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차] 아스토르가 > 폰세바돈
[Day 21] Astorga > Foncebadon
어제보다 강렬한 태양이 어제보다 연약한 구름을 감싸 안고 하늘을 붉게 물들인다. 하늘은 태생부터가 무심한지라 조금만 지나면 이 선물을 도로 가져가버린다. 그래도 언제 다시 올 선물일지 모르기에, 이 짧은 순간을 최대한 고이 담아보려 한다. 애석하게도 산티아고의 아침은 늘 그랬듯 해를 등지고 걷게 된다. 이 붉은 하늘이 내가 걷는 길 앞에 놓였으면 좋았으련만, 굳이 지난날에 미련을 남긴 사람처럼 자꾸 뒤를 돌아보게 만든다.
저 멀리 보이는 다리를 기준으로 하늘이 쪼개져있다. 다리 건너편의 세상은 먹구름으로 가득하다. 오늘의 태양도 저 구름 떼를 쫓아내기엔 힘겨워보인다. 왠지 이 다리를 건너는 순간 온갖 역경이 가득한 하루가 될 것만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 마음 같아서는 이 자리에 서서 아름다운 하늘을 계속 바라만 보고 싶지만, 어차피 조금 있다 사라질 무용의 것에 큰 의미를 두지 않기로 하고 패색이 짙은 병사처럼 다리를 건넌다.
요즘 걷다 보면 하루에 한 번씩은 꼭 스페인 4 총사 아저씨들을 만나게 된다. 어쩌다가 스쳐 지나가면 짙은 미소로 인사해 주시는데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초록색 오스프리 커버를 배낭에 씌우고 가시는 아저씨는 자꾸 만날 때마다 스페인어라고 뭐라 하시는데, 알아들을 수 없다고 얘기해도 꿋꿋이 스페인어를 사용하신다. 뭐 나라고 별 수 있나. 나도 아저씨께 한국어로 대답한다. "아, 그래요? 저도 반가워요. 이따 알베르게에서 뵈어요." 우리는 그렇게 서로 알아들을 수 없는 서로의 언어로 안부를 묻는다.
옆에 걷고 있던 다른 세명의 아저씨들은 자꾸 비탈길 위에 숲 속으로 들어갔다가 나오신다. 도대체 무엇을 하는 걸까 유심히 살펴보니 양팔 가득 버섯을 따오신다. 얼핏 보기엔 서로 누가 더 많이 땄나 자랑하는 것 같다. 해맑게 웃고 떠드는 것을 보니, 나도 언젠가 친구들과 함께 늙어서 이 길을 다시 걷고만 싶어졌다.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한 번만 더 살게 될 무렵에 말이다.
점점 비가 오기 시작한다. 비 오는 날이면 어김없이 땅 위로 나오는 달팽이처럼 느긋하게 걷는다. 괜스레 며칠 전에 봤던 무지개가 환상처럼 아른거린다. 문득 난 지금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회의감이 밀려오기도 한다. 굳이 잘 다니는 직장을 휴직한 뒤, 왜 이 먼 곳까지 와서 고생을 하나 싶기도 하다. 역마살이 낀 운명을 받아들인 지는 오래지만, 오늘은 비도 오고 그래서 괜히 울적해지기도 한다.
학창 시절 우리 집은 이사를 많이 다닌지라 전학만 대여섯 번 했던 것 같다. 그렇게 나는 떠나는 것에 익숙해져 갔고, 남겨지는 것들에 대해서는 크게 개의치 않았다. 다만 이런 이별이 반복될수록 내 안에는 뒤틀린 외로움이 자라나고 있었다. 남겨진 이들의 아픔은 강렬했지만 금방 치유되었고, 떠나는 나의 아픔은 미약했지만 사라질 줄 몰랐다.
비가 점점 세차게 몰아친다. 폰세바돈(Foncebadon)을 가기 전 마지막 마을에서 비를 피해 휴식을 취할 겸 끼니를 때우고자 하지만 가게 문이 모두 굳게 닫혀있다. 이리저리 서성이던 찰나 조그마한 슈퍼가 하나 보인다. 그 안에 들어가 보니 운이 좋게도 벽면에 익숙한 신라면 봉지가 진열되어 있다. 그 앞에서 몇 개를 살지 한 참 고민하다가, 이미 도착해 있을 대구 동생과 함께 먹기 위해 딱 두 개만 집고 계산을 한다.
'그때 더 많이 샀어야 했다.'
밖으로 나오니 거의 폭풍우가 몰아치기 시작했다. 정면으로 불어오는 비바람에 고개를 드는 것조차 힘겨웠다. 심지어 폰세바돈은 산 중턱에 있는 마을이었기에 가파른 경사를 올라야 했다. 너무 힘들었던 탓일까. 제자리에 멈춰 서서 외마디 비명을 지른다. '악!' 마음이라도 후련하고 싶어 발악을 하는지도 모른다. 이런 날은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는다. 그저 빨리 알베르게에 도착해서 쉬고 싶을 뿐이다.
이제야 폰세바돈이 보이기 시작한다. 내 눈을 타고 흐르는 건 눈물이 아닌 빗물이다. 그 빗물을 훔쳐내고 마을을 둘러본다. 적막함이 가득한 이곳에 모든 문이 굳게 닫혀있다. 설마 알베르게가 없나 두려움에 휩싸이기 직전 저 멀리 지붕 밑에서 비를 피하고 있는 반가운 얼굴이 어서 들어오라고 손짓한다. 프로미스타에서 만났던 한국인 아저씨이다.
"고생했다. 비가 많이 오지?"
담배 한 개비를 건네주신다. 빗소리를 배경 삼아 벤치에 앉아 먹구름이 가득 낀 하늘을 바라보면서 꺼질듯한 한숨을 내뱉고 마을에 딱 하나 남은 알베르게에 들어간다. 폴이라는 이름의 영국인 할아버지가 주인장이다. 알베르게 안에는 길에서 한 번쯤은 마주친 익숙한 얼굴들이 모여 앉아 난로에 몸을 녹이고 있었고, 그 옆에는 오늘 하루를 고맙게 견뎌준 여러 옷가지들이 빨래건조대에 널려 마르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샤워기에는 거의 찬물밖에 나오지 않는 열악한 환경이지만 이마저도 감사하다. 얼음장 같은 물에 급하게 빨래를 마치고, 건조대의 빈 공간에 살포시 걸어놓는다.
이제야 한숨 돌릴 수 있다. 알베르게에서 무료로 제공되는 따스한 핫초코를 마시니 그제야 쌓였던 피로가 싹 가라앉는다. 이 알베르게는 침실과 거실 두 개의 공간 밖에 없고, 거실에는 이곳에 묵는 순례자들이 모두 앉을 수 있을만한 크기의 긴 테이블이 놓여있다. 데이터조차 터지지 않는 곳이기에 모두가 휴대폰을 내려놓고 테이블 의자에 앉아 담소를 나누는 것 외에는 딱히 할 게 없다. 밖에는 아직도 폭풍우가 몰아치고, 식당과 카페는 모두 문을 닫았다. 내가 도착한 이후에도 순례자들이 하나둘 알베르게로 들어온다. 나와 같은 루트로 길을 걷는 모든 순례자들이 그렇게 한 공간에 모였다. 오랜만에 보는 얼굴들은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이 고립된 공간에서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선 각자가 혹시 모를 상황을 위해 쟁여두었던 비상식량을 꺼내야만 한다. 나는 전 마을에서 구매한 라면을 꺼내는데, 순간 아차 싶었다. 나, 대구 동생, 아저씨. 사람은 셋인데 라면은 두 개뿐이다. 아까 가게의 진열대에서 처음 세 개를 집었는데, 한 개를 내려놓은 과거의 내가 원망스럽다. 뭐가 그렇게 아까웠을까. 역시나 부족한 것보단 남기는 것이 백번 낫다. 대구 동생이 그래도 남은 파스타면이 있어서 라면에 같이 넣어 먹기로 했다. 우리 셋은 그렇게 테이블에 구석자리에 앉아 파스타 라면을 누구보다 맛있게 먹었다. 앞으로의 일생동안 어떻게든 기억날 것 같은 그런 맛이었다.
피곤에 찌든 몸을 침상에 뉘어놓으니 이제야 산티아고의 가장 힘든 하루가 끝난 것이 실감 난다. 그래서였을까. 괜히 내가 살면서 실패했던 기억들이 자꾸만 떠오른다. 그때마다 남 탓을 참 많이 했던 것 같다. 나조차도 최선을 다하지 않았는데 말이다. 이전에 누군가가 나에게 이야기해 준 중국 속담이 하나 떠오른다.
"다른 사람을 탓하는 사람은 아직 갈 길이 멀었고, 스스로를 탓하는 사람은 반쯤 온 것이고, 아무도 탓하지 않는 사람은 이미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