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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명한 조롱

by 설다람

보통 흔히 ‘나도 해냈으니, 당신도 해낼 수 있어요’라는 절대적으로 선하고 옳은 주제의식을 지닌 책들은 저자가 훌륭한 사람이 되고 나서 쓰여 출간된다.

그러면 안타깝게도 그 선하고 옳은 주제 의식은 ‘나는 해냈으니. 너도 해내길 바라요.’로 들리게 된다. 저자는 전혀 그럴 의도가 없었겠지만, 읽는 사람 입장에서는-정확히는 나같이 속이 꼬인 사람-뭔가 조롱당하는 기분이 든다. 누구 약 올리는 것도 아니고. 하는 못돼먹은 생각을 하는 것이다. 적고 보니, 정말 꼬일 대로 꼬인 인간이라는 사실에 새삼 놀랐다.


어떠한 면에서든 납득할 만한 특질과 자질을 지닌 사람이 마땅히 누려야 할 성공과 적당히 건강한 실패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토를 달지 않는다. 다행히도 그런 사람들은 여러모로 공격당하기 좋은 인간적인 결함들이 많은 사람들이다. 그리고 보통 재즈 연주자거나, 물리학자, 화학자들이다. 신으로부터 선물 받은 재능이 있는 사람들을 좋아하는 편인 것 같다.

이건 천재 애호가, 재능 신화 신봉자라서 그런 것은 아니다. 다만 ‘노력’과 ‘긍정’의 힘이 보통 사람들에게 마치 자신이 마주한 벽을 넘어갈 수 있는 사다리라도 되듯이 말하는 태도가 싫을 뿐이다. 대개 ‘노력’과 ‘긍정’의 전도자들은 한계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말한다.

하지만 한계는 분명히 존재하고, 넘지 못할 한계도 분명히 존재한다. 극복은 할 수 있지만, 이길 수는 없는 한계도 존재한다.


한계를 발견했다면, 우선 한계를 구체화시키고 내가 가진 자원이 무엇인지 확인한다. 그리고 한정된 자원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남김없이 소진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한다. 방법을 고안해냈다면, 자원이 지닌 가치를 완전히 이끌어 내는 작업을 시작한다. 한계를 넘는 일은 별개의 문제이고, 우선은 주어진 것을 아낌없이 쓴다. 이것이 내가 구축한 한계 대응 시스템이다.

‘노력’이라는 형태도 될 수 있겠지만, 꼭 ‘노력’이라는 형태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건, 자원을 제대로 모두 썼는가의 문제이다. 다시 말해 자신을 혹사시키는 이유가 다른 것이다. 겉으로 봤을 땐 똑같이 최선을 다하는 것처럼 보인다 해도, 속에서부터 자신을 갉아내는 듯한 느낌은 확실히 다르다. 옳은 방법은 아닐지라도, 이것밖에 할 수 없는 사람이라면, 이렇게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누군가 이 글을 읽었을 때, ‘나는 해냈으니. 너도 해내길 바라요.’라는 조롱 같은 응원을 듣길 바란다. 그렇다면 이 글을 통해 나는 내가 원하는 목적을 이루고 말았다는 것일 테니까. 이 글은 반드시 팔리는 글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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