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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PC

by 전휘목 Aug 23. 2021


 사람마다 심리의 디폴트값이 다르다. 긍정적이고 진취적이며 도전의식으로 가득 찬 모험가가 디폴트값이라면, 그 사람은 남들보다 운 좋은 삶을 살 것이 분명하다. 그렇지 않은 상황 속에서라도 소중한 기쁨들을 찾아낼 능력이 있으니까.

 그러나 지하실 벽에 자란 이끼 같은 정신을 기르고 있는 사람에게 그런 태도를 가져보라는 조언은 사실 조롱에 가깝다. 가끔은 도움이 되는 조롱.



 때문에 이런 사람들은 지속가능한 정신의 생존 방식을 연구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디폴트값마저 잃어버리는 일이 빈번하다. 그건 본인에게도 주변 사람에게도 그다지 좋은 상황은 아닐 것이다.

 디폴트값이 지옥보다는 한 칸 높은 상태인 사람으로서 찾아낸 그나마 쓸모 있는 패치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나에게 일어나는 일을 3인칭으로 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나 이외의 사람을 모두 NPC로 보는 것이다.

 첫 번째 패치의 핵심은 내 일을 남 일처럼 여기는 것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나쁜 일만이 아니라 좋은 일에도 똑같은 자세를 취해야 한다는 것이다. 체리 피커처럼 굴지 말라는 이야기다. 이 태도를 꾸준히 훈련하다 보면 감정과 정신의 틈을 조금 벌릴 수 있다.

 눈 오는 날 달려오는 차 피하려다가 팥빙수 상태의 웅덩이에 미끄러져 옷을 다 버렸어도, 흠, ㅎ에게 곤란한 일이 벌어졌군. 짜증을 꽤나 느끼겠네. 라는 선에서 그치는 것이 적당한 목표치라고 본다. 주의해야 할 것은 감정과 거리를 두었을 뿐이지, ㅎ는 그 감정을 온전히 느끼고 있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심리적 거리두기는 일종의 국소부위 마취이다. 통증이 없는 상태로 다른 일을 할 수 있지만, 몸은 고통을 그대로 받아내고 있다. 다만 크고 자잘한 불운과 좌절 등을 조금은 행정적으로 처리할 수 있게 된다.

 두 번째 패치인 나 이외의 사람을 모두 NPC로 보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어느 정도 대부분이 그렇게 살고 있다. 그런데 가끔 사람들은 좋아하는 사람을 플레이어로 보기도 하고, 적대적인 사람을 몹으로 여기는 실수를 범한다.

 NPC는 그저 제 할 일을 할 뿐이다. NPC는 플레이어가 아무리 앞에서 폭탄을 던져도, 도망가지 않는다. 쓰러지지도 않는다. 마찬가지로 NPC가 플레이어의 멱살을 잡고 때려도 개발자가 사디스트가 아닌 이상 충돌 데미지는 없을 것이다. 

 그러니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 밥을 먹자고 했을 때, 내일도, 다음 주에도, 한 달 뒤에도, 3개월 뒤에도 약속 있다ᅟ근 답변이 돌아오는 것은 그 사람이 당신을 싫어해서가 아니다. 그냥 그  분은 그렇게 설정된 NPC이고 당신이 플레이하고 있는 세계관 안에서는 그 사람과 식사를 하는 이벤트는 죽기 전까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동일한 메커니즘으로 당신을 멍청이라고 욕하며 윽박지르고 있는 진상은 적이 아니다. 그 사람은 ‘진상’이라는 역할을 충실히 다해내고 있는 성실한 NPC이다. 그렇기에 당신 굳이 없는 충돌 데미지를 애써 만들어서 치욕스러움에 밤을 뒤척이지 않아도 된다.

 아주 간단한 진실들이다.



 이  두 가지 마음가짐이 내가 지금까지 시도해본 여러 방법론들 중에 조금이나마 효과가 있는 것들이다.

 하지만 모든 약이 그렇듯, 이 처방전에도 부작용이 있다. 그건 사회성이 급격하게 떨어진다는 것이다. 더불어 사람들을 NPC로 대하기 시작하면 그 사람들도 당신을 NPC로 대하기 시작한다. 

 여기서 우리는 선택을 해야만 한다. 둘 다 가질 순 없다. 그럴 수 있었다면, 네오가 오라클을 찾아가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내린 결론은 ‘최선을 얻을 수 없다면, 그래도 최악은 면하자’이다.

 정신을 조작하고, 합리화할 수 있는 기능이 인간에게 내장되어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자.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행복은 없다. 엄한 곳을 서성이며, 시간 낭비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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