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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달리는 법 이전에, 올바른 방향을 잡는 일 이전에, 무엇보다 먼저 잘 도망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각 잡고 잡으러 달려오는 것들로부터 달아나는 일은 만만치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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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취학 아동일 때, 아이의 유년기를 망치기 쉬운 정신교란매체 중 하나인 0교육방송에서 ‘터키 나무 형제들’이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일곱 살이 관람하기엔 몹시 적절하지 않은 그 영화의 주된 내용은 미친 듯이 달리는 것이었다.
고향을 떠나 각기 다른 곳에서 터전을 잡고 살아가던 삼 형제는 어느 날 의문의 편지를 받게 된다.-영화에서 받는 편지는 의문의 편지가 아니기 어렵다.-.봉투를 뜯고 열어보니, 자신의 얼굴이 찍힌 흑백사진이 나왔다. 과거의 어느 날에 찍힌 것이 아니라, 봉투 뜯기 바로 직전의 자신의 모습이 찍힌 사진이었다.
사진 뒷장에는 단 하나의 문구가 적혀있었다. 23.2551° N, 18.2383° E, 절대 멈추지 말 것. 그 문장을 모두 읽은 순간, 폭발로 집이 날아가고, 삼 형제는 각기 다른 곳에서, 각기 다른 위험으로부터 도망치게 된다. 목적지는 분명했지만, (23.2551° N, 18.2383° E,) 지금 당장은 폭발과 차량 사고, 추격자로부터 달아나는 것이 먼저였다.
그게 감독에게 얼마나 중요했는지, 삼 형제가 비슷하게 생긴 다른 모래언덕을 20분 동안 달리는 것을 동공이 풀린 채로 보아야만 했다..
뭐지 이건. 어린 나이에 혼란의 경계 지점을 확인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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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결말은 기억나지 않지만, 감독이 삼 형제를 죽게 내버려 뒀을 것 같진 않다. 잘 도망치기만 한다면, 극 초반에 살해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일상 중에 달리는 일 별로 없겠지만, 우리의 정신은 언제든 사방으로 튀어 나갈 준비가 되어있다. 그러니 잘 도망치는 일은 사고의 경로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어디로 튀어나가도 어떻게든 탈출구를 찾을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