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를 좋아하는 나의 아저씨

[22일 차] 폰세바돈 > 폰페라다

by Zorba

[Day 22] Foncebadon > Ponferrada


어제 몰아쳤던 비바람은 다행히도 포세바돈을 지나쳐 저 멀리 떠나갔다. 젖은 흙길 위를 자박자박 걷고 있자니 비내음이 코 끝을 건드린다. 오랜만에 맡는 은은한 냄새에 자연스레 숨을 크게 들이마신다. 생각해 보니 나는 만성 비염이 있는데, 산티아고에 온 이후로 한 번도 코가 막힌 적이 없다. 혹시 몰라서 챙겨 온 지르텍은 아직 포장지조차 뜯지 않았다. 아직 해가 차오르지 않아 어두컴컴한 하늘이지만, 익숙한 냄새가 주는 편안함으로 하루가 시작된다.


어렸을 때 상계동에 살았다. 대부분은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졌지만, 주말 아침마다 아버지와 함께 수락산에 올랐던 기억은 그나마 선명하다. 어린아이가 무엇을 알겠는가. 그냥 정상에서 먹는 컵라면과 김밥이 맛있었을 뿐이다. 다만 그때 아버지의 훈련 (?) 덕분인지 지금도 산은 꽤나 잘 타는 편이다. 주기적으로 등산을 하지 않는데도 그때의 습관이 남아있는 듯하다. 역시 어떤 것이든 어릴 때부터 해야 한다. 몸이 기억한다. 지금보다 반절도 안 되는 다리를 가진 어린아이는 항상 아버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산을 올라갔다. 아무리 힘들더라도 그 등만 쫓아가다 보면 어느새 정상에 도착하곤 했다. 나에게 등산은 아버지를 따라가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어찌 보면 매우 단순한 행위였다.


아버지는 지금도 어디를 갈 때마다 항상 누구보다 앞서 걸어가신다. 어머니는 저 뒤에서 느린 걸음으로 '좀 같이 가지.' 투덜거리곤 한다. 어릴 때는 '좀 같이 걸어요.' 하면서 두 분의 손을 잡아드려도, 어느새 보면 또 멀찌감치 떨어져서 걷고 있는 모습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버지가 조금만 천천히 걸으면 되는 일 아닌가? 어머니가 조금만 빠르게 걸으면 되는 일 아닌가? 다만 나이가 들어갈수록 적당히 인정하고 타협하는 일이 쉽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제는 어떻게 걷건 목적지에 도착해 좋은 시간을 보내는 것이 더 중요할 뿐이다.


떠오르는 햇빛 사이로 저 앞에 걷고 계신 한국인 아저씨를 발견한다. 어디서 많이 본듯한 50대 중년의 뒷모습이다. 반가운 마음에 걸음을 재촉한 뒤 아저씨 옆에 서서 말을 건넨다.


"오늘도 역시 빨리 출발하셨네요."

"일출에 맞춰서 철의 십자가에서 사진 한 장 찍고 싶어서 말이야."

"철의 십자가요?"

"여기서 조금만 걸어가면 기다란 십자가가 있는데, 거기에 자기가 살던 곳의 돌을 가져와 두고 가는 풍습이 있다네? 그러면서 마음속의 돌덩이를 내려놓는다고 했나."


익숙한 산길. 50대의 남자. 유명한 기념탑에 돌 올려놓기. 낯설지가 않다. 어린 시절 아버지와 함께 수락산을 오르던 그 마음으로 아저씨와 함께 폰페라다(Ponferrada)까지 걷기 시작한다. 산의 정상 부근에 철의 십자가가 보인다. 이미 해가 머리 위로 떠오른 상태라 아쉽긴 하지만 각자 서로의 사진을 찍어준다.


"돌 가져왔니?"

"아니요, 아저씨는 가져오셨나요?"

"나도 없다. 그냥 가자."


아저씨는 대학교 시절 등산 동호회에 가입했다. 1학년 여름 즈음에 지리산 종주를 갔는데, 그때 당시에는 동호회 부조리가 좀 심해서 막내들이 모든 짐을 거의 다 짊어지고 가야 했다. 그래서 아저씨를 포함한 친구 3명이 인당 30kg 정도의 짐을 짊어지고 산을 탔는데, 중간에 한 명이 더 이상 못하겠다고 가방을 내팽개치고 도망갔다. 그래서 그 친구의 몫까지 욕이란 욕은 다 먹었다고 한다. '뭐 그때에 비하면 이건 그래도 괜찮지.' 아저씨 특유의 너스레가 싫지많은 않다.


아저씨는 원래 은행에 다니시다가 IMF 때 건설 쪽으로 이직을 한 후, 관련 직무에 오래 종사하시다가 최근에 은퇴를 하셨다. 딱히 할 것도 없고 시간도 남아서 순례길에 오게 되었다고 말씀하신다. 나보다 한 일주일 전에 순례길을 시작했는데 중간에 무릎이 완전히 나가서 부르고스에서 다 나을 때까지 푹 쉬었다고 하신다. 그렇게 우리는 프로미스타에서 처음 만났던 것이다. 학연, 지연, 혈연보다 흡연이라고 했던가. 알베르게에서 항상 담배를 피우러 밖으로 나올 때마다 아저씨가 있었기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알게 모르게 친밀감을 꽤나 쌓았다.


아저씨는 강남 서초구에 사신다. 꽤나 오래전부터 살았다고 하시니, 말씀하시지 않아도 자산 규모가 작지 않다는 것 정도는 유추할 수 있다. '나는 저렇게 자산을 증식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되지?' 내심 부러워하는 마음을 읽으셨는지 아저씨가 말씀하셨다.


"나는 회사 근처에 집을 샀던 것뿐인데, 나라가 성장하면서 운이 좋게 집값이 올라버렸어. 그래서 난 요즘 젊은 세대들에게 죄의식을 느껴. 내가 딸이 둘인데, 나보다 훨씬 똑똑하고 열심히 하는데도 경제 성장이 우리 때보다는 덜하잖아. 일자리 구하기도 힘들고. 집 구하기는 더 어렵고."


순간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다. 지금까지 내가 말한 어른들은 '우리 때도 힘들었어. 요즘 애들은 열심히 하지도 않고 사회 탓만 하지.'라는 말을 해왔는데, 아저씨는 그런 얘기를 일절 꺼내지도 않았다. 어쩌면 요즘 사회에 만연한 세대 갈등은 각자가 살아온 세상을 인정하고, 각자의 세상에서 고생하며 살아가는 서로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며 서서히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나도 이렇게 말씀드릴걸 후회가 남는다. "그래도 저희는 밥끼니를 걱정하면서 살지는 않았잖아요. 덕분에 배부르게 잘 먹고 다닙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 역시 윗세대에 대한 불만이 남아있었는지도 모른다.


아저씨는 내가 물어보지 않는 이상 먼저 나서서 본인 얘기를 하시지 않는다. 다만 물어보면 누구보다 신나게 대답해 주신다.


"아저씨, 근데 지금 저희가 걷는 이 산길은 다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것일까요?"

"에이. 이거 다 사람이 만드는 거야. 기계가 와서 가장 아래에 자갈이나 굵은 돌을 먼저 깔고, 그 위에 작은 자갈이나 흙을 올리는 거지.


전혀 다른 직군에 수십 년간 종사하셨던 아저씨의 말을 들으며 내가 전혀 몰랐던, 관심도 없던 세상의 한 부분을 알게 된다. 한국에 있을 때는 나와 비슷한 삶을 살아온 사람들만 만나다 보니 그것이 전부인 줄만 알고 있었는데, 이곳에 오고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세상은 넓고 많은 것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나의 지식은 굉장히 단편적이었고, 아직 알아야 할 것들이 많이 남아있다.


"너는 이제 한국 돌아가면 뭐 할 거니?"

"아직 정하진 않았는데, 사업 쪽으로 열심히 해보고 싶어요.."

"나는 잘 모르겠지만, 사업이라는 건 거창할 필요는 없는 것 같아. 내 친구 놈 중에 한 명은 회사 잘 다니다가 때려치우고 동대문에서 옷 떨이하는데, 초창기에 시작했던 터라 돈을 기가 막히게 벌어. 그 근방에서 제일 싸게 가져와서 판대."

"아이템을 잘 찾았네요."

"그런데 그 친구도 첫 2년은 정말 고생했어. 파산 직전이었을 거야. 나는 아마 그렇게 못했을 것 같다."


난 어쩌면 그냥 현재 삶이 싫어서 막연하게 도피를 한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아직 많이 부족하고 준비된 것도 없어 보이는데 거창한 꿈만 꾸고 있는 듯하다. 여전히 누군가의 말을 들으면 '이게 맞나?' '저게 맞나?' 중심이 없이 이리저리 흔들린다. 산티아고가 끝난 후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이 순간 두렵기도 하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에. 그래도 우선은 지금 순간에 집중하기로 한다.


아저씨는 자전거를 좋아하신다. 원래 순례길을 친구랑 자전거 타고 오려했는데, 그 친구가 사정이 생겨 못 오는 바람에 그러면 그냥 혼자 걷는 게 낫다는 생각을 하셨다. 아저씨는 한국에 자전거가 4개 정도 있는데, 많은 비싼 자전거들을 타봤지만 그중에 브롬톤이 최고라고 말씀해 주신다. 접이식이고 휴대가 용이해서 여행을 갈 때도 차에 뒤에 실어갈 수 있어, 손이 가장 많이 간다고 하신다. 그렇게 주말에 남해 어느 섬에 가서 차를 세우고 자전거를 꺼내 섬 한 바퀴를 크게 도는 게 삶의 소소한 낙이라고 하신다. 자전거를 탄다면 꼭 가봐야 할 길이 있냐고 물어보자, 망설이지 않고 대답하신다. 정선으로 이어지는 42번 국도.


걷다가 힘들면 어디 바닥에 앉아 아저씨와 함께 담배를 태운다. 그러기를 몇 번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폰페라다에 도착해 있다. 아저씨는 어제 너무 열악하게 잤다고 본인은 오늘 알베르게 말고 근처 좀 저렴한 호텔을 예약하셨다. 각자 숙소로 돌아가기 직전 아저씨께서 오늘 밤에 맛있는 음식을 살 테니 부산 친구랑 대구 동생도 꼭 데려오라고 당부하셨다.


알베르게에서 재정비를 마치고 저녁 7시가 되자 우리 셋은 인도 식당에서 아저씨를 만났다. 서로 길에서 오며 가며 자주 마주쳤지만 이렇게 함께 식탁에 앉아 밥을 먹는 것은 처음이다. 아저씨는 우리 모두 배가 터질 정도로 음식을 시켜주셨다. 계산을 하고 식당을 나서면서 아저씨가 웃는 얼굴로 말씀하셨다.


'이렇게 만난것도 인연인데 그래도 맛있는 밥 한 끼는 사줘야지. 그렇지?'


산티아고에서 만난 '나의 아저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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