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듀화 Dyuhwa May 25. 2024

소위 방황 중

바쁘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다시 일어나는 건 시간이 필요한 것이겠지.

얼마 만에 글쓰기 인가. 일기는 따로 꾸준히 쓰고 있다 하나 이곳에 쓰는 행위는 오랜만이다. 시드니일정 막바지부터 꼬인 일들에 지쳐서 당장 할 수 있는 것들만 해내야 하다 보니 글쓰기는 자연스럽게 잠시 미루어졌다. 체력과 정신 모두 지쳐있는 시점에 억지로 꾸역꾸역 소화시킬 수 없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안 쓴 지 두 달이 되었네.


그래서 이걸 쓰니 회복되었냐고 물으신다면 "아니요"라고 말할 수 있다. 두 달 간하고 있던 긴장감 피로는 어마무시하게 다가왔고 한국에 돌아와서는 생계를 위해 다른 일을 바로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옛날 직장 상사의 제안으로 일 구하고 면접을 보러 다닐 수고는 덜었다. 그렇다고 나에게 닥친 일이 모두 해결된 게 아니었다. 새로운 작업실도 구해야 했다.


다니고 있던 작업실은 내가 한국 돌아온 당일 날, 정확히 멜버른에서 시드니로 경유하며 공항과 비행기에서 하루반나절 이상 보내고 도착한 인천공항에서 짐을 찾고 집에 가기 위해 공항밖으로 나왔을 때 연락 왔다. 작업실을 정리하기로 했다는 소식. 황당한 소식에 머리가 지근거렸다. 곧 집에 간다는 설렘은 와장창 깨져버렸다. 집에 가는 택시 안에서 나는 밖을 바라보는 여유를 느낄 수 없이 이 상황에 대하여 듣기 위해 통화하기 바빴다.  


일자리 해결동시에 바로 근무 시작. 그리고 새로운 작업실을 알아보기 위해 열심히 핸드폰 속을 뒤졌다. 이번엔 작업실을 쉽게 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처음으로 많이 알아보고 많이 만나 뵈었다. 그중 세 군데가 마음에 들었는데 그 이유는 다 달랐다. 그래서 더 어려웠다. 2주간 작업실을 다 돌고 3일 정도 고민을 했다. 어디로 가는 것이 나에게 도움이 될 것인가를 말이다. 그렇게 고민 끝에 작업실을 정했고 남은 건 카메라 구입이었다. 타이밍이 좋은 건지 중고카메라를 알아보고 있던 시점에 알고 지내던 작업자분이 카메라를 중고로 내놓으셨다. 안 그래도 중고거래로 물건을 사본 적이 없던 터라 걱정이었는데 알고 지내던 분이니 안심이 되고 마음에 드는 카메라여서 당장 연락을 했다. 발 벗고 뛰어서 알아보고 움직이고 해서 이루어진 것들이지만 한국에 돌아온 지 한 달도 안돼서 해결돼야 할 일 대부분이 해결되어 놀라웠다. 너무나도 순조롭다 생각한 흐름이었다. 그 생각이 부정을 탔을까. 아니면 회복되지 않은 몸을 생각하지 않아서 그런 걸까. 다른 일 업무강도는 내가 무탈히 쳐낼 수 있는 강도임에도 집에 돌아오면 뻗기 바빴다. 쉬는 날엔 이상하게 개인적인 일정들이 생겨 타투 관련일들을 할 수가 없었다.


드디어, 엊그제 아무것도 안 하고 쉬었다. 그리고 어제는 서울나들이로 보고 싶은 전시를 보며 여유를 잠시 느꼈다. 그러니 타투관련된 일들을 할 힘이 생겨났다. 얼마 만에 내방 책상 앞에 앉아보는 건지 어색했다. 그리고 도안을 그렸다. 다 그리지 못했지만 그렸다. 사진도 편집하고 그리고 싶은 도안에 필요한 자료조사도 했다. 그렇게 하루를 해냈구나. 내일도 다시 그릴 수 있겠구나. 할 수 있겠구나! 했는데 펜을 들고 멍하니 화면만 바라보았다. 한참을 바라보다 글을 써야겠다. 해서 지금 쓰는 중이다. 안 그래도 정리 안되게 쓰는 편인데 오늘은 더 그런 듯하다. 그냥 소위 방황 중인 듯하다. 올해는 나에게 모든 게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물론 작년에도 많은 것들이 변했다. 작년은 나에게 폭풍이었기에 새로운 해는 아닌 줄 알았다. 무탈하기 바랐는데 아니다. 뭐가 그렇게 변할게 많은지 계속해 바뀌고 있다. 그 속에서 나는 정신 못 차리고 있다. 이렇게 계속해 휩쓸릴 거라면 몸에 힘을 빼고 흘러가는 대로 맡기고 싶은데 그게 참 어렵다. 당장 할 수 있는 것들을 해내고 있는 것을 바라보면 불과 몇 년 전 나에 비해 많이 성장해 기특해야 할 부분이기에 스스로 다독이고는 있다지만 가끔은 이게 내가 당장 해내야 할 것들을 다 하고 있는 것이 맞는 건지도 의문이다. 내가 사랑하다 못해 어쩌면 나를 구원한 듯한, 나를 많이 변하게 해 준 타투라는 이 일이 버겁게도 느껴진다. 내일 새로운 작업실 첫 작업이 있는 날이다. 작업을 하고 나면, 작업이 주는 즐거움을 다시 느끼고 다시 열정이 생길까. 당장 드라마틱한 일들이 일어나길 바라는 건 아니다. 다만, 시간이 걸리겠지만 다시 열정이 생기고 일어났으면 좋겠다. 다시 부지런히 직장을 다니며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리고 작업했던 나로 말이다.

목요일 연재
이전 02화 반년만에 재만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