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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처음부터 잘 키우자 Sep 25. 2024

바닥부터 보기

시에나 대성당

커다랗고 무거운 문을 열고 들어가 첫 발을 내디뎠을 때의
그 낮게 깔린 서늘한 공기를 좋아한다.


그리고 창문으로 새어 들어오는 옅은 빛을 좋아하고, 자연스럽게 다소곳이 앉게 되는 그 딱딱한 의자를 좋아한다. 그리고 사람들의 작은 속삭임과 조심하는 발소리를 좋아한다. 그곳은 조심스럽지만 편안하고, 서늘하지만 포근하다. 그곳에 가만히 앉아 있으면 있지도 않은 파이프 오르간 소리가 들리고 새어 들어오는 빛에 안온감을 느낀다.


유럽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성당이었다. 유럽을 소개하는 많은 곳에서 중세의 성당을 쉬이 본 것의 영향인 듯하다. 이번 여행의 첫 번째 일정으로 그 성당을 보러 간다고 하니 안 좋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거의 매일 일정에 성당이 있었으니 매일매일이 안 좋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성당을 다니거나 하나님을 믿거나 그런 건 아니었다. 그곳을 그냥 좋아한다. 세월이 무심히 흐른 돌에 세상의 시끄럽고 고약한 것들이 다 빨려 들어가 버리는 것 같아서, 그래서 좋아한다.




시에나 대성당은 우리가 있는 로마와는 조금 떨어져 있어 버스로 2~3시간 정도 이동을 해야 했다. 이탈리아 여행을 계획하면서 일정을 알아볼 때 도시마다 이동 시간이 참 길다는 생각을 했었다. 시간이 아까우려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러나 그건 기우였다. 버스의 통창을 통해 이탈리아가 이탈리아를 보여주기 시작했다. 어제 하늘에서 봤던 그 초록빛 들판에 맺힌 이슬들이 햇빛에 반짝였다. 그리고 초록빛 들판에 낮게 깔린 희뿌연 연기들이 이슬을 감추었다가 다시 보여주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연기는 가느라단 실 모양으로 옆으로 옆으로 길게 길게 겹겹이 늘어뜨려져 있었다. 들판에 새겨진 오선지 같았다. 땅안개였다. 땅안개 오선지 위에 불꽃맨드라미 요정들이 깡충깡충 뛰어 음표를 만들 것 같은 아침이었다. 깔깔거리는 웃음소리인지 뚱땅뚱땅 음악소리인지 아득히 들리는 듯한 초록빛 너른 들판들이 빠르게 느리게 지나더니 멈추었다. 시에나 대성당에 도착한 것이었다.


그러나 시에나 대성당은 곧바로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한참을 빠르게 걸었다. 평소 걸음이 느리기도 하고, 시에나 대성당을 보러 가는 길에도 신기하고 예쁘고 감탄이 나오는 풍경들이 너무 많은데 가이드를 따라 일행들을 따라 빨리 걷는다는 게 조금은 버겁고 아쉬웠다. 종종걸음은 조금 더 계속되었고 걸음이 멈춘 곳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드디어 시에나 대성당 앞에 멈춰 선 것이었다.



자연스럽게 시선이 성당으로  향했는데 난 시선을 아래로 바로 떨구어야만 했다. 햇빛이 가 닿은 성당은 반짝이다 못해 빛을 뿜어 내고 있었다. 너무나 눈이 부셨다. 단번에 성당을 볼 수 없었다. 아마도 오랜 시간 그곳을 묵묵히 지켜온 시간과 공간에 대해, 신에 대해 경배하라는 뜻인 것 같았다. 그리고 겸손하고 아끼는 마음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오래전부터 정해져 내려오는 성당을 마주하는 자세를 배운 것 같았다. 내 시선은 가장 먼저 성당 앞 광장 바닥에 머물렀다. 네모난 모양의 돌들이 빼곡히 그리고 조금씩 삐뚤빼뚤 바닥을 메우고 있었다. 사람들의 발걸음을 살짝 늦추어 주며 가끔은 천천히 가라고, 그래도 된다고 말해 주고 있는 것 같았다. 시선을 조금 높이자 성당 앞 돌계단이 보였다. 계단을 오르는 사람, 계단에 앉아 있는 사람, 계단에 서서 사진을 찍는 사람, 계단에서 책을 보는 사람. 모두가 성당의 품에 안겨 노닐고 있는 것만 같았다. 어린아이가 아빠 목에, 어깨에, 다리에 달라붙어 노는 것처럼. 조금 더 시선을 높이자 기둥과 조각상들이 그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그 화려함과 웅장함과 섬세함에 한 동안 말없이 바라보게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시선을 들어 성당 꼭대기에 날개를 펼치고 긴 창을 들고 있는 조각상과 함께 성당 전체를 볼 수 있었다. 아름답다는 단어로는 다 담을 수 없는 풍경이었다.


머리 위로 쏟아지는 뜨거운 햇빛을 받으며 멍하니 성당을 바라보다가 나와 짝꿍은 한 가지를 깨달았다. 맞은편 건물 그늘에 앉아서 충분히 성당을 편하게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을. 우린 시에나 대성당의 그 위용에 압도되어 그냥 그렇게 뜨거움을 온몸으로 받고 있었던 것이다. 서서 앉아서 우린 그렇게 한참을 눈동자에 시에나 대성당을 가득 채웠다. 그러고 나서 파란 하늘과 주변 건물들과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아마 이 모든 것이 어울려 있어 시에나 대성당도 의미가 있을 텐데 시에나 대성당 하나만 똑 떼어 내어 보려 한 내 마음이 너무 어린것 같았다. 조용히 앉아서 보는 풍경이 여유롭고 자유로웠다. 그리고 건물의 그늘이 주는 시원함에 햇빛에 시렸던 눈마저 편해졌다.




짝꿍과 나는 시에나 대성당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예쁘게 나온 사진에 만족감을 느낀 우리는 다음의 약속된 행동을 했다. 가족단톡방에 사진을 올린 것이다. 아름답네, 웅장하네, 멋지네, 좋네라는 세상의 그 흔한 단어들로 성당과 하늘과 우리에 대해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그러나 가족단톡방의 숫자는 2가 된 후 쉬이 바뀌지 않았다. 그리고 한 참 후 숫자가 1로 바뀐 후 햇살이로부터 톡이 왔다.


"여행에 집중하세요."


허걱. 그렇다. 좋은 거 멋진 거 보면 아이들에게 가장 먼저 알려주고 싶은 게 부모마음이지. 그런데 그 마음은 단지 부모의 마음일 뿐이라는 것은 웃픈 현실이지. 눈으로 직접 보고 공기로 직접 느끼는 우리의 이 감흥이 사진으로, 카톡으로 전달될 수는 없는 것이었다. 그래도 웃음이 얼굴에 번질 수 있는 건 여행에 집중하라는 햇살이의 배려의 말 때문이었다. 아니 어쩌면 다른 성격의 배려의 말일지도 모르겠다. 엄마 아빠 없이 즐기고 있는 자신의 시간을 방해하지 말라는 말을 엄마 아빠가 서운하지 않도록 배려한 말이었을지도. 대신해 주는 것이 아니고,  대신 전해 주는 것이 아니라 나중에 직접 보고 느끼도록 여운을 남겨 두어야겠다. 신은 모든 곳에 깃들어 있다고 하더니 오늘의 이 깊은 깨달음도 신의 뜻이려나... 그리고 아이들이 언젠가 시에나 대성당을 보러 간다고 하면 꼭 광장 바닥부터 천천히 올려다보라고 말해 주어야겠다. 경배하는 마음으로 바라보라고 말해 주어야겠다. 신을 그리고 그 공간을 함께 했던 수많은 사람들을 경배하라고 말이다.  

 


#이탈리아 #시에나대성당 #양육독립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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