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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허함, 허전함, 외로움은 현대적이고, 세련된 감정들이다. 그게 이 감정들이 인기 있는 이유고, 잘 팔리는 이유이다. 과시하기 좋은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크게 곤란한 상황이 아닌 경우에도 종종 사람들은 감정을 편식한다. 길들여진 취향에 젖어가는 것이다. 공허함, 허전함, 외로움은 실패하는 법이 없다. 어떤 순간에도 우리가 원하는 그대로 만족할만한 산출물을 준다. 안정적인 투자인 셈이다. 삶에서 이렇게 확고한 가치를 찾기는 어렵다. 변하지 않는 무엇을 쫓고 있다면, 이쪽을 뒤지는 게 수월할 것이다.
고갈된 광산에서도 흙은 끝없이 퍼낼 수 있다. 그렇게 퍼낸 흙으로 다른 광산을 메울 수도 있다. 그러다 다이아몬드 같은 에피소드라도 발견하면 사진 찍느라 정신이 없게 된다. 행여나, 이 감각, 이 느낌을 잊을까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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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부류 중에 한 일원으로서 얼마나 이 작동방식이 끔찍한지 잘 알고 있다. 명민한 사고를 모아 러다이트 운동이라도 벌이지 않는 이상, 이 현대적이고 세련된 기계장치 신을 파괴하긴 어려울 것이다. 부를 수 있는 명민한 사고는 1도 없는 사람이 쳇바퀴에 던져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한없이 돌아가는 쳇바퀴 허전함을 탓할 게 아니라, 손도끼를 들 용기조차 없는 두 손을 탓해야 할 일이다. 공허함, 허전함, 외로움에 필요한 것은 위로나 격려가 아닌, 멱살을 움켜잡겠다는 노여움이고, 다 때려눕히겠다는 다짐이어야 한다.
나 같이 나약하고 패배주의적인 사람은 할 수 없겠지만, 나보다 강하고 패배주의적이지 않은 사람들은 해낼 것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엔 나처럼 나약하고 패배주의적인 사람은 드무니까, 웬만한 사람이라면, 영혼으로 후려치는 사보타주에 성공할 것이다. 내게는 공허함과 허무함, 외로움을 이길 수 있는 힘이 없다. 그걸로 변명할 생각도 없다. 간신히 버티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누구에게 감사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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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 20분 남짓한 분량의 허전함을 채우려고, 사람을 만날 순 없다. 약속도 잡고, 지하철 탈 시간이 있다면, 해야만 하는 일을 하는 게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