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는 비가 온다고 하네요.
-쏴아아 아아아.-
잠에 들기 전 항상 켜두는 유튜브 영상이 있다.
‘잠이 잘 오는 빗소리.’
밤에 쉽사리 잠에 들지 못하게 된 지 꽤 되었다. 12시만 되면 눈이 말똥말똥해지고 정신이 맑아진다. 몸뚱아리가 뭔가를 더 하고 싶다는 듯 꿋꿋이 버티며 잠에 빠지기를 거부한다.
“자지 마. 이 시간이 제일 재밌잖아.”
저녁 10시가 지나가면 더 맛있는 야식들. 이상하게 그 시간만 되면 재밌는 영상들이 수두룩하게 나오는 이해할 수 없는 유튜브 알고리즘. 하루를 어떻게 살았는지 저마다의 방법으로 기록하는 인스타의 글들과 한 번 보면 쉽사리 빠져나오기 힘든 릴스의 늪까지. 이상하게 그 시간만 되면 세상에 재밌는 것들이 터져 나온다.
“하아... 이러다가 날 새겠네.”
실제로 그러다가 날을 샌 적이 하루이틀이 아니다. 오지 않는 잠을 억지로 자려고 버둥거리다가 해가 뜨고 나서야 눈을 감을 때도 있고 한두 잔의 술이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에 점점 늘어난 혼술력은 양주 반 병을 비우고 나서야 잠에 취하는 지경까지 오게 만들기도 하였다.
“수면보조제라도 먹어봐.”
“그거 진짜 괜찮아?”
“괜찮다는데.”
색 자체가 아름다웠던 새파란 알약과 한눈에 봐서는 비타민과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이는 하얀색 알약. 두 약을 사보고 먹어보았다.
“아... 왜 이렇게 몽롱하지?”
확실히 효과는 좋았다. 문제는 다음날이었다. 이상하게 조금 몽롱한 것 같은 느낌과 몸이 축 처진듯한 느낌. 파란색 알약은 뭔가 감기약을 먹고 몸이 느슨해지는 그런 느낌이 났고 하얀색 알약은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조금 몸이 무거운 느낌이 났다. 뭐... 원래도 몸이 조금 무거운 편이긴 하지만 그 정도인 줄 몰랐던 거지.
“그래도 잠은 잘 잤나 보네.”
“그렇기는 한데... 뭔가 좀 낯설다.”
한동안 밤낮이 바뀐 채 살아오다 오랜만에 아침해를 마주하니 어색했다. 그리고, 신기했다.
오전이라는 시간이 이렇게 길었구나.
아침 햇살이 생각보다 훨씬 더 이뻤구나.
꽃들이 만발하는 4월이라는 계절. 여름이 찾아오기 전 마지막으로 여유를 즐기라는 듯 불어오는 선선한 봄바람과 그 바람에 섞인 향기로운 꽃내음까지. 짙은 어둠이 깔린 밤공기에서는 느낄 수 없는 그런 신선함이 있었다.
“아이스티 하나 주세요.”
집에서는 도저히 일이 잡히지 않아 오전부터 카페로 출근을 했다. 오픈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카페에는 나와 같은 사람들이 많았다. 책을 가지고 공부를 하러 온 사람들. 삼삼오오 모여 과제를 하는 사람들. 마땅한 회의실이 없어 모서리 한 켠에 모여 사업구상을 하는 사람들. 아침이지만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카페에 와서 저마다의 일을 하고 있었다.
“다들 열심히 살고 있었구나.”
새벽까지 글을 쓰고 해가 뜰 때쯤 작업을 마치면 뭔가 뿌듯할 때가 있었다. 남들이 자는 시간에 그래도 뭔가를 하고 있었구나. 그래도 살아가려고 뭔가를 하고 있었구나. 그렇게 이른 시간도 아닌 오전 10시. 내가 자고 있는 시간에 사람들은 당연히 밖을 나와 일을 하고 있었고 오렌지 빛깔의 노을이 세상에 퍼져나가면 그제야 사람들은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살고 있었고, 그게 당연한 삶이었다. 뿌듯함이라는 감정 없이 당연스럽게 그런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하루가 망가진 건 나였는데 세상이 밝아지는 모습을 보며 내 인생에도 저렇게 빛이 들 거라는 착각으로 자위를 했던 것 같다.
“이번에 일이 조금 밀려서...”
“우선 잠시 홀드 해주실 수 있나요?”
막상 눈앞에 닥친 위기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으면서 면밀한 대책 없이 곧 내 인생이 나아지겠지라는 막연한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 무한도전 '위기의 회사원' 편 ]
“진짜 위기는 무엇인지 아십니까? 위기인데도 불구하고 위기인 것을 모르는 것이 진짜 위기입니다. 그것보다
더 큰 위기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위기인 걸 알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더 큰 위기입니다.”
무한도전에서 유재석 님이 하신 이야기다. 최근에 뭔가 굉장히 억눌려있기도 하고 힘이 빠져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무기력해진 느낌이라고 할까? 위기인 것을 알고 이런저런 시도를 꾸준히 해왔지만 답이 보이지 않았고 무언가를 할 때마다 번번이 뭔가에 막혔다. 경기가 좋지 않아서, 상황이 좋지 않아서, 일감이 없어서. 누구나 할 수 있는 소리였고 대안을 가질 수 없는 상황들이 많았다.
“노력한다고 다 되는 건 아니네.”
열심히 발버둥 치면 발버둥 칠수록 가파른 절벽에서 점점 더 힘이 빠지는 느낌이었다. 언제라도 저 높은 절벽 아래로 떨어질 것 같은 느낌. 그리고, 이렇게 힘이 들 거라면 그냥 떨어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그런 생각.
“공모전 얼마 남았어?”
“한 2주?”
“글은 잘 써져?”
“어... 생각보다 잘 써지긴 하네.”
최근 공모전 일정에 맞춰서 꽤나 많은 글을 토해냈다. 분명히 성과를 기대하기는 어려웠고 당장의 수익과는 직결되지 않는 그런 작업이었음에도 뭔가 행복했다. 무언가를 꾸준히 하고 있다는 생각에, 무너지지 않고 그래도 계속해서 도전하고 있다는 사실에. 그러나, 최근 그런 행복감이 과연 옳은 것인지 조금 의문이었다. 아침 해가 뜨는 걸 보면서 자부심을 가졌던 한심한 내 생활패턴처럼 말이다. 혼자만의 글에 빠져 너무도 당연한 지구의 공전과 자전, 일출과 일몰에 지나치게 내 운명을 기대한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했다.
-두두두두두.-
비가 올 때 느껴지는 청량감과 시원함에 쉽게 매료되었던 거 지금 내 상황이 너무 퍽퍽하고 메말라서였던 것
같다. 조금만 방심을 해도 사막의 모래폭풍처럼 건조한 바람에 모든 것이 말라가는 이 상황에 쉽사리 잠을 자지 못했던 것 같다. 언젠가 단비가 내려줬으면 해서 계속해서 땅을 향해 노크를 하는 빗소리에 쉽게 무장해제가 되었던 것 같다. 즐거운 소식과 기다리던 택배가 집압에 도착을 하듯 그런 청아한 빗소리가 내게도 왔으면 좋겠어서. 그래서 그랬던 것 같다.
“그래서 지금 당장은 어떻게 하게?”
“뭐... 방법이 없잖아. 일단 할 수 있는 건 다 해야지.”
“글은?”
“지금도 쓰고 있어.”
“언제쯤 보여주게?”
“언젠간. 볼 수 있겠지. 언젠가는. 쓰기는 다 썼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