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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처음부터 잘 키우자 Sep 18. 2024

로마 공항에서의 첫 느낌

홀가분함과 따뜻함

로마 공항이 로마 공항이 아니라고?
레오나르도 다 빈치 공항이래. 헐...


인천에 있는 공항 '인천 공항'에서 출발해서 로마로 왔다. 로마에 있는 공항에 도착했으니 나는 당연히 '로마 공항'에 도착할 줄 알았다. 그런데 로마 공항이 아니라 레오나르도 다 빈치 공항에 도착하다니. 이탈리아 사람들의 레오나르도 다 빈치에 대한 자부심을 느끼는 동시에 난 나의 단순해도 너무 단순한 생각에 웃음이 절로 났다. 짝꿍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패키지여행의 그 아무것도 안 해도 될 것 같은 자유로움이 이런 결과를 낳은 것이다. 더욱이 아이들이 옆에 없는 여행이다 보니 우리는 정말로 아무것도 알아보지 않았다는 것에 살짝 놀랍기도 했다. 우리는 평소 여행을 할 때면 엑셀파일에 일정을 작성해서 여행을 할 정도로 파워 J 성향의 짝꿍과 그에 적응하고 있는 부부이기 때문이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 공항을 입으로 되뇌며 캐리어를 찾고 함께 여행할 사람들이 모이는 곳으로 부지런히 걸음을 움직였다. 몸은 이미 자정을 넘은 깊은 밤을 느끼고 있었지만 눈은 해 지기 전 오후의 보드라운 햇살을 느끼고 있었다. 공항 이름에 놀라움을 머금은 웃음이 나고, 몸 따로 눈 따로의 시간에 온 세상이 붕 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로켓이 지구의 대기를 벗어나 중력의 안전벨트를 푸는 순간의 느낌이 이런 느낌이 아닐까. 홀가분했다. 자유로웠다.


동시에 지금 내가 발붙이고 서 있는 현실과 다른 아이들과 함께였다면 어땠을지 그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재구성된 현실 보다 더 현실 같은 상상의 나래가 펼쳐졌다. 아이들과 함께였다면 졸리네, 피곤하네, 이상하네 등등 요술이의 자유분방한 의견 제시와 함께 투덜거림이 있었을 테고, 요술이의 이런 태도에 햇살이가 그만 좀 하라는 한 마디를 날카롭게 날렸을 것이고, 요술이 또한 지지 않고 한 마디 더 쏘아대며 티격태격 현실남매를 시전 했을 것이다. 그리고 나와 짝꿍은 이런 불편한 분위기를 없애기 위해 애써 웃으며 달래기와 수긍하기와 무시하기로 대거리를 하며 최대한 기분 좋게 여행을 하려 노력하며 힘을 뺏을 것이다. 이런 홀가분함과 자유로움은 절대로 느낄 수 없을 느낌이었다. 생소하지만 너무 좋은 느낌에, 오랫동안 꿈꾸어 왔던 느낌에 잠시 취해 보았다.


그런데 분위기에 취한 기분은 예고편처럼 짧게 끝나고 불청객이 나에게 날아들었다. 이렇게 홀가분하고 자유로운 느낌을 느껴도 괜찮은 건가. 아이들이 이 사실을 알면 서운해하지 않을까. 나의 홀가분하고 자유로움은 그저 홀가분하고 자유로움일 뿐인데 이것이 마치 내가 아이들을 싫어하는 것으로 연결되는 부모들의 이상한 공식이 또다시 돋아나 하늘 높이 높이 자라나려 하고 있었다. 캐리어에 짐을 쌀 때 들었던 그 감정이 스멀스멀 또다시 고개를 내민 것이다. 감정은 맞고 틀림이 없는 것이고 좋고 나쁨도 없으며 그렇게 느껴지면 그렇게 느끼면 되는 것이라는 감정 이론에 충실해 보기로 했다. 마음속에서 돋아나는 왜곡된 부모 공식을 잭과 콩나무에서 잭이 거인을 피해 콩나무를 베어버리듯 싹둑 경쾌하게 잘라내 버렸다. 아이들에게 가려는 마음을 나와 내 짝꿍에게 다시 꽁꽁 묶었다.


캐리어를 찾고 가이드를 만나기로 한 장소로 이동을 하며 주변을 계속 두리번거렸다. 처음 보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 공항의 모습도 신기했고 이렇게 많은 유럽인들을 한자리에서 보는 것도 신기했다. 신기함이란 느낌에 어울리는 두리번거림이란 행동이 무한반복되고 있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과연 누가 함께 여행을 할 분들일까? 분명 나와 같은 비행기 안에 있었을 텐데. 나의 숨은 그림 찾기는 비행을 하는 동안 내내 계속되었고, 아직 그 분들을 만나지 못한 지금도, 그 분들을 만나러 가는 이 순간에도 이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림자처럼 서로 너무 불편하면 안 될 텐데라는 걱정 한 방울이 궁금증 위에 떨어졌다. 잠시 후 함께 여행할 그 분들이 모였다. 몇 년 전에 연예인들이 일반인들과 함께 패키지여행을 떠나는 예능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었다. 첫 만남에서 서로 간단히 인사를 하는 것을 본 기억이 있어서 아마도 첫 만남에서 주절주절 자기소개까지는 아니더라도 인사 정도는 하지 않을까 생각했었는데 다들 피곤한 상태라 그런지 복잡한 공항이라 그런지 예상했던 그런 인사 자리는 전혀 없었다. 간단히 가이드가 자신을 소개할 뿐 모두가 서로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고 각자의 일행들과만 소통하는 모습을 보였다. 난 솔직히 이런 개인주의가 편하다. 나에게만 나의 짝꿍에게만 신경을 쓰면 되니까 말이다.


그러나 제 버릇 개 못 준다고 잠시 후부터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내 직업상 사람을 만나면 이름, 생년월일, 사연을 물어보게 된다. 생시를 묻지 않는다는 것만 무속인과 다를 뿐이다. 그리고 듣는 귀가 열려 있기는 하지만 늘 대화를 먼저 시작해야 한다. 이런 나라서 오늘도 어김없이 레이더가 켜지면서 안 보는 듯 주변 사람들을 살피고 있었다. 아이들을 데리고 온 젊은 부부가 보이고, 동호회에서 온 듯한 팀들도 보이고, 은퇴 후 여행을 온듯한 부부도 보이고, 유전자의 위대함을 보여주는 세 자매와 짝꿍들도 보이고, 친구처럼 다정하지만 서로 존대를 하여 직장 동료임을 매 순간 알게 하는 분들까지 정말 다양한 관계를 가진 분들이 모였다. 아마도 저 분들도 나와 짝꿍을 이런 궁금한 눈빛으로 알게 모르게 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 신기하고 재밌다는 생각과 함께 늘 그렇듯 표정관리에 들어갔다. 그리고 빠르게 후회를 하며 내 마음을 다독였다. '여긴 강의실 아니고 로마고 일하는 거 아니고 여행할 거야.' 오랫동안 유지해 온 삶의 포지션이 쉬이 바뀌지 않는 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지만 가끔은 상황에 맞게 변신하는 카멜레온이 되고 싶다.  


우리 패키지 팀은 서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그냥 가이드의 설명에 따라 가이드의 꽁무니를 쫓아 빠르게 공항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잠시 걸으니 대기 중이던 버스가 보였다. 수염을 기른 젊은 기사님이 버스 옆에 서서 인사를 건네주었다. 난 어색한 미소로 인사를 나눴다. 유튜브로 급작스럽게 배워간 인사말은 쑥스러움에 절대로 입 밖으로 뱉지 못했다. 여유 있고 우아하고 멋지게 하려던 인사를 쑥스러움과 아쉬움과 함께 뒤로 하고 눈치껏 순서를 지키며 캐리어를 버스 화물칸에 싣고 버스에 올라 자리를 잡았다. 그때 느꼈다. 다들 서로에 대해 궁금해하고 있다는 걸. 그리고 관심이 없는 것이 아니라 조심하고 있다는 것을. 그때 난 처음으로 안도를 했던 것 같다. 나만 불편한 게 아니고 다들 처음 만난 관계인지라 애써 눈치껏 상황에 맞추려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서로에 대한 배려의 마음에서 시작되는 따뜻함에 마음이 점점 가벼워지고 이 패키지 팀에 녹아들어 즐거운 여행을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감이 들었다. 그리고 직업, 나이, 사는 곳과 상관없이 있는 그대로 서로를 대하며 전혀 이해관계가 없는 인간관계를 경험하게 될 것 같은 기대감에 마음이 달뜨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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