다. 만약에 이 세상이 정말로 프로그램이라면 소위 약쟁이들이 부작용에 시달리는 게 올바른 설정값을 만들어 놓은 게 아닌가 싶다.


“어... 왜 이거 아이템 없어졌지?”
“캐시템은 원래 일정 시간 지나면 사라져요.”


육체던지 정신이던지 각자가 가지고 있는 총량의 법칙이 있을 건데 천천히 노력으로 그 총량을 키운 게 아니라 억지로 약을 통해 그 총량을 키워낸 거라면 부작용이 있겠지. 그리고, 프로그래머의 입장에서 봤을 때 약을 쓰는 NPC는 버그로 간주하지 않을까?


“그냥 타고난 사람들이 있잖아. 마치 하늘에서 내려준 것 같은 그런 사람들.”

“그러니까 희귀템 혹은 희귀 속성이라 그러겠지. 괜히 희귀겠어?”


살다 보면 사람들은 참 그런 말에 집착을 하는 것 같다. 천재, 재능, 희귀. 언젠가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사람들은 노력해서 무언가를 잘해졌다는 이야기보다 천재라서 무언가를 잘한다는 소리를 더 좋아하더라고. 노력을 해서 성장하는데 포인트가 있는 게 아니라 그 노력이라는 과정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때문에 천재라는 말을 더 애정하게 되는 것 같아.”


천재라는 말을 동경하는 이유는 부러움도 있겠지만 그 사람의 말대로 어쩌면 노력에 대한 두려움을 피하기 위해 만들어진 일종의 경외심에서 비롯된 것 같다. 사실, 천재라는 자들이 그 천재라는 타이틀을 유지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도 모르면서 단순히 재능이라는 단어로 그들을 치부하기에는 우리의 질투는 생각보다 몰상식하고 염치없지 않을까?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어쩌면 우리 삶의 불편한 진리는 천재의 노력일 수도 있다.


“나도 저 정도 재능이면 당연히 운동했지.”

“나도 저렇게 생겼으면 당연히 연예인 했지.”
“나도 IQ 150이었으면 공부했지.”


_There are a few blue pills hidden inside the hamburger 16-04-2025 at 04-34-21.jpeg


유튜브를 보고 한 손에 든 햄버거를 먹으면서 이 얘기를 하고 있겠지. 그 햄버거 안에 얼마나 많은 블루필이 들어있는지도 모른 채 말이다. 물론, 블루필이 완전히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아... 진짜 어쩌다 세상이 이렇게 됐냐?”

“세상은 나 같은 둔재가 살기에는 너무 척박하고 차가워. 노력해도 이 세상에서 주인공이 되기란 불가능해.”

“나는 이미 도태됐지. 실패란 것도 습관이야. 나는 이제 이 실패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가 없어.”


A single red pill sits atop a bowl of savory white beef bone broth tteokguk, like a garnish 16-04-2025 at 04-37-20.jpeg


순수와 낭만으로 가득 차있던 유년시절에 비해 우리는 한해를 지날 때마다 떡국에 한 살과 함께 현실이라는 레드필을 삼킨다. 나이가 먹으면서 이상은 몽상처럼 느껴지고 꿈은 덧없는 구름처럼 느껴지는 건 불편한 현실에 적응하는 레드필을 조금씩 먹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만약, 당신 앞에 누군가가 찾아와 두 색깔의 약을 건넨다면 당신은 무엇을 먹을 것인가?


“빨간색 혹은 파란색 둘 중 무엇을 택할 겁니까?”


나도 어떤 결정을 할지는 모르겠다. 과연 뭐가 더 나을까? 빨간색? 아니면 파란색? 흠... 다시 한번 말하지만 진짜로 정치 얘기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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