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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는 사람이 소멸할 때까지

by 설다람


아침에 일어나서 거울을 본다.

나의 소중한 하루를 그렇게 아침부터 박살 난다.


화장실 안 거울은 내가 얼마나 인간의 겉모습을 닮아있는가를 재확인하는 것 외에는 다른 쓸모가 없어 보인다.


그런 생각이 들지 않는다면 남들보다 조금 안정된 정신 상태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도 좋을 것 같다. 물론 그런 생각도 어떤 면에서 위험한 면이 있지만, 적어도 자신의 안위만을 고려할 때는, 그편이 훨씬 낫다. 다시 강조하건대, 훨씬 낫다.


굳이 패배주의에 젖어 살 필요는 없다. 대부분 사람들은 대개 패배한 채로 태어나고, 살아가면서 더 많은 패배를 경험한다. 패배는 생존의 다른 이름이다. 우리는 살기 위해 패배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생존은 무엇인가. 내게 첫 번째 생존은 물리적 생존이고, 다음으로는 정신적 생존이다. 마지막으로 남은 것은 자본주의적 생존이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본주의적 생존이다. 자본주의적 생존이 불가능하다면 물리적, 정신적 생존은 불가능하다.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정신적 생존이 물리적 생존을 간신히 떠받치고 있는 것일 테다. 그런 의미에서 정신적 생존은 삶이라는 뼈에 붙은 마지막 근육이라고 볼 수 있다.

자기합리화와 현실도피의 힘을 무시하지 말자. 둘은 매우 유용한 사고 도구이며, 예리하게 갈고 닦아야 할 연장이다.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진따가 일진이랑 싸워서 이기려면 짱돌이라도 던져야 한다.

짱돌을 던지기 위해선 돌이 일진의 뺨을 때리고 나서, 돌아올 주먹세례를 각오해야 한다는 뜻이다. 각오는 함부로 하는 게 아니지만, 함부로 각오를 해야만 하는 상황이 일반적이다.


그럴 때 다시 생존에 대해서 생각해야 한다.


이건 장난이 아니다.

이건 리얼이다.


그리고

리얼은 장난치지 않는다.

나라는 사람이 소멸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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