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겨울 새벽 6시는 어두웠다. 아직 깨지 않은 대형 쇼핑몰에 붙여진 대형 벽면 광고판만이 도로를 비추었다. 광고판에선 라면 광고가 나오고 있었는데, 노리진 않았지만 성공하고만 레트로 감성 라면 포장지가 인상적이었다. 현란한 색조합은 주변을 사이버펑크 같은 분위기로 바꾸었다.
횡단보도를 건너자 광고판의 빛은 사라졌다. 김 서린 안경 때문에 안개 속을 걷는 것 같았다. 당장에라도 건물 창을 깨고, 우주 얄개들이 튀어나와 시가전을 벌여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불행하게 현장에 있던 민간인 1인이 되어, 총알 세례를 맞는 상상을 하며 두 번째 쇼핑몰의 코너를 돌 때, 내 숨이 만든 안개 너머로 고양이 눈 같은 초록 불빛 두 쌍이 보였다. 낮게 울리는 엔진 소리와 함께 기체가 빠르게 다가왔다.
야쿠르트 카트였다.
●
야쿠르트 카트를 볼 때면 항상 2003년에 리메이크되어 나온 아스트로 보이 철완 아톰이 생각난다. 애니메이션에서 나오는 탈것과 아쿠르트 카트의 디자인이 비슷해서 그런 것 같다. 야쿠르트 카트 안에는 유제품과 음료수가 있겠지만, 마시는 플레인 요거트 용기처럼 생긴 근접 전투용 소형 폭탄도 있을 것이다. 그런 게 없을 리가 없다. 프레시 매니저분들은 요원이심이 틀림없다.
게다가 야쿠르트 카트의 그 초록 눈은 깜빡이기도 한다. 심지어 지나가면 말을 건넨다. 이건 유혹하는 자판기 시리즈에서 이미 실현된 것이지만, 자판기는 눈웃음을 치진 않았다.
야쿠르트 카트와 마찬가지로, 박물관에서 로봇이 전시장 위치를 설명해주고, 유리박스에 달린 기계 팔이 커피를 내려주고 있는 것을 보면, 확실히 미래에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미래를 그리는 사고의 물감이 채 마르기도 전에, 현실이 먼저 고전적인 예상을 반박하고 일어난다. 이제 미래는 현재의 식민지이다.
처음 만난 사람에게 ‘고양이파세요, 강아지파세요’라고 자주 묻는다. 고양이파라고 하면, ‘그냥 고양이가 좋으세요, 로봇 고양이가 좋으세요.’라고 물어본다. 로봇 고양이라고 대답하면, ‘그 로봇 고양이는 실제 고양이와 완전 똑같아서 파괴되기 전까지는 로봇인지 모르고 키울 수 있는 고양이에요. 아니면 보기만 해도 로봇 고양이인 걸 알 수 있는 모습이에요?’라고 마지막으로 묻는다.
누가 나에게 같은 질문을 한다면, 내 대답은 보기만 해도 로봇처럼 보이는 로봇 고양이가 좋다고 할 것이다. 외형도 커스터마이징 할 수 있고, 울음소리도 바꿀 수 있는 고양이. 알람을 맞춰두면, 깨어날 때까지 머리를 꾹꾹 눌러주는 고양이. 사료를 챙겨주지 않아도 되고, 실수로 밟아 부서져도 AS를 맡길 수 있는 고양이.
철저하게 과거지향적인 사람이지만, 이런 부분에선 철저히 미래지향적인 사람이다. 내 세대 안에서 이뤄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보도, 니블도 나름 노력하고 있으니.
●
어둠 속에서 나타났다 다시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야쿠르트 카트를 끝까지 바라보았다. 미래의 탁월한 감각이 몸을 타고 흘렀다. 로르샤흐 테스트 마지막엔 제일 마음에 드는 카드와 제일 마음에 들지 않는 카드를 고르라고 한다.
마음에 드는 카드는 검은색 박쥐 모양 그림이었고, 마음에 들지 않는 카드는 정도가 과한 오키프 스타일의 꽃 모양 그림이었다.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
첫 번째는 깔끔하고, 뒤에 건 좀 지나친 것 같아서요.
대답하기 전까진 내가 그런 판단을 내리고 있는지 모르고 있었다. 한 번 그 대답을 하고 나니, 그 외에 다른 대답을 하기 어려워졌다.
내게 미래는 첫 번째 카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