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알루다가 억울하긴 할 듯
맥도날드 ‘더블 더블 쿼터파운더 치즈버거’
[ 맥도날드 '더블 쿼터 파운드 치즈버거 세트' ]
중량 275g
열랑 770kcal
당 10g
단백질 50g
포화지방 20g
나트륨 1,151g
단품 7400원 / 세트 9100원으로 구성된 한 끼 식사. 남성 하루 식사 권장량 2500kcal로 보았을 때 꽤나 준수한 식단이 아닐 수 없다. 충분한 단백질, 적절한 탄수화물, 물론 다른 버거들에 비해 야채가 조금 적은 건 아쉽긴 하지만. 나름 든든한 고기위주의 버거 계열로 치환했을 때 이 정도면 꽤나 건강한 식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패스트푸드 몸에 안 좋아. 집밥이 최고지.”
햄버거 입장에서 들으면 정말 기가 찰 노릇이 아닐까? 탄단지를 적절하게 지켰으며 식약처의 기준에도 입각한 내용으로 만들어졌는데 왜 이런 프레임을 달고 살아야 하는 건지 싶을 거다.
“햄버거가 패스트푸드라는 이유만으로 건강하지 않다고 말하는 건 역차별이다.”
“편항된 언론은 어서 정정보도를 내고 사과하라.”
만약에 햄버거가 사람이었다면 이미 거리 한복판에서 시위가 낫겠지? 가지각색의 햄버거들이 있고 햄버거들도 각자 자기의 사정을 대변하면서 서로의 다름을 주장할 것이다.
“저희는 수제라서 상관없는 이야기입니다.”
“그냥 싸고 빠른 맛에 먹는 거지. 건강식까지 노리는 건 좀 몰염치 아닌가?”
“저희 편의점 버거는 해당 시위와 일절 관련이 없습니다.”
햄버거끼리도 꽤나 파벌싸움이 일어날 것이다. 자신의 출생을 따지며 서로 다른 브랜드를 폄하하고 자신의 브랜드를 치켜세우는 행동을 하겠지. 아마, 그 과정에서 자기가 속한 브랜드에 대한 자부심을 조성하는 과정을 만들 것이다.
“우리 브랜드는 할인율이 너희들과는 달라. 모두가 햄버거를 부담 없이 먹는 세상을 지향한다고.”
“초밥의 생명이 샤리인 것처럼 우리는 다른 브랜드들보다 번에 훨씬 더 힘을 썼다. 이 말이야. 어디 공장에서 무분별하게 찍어내는 싸구려 탄수화물 브랜드들이랑 우리를 비교하나?”
“이게 뭔 개소리지? 버거를 먹는 이유는 패티에 있어. 다른 건 몰라도 우리 브랜드가 치킨 패티 하나만큼은 절대 다른 브랜드에 밀리지 않는다고.”
“미안한데 치킨버거를 햄버거의 본국인 미국에서는 치킨 샌드위치라고 하는 거 아니? 출신성분도 모르면서 그냥 이름 끼워 맞추지 말고 좀 빠져줄래? 그리고, 도전정신없이 매번 그렇고 그런 버거들 출시하는 너희들이 버거 자부심 운운하기에는 너무 웃기지 않나? 잘 팔리는 거 몇 개로 아직도 우려먹는 주제에.”
“일단 틀린 거 하나만 알려주면 햄버거의 본고장은 미국이 아니야. 햄버거도 원래 독일에서 유래되었다는 이야기가 있고 그 유래도 과거 몽골제국이 유럽을 침략할 때 엉덩이 밑에 고기를 넣고 말을 타면서 으깨진 고기를 먹으며 진군을 했다는 유래도 있어. 역사적으로 봤을 때 이 햄버거의...”
아마 자신들이 포함된 브랜드의 건강함을 어필하려고 모인 자리에서 그들은 스스로의 다름을 증명하기 위해 싸우기 시작하다가 점점 대화가 산으로 가고 그들이 모인 본질에 대해서 잊게 될 것이다. 햄버거의 강점은 모아서 한 입에 먹을수록 그 장점이 극대화되는 것인데 본인들의 청렴함을 증명하기 위해 스스로를 하나씩 분리하다가 그 강점은 완전히 잊게 되는 그런 상황에 빠지게 되겠지.
“저렇게 지들끼리 싸우는 꼴 보니까 믿음이 가지 않는다.”
“그러니까. 끼리끼리 모였네. 뭐 건강한 건 모르겠고 좀 그래 보이긴 한다?”
“잘됐어. 안 그래도 요즘 비슷한 가격에 다른 거 많이 나왔던데. 난 그거나 먹으러 가련다.”
분탕질하라고 만든 판에 빠진 이들은 허우적거리다가 ‘햄버거’라는 이름으로 연관된 모두를 힘들게 만들겠지. 아마, 그러면 웃는 자들은 따로 있을 것이다.
“에휴... 지들끼리 싸워서 다행이다. 이러면 가격이 조금 더 떨어지겠지?”
“그렇겠지. 이러나저러나 결국 차별화의 극의는 가격이니까.”
휘말리면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사람들의 입방아에 여기저기서 떠도는 뉴스에 결국 그들의 페이스에 말려들어 가장 원치 않는 그런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꽤나 많은 이들이 호황이었던 과거를 그리워할 것이고 꽤나 많은 이들이 고난을 이기지 못하고 다른 일을 찾아보겠지.
“하아... 치킨버거 너도 이제 그만둔다며?”
“어. 나도 다른 일 찾아봐야지.”
“그래서 이제 뭐 하려고?”
“옆집에 치킨 샐러드 포케인가? 뭐시기? 그게 잘 된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나도 거기 면접이나 한 번 보려고. 너는?”
“난 뭐 갈 때가 있나? 칼국수 고명으로 한 번 지원해 보게.”
“거기도 빡세지 않아?”
“빡세지. 파스타보다 훨씬 어려운데 가격 조금만 높이면 사람들이 일단 꺼려하니까.”
“아니. 근데 생각해 보니까 파스타 이 새끼들은 왜...”
[ 만개의 레시피 '알리오 올리오' ]
같은 불길이라도 스스로가 선택해 자신을 단련한 불길과 누군가의 손가락질과 모함에 화상 입은 마음은 그 고통이 다를 것이다. 그 불길에 조금이라도 아픔을 경험한 누군가는 자신이 고통받은 만큼 다른 누군가도 아프길 원할 것이다. 그러면 안 되지만 나만 당하는 이 세상이 원망스럽겠지. 정직한 정보와 그 정보에 대한 정확한 배경을 토대로 주장을 해야 하는데 요즘은 누구나 다 확성기에 대고 소리를 지르는 세상이 된 것 같다. 목소리가 크고 그 목소리에 호응해 주는 사람이 많으면 그 사람의 말은 진실이 되는 것인가?
“요즘에 뉴스를 잘 안 봐.”
“왜?”
“그냥 좀 안 보게 되더라고.”
나도 최근에 뉴스를 점점 더 경시하게 된다. 하루가 다르게 입장이 바뀌는 뉴스들을 보고 있자면 제대로 된 결과가 나올 때까지 침묵을 하는 게 나은 것 같았다. 그런데, 요즘은 그마저도 잘 안 하게 되는 것이 결과를 해석하는 입장이 너무나 극명하게 반대되다 보니 지금 내가 보고 듣는 이 세상이 맞는 것인지 혼란스러울 때가 많다. 마치, 요즘 이 세상에 조금 버그가 걸린 것 같다고 해야 하나?
“말했잖아. 이 세상은 프로그램이라니까. 사람이 너무 많으니까 인구수 조절 들어가려고 버그 깔기 시작하는 거야.”
“언제는 인간이 바이러스라며?”
“내가?”
“아니. 너 말고. 꽤나 많은 과학자들이.”
“그거야 뭐 시대에 따라 트렌드 바뀌듯이 가설이 좀 바뀌는 거지.”
“참나... 조만간 ‘1+1=2’도 바뀌겠다? 트렌드에 따라서?”
“모르지. 그래서 오늘 저녁은 뭐 먹을 건데?”
트렌드에 따라서 이론도 바뀌고 사람들이 생각도 바뀌는 세상이라지만 난 20년 전부터 햄버거를 먹었다. 그래서 오늘 저녁은 햄버거를 먹을 생각이다. 햄버거... 진짜 몸에 좋을까? 아니면 나쁠까? 사실 몸에 나쁜 건 햄버거가 아니라 감튀나 콜라 아닌가? 아니면... 운동은 하지 않고 처먹기만 하는 나인가? 흠... 그것도 어렵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