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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말투가 시비조인 건지, 진짜로 시비를 걸고 있는 건지 몰랐다. 전형적인 독성 말투(Toxic tone) 말투였다,
"있으면 좋으니까, 물어본 거예요. 그럼 최신 업데이트된 기능 목록이라도 주세요."
"드릴게요. 그보다 쉬운 한국어로 설명할 방법은 없지만 개발 지식 없으면 이해하기 어려울지도..."
세안나가 거만하게 말했다.
"걱정 마세요. 물경력은 아니니까."
라선이 받아쳤다.
"퀵펜슬 다니셨다고 들었어요. 최악의 메모앱 만든 곳에서 경력 쌓기 쉽지 않았을 텐데."
퀵펜슬 메모앱이 최악이라는 건 십분 동의했지만, 그 평가가 곧 자신에 대한 평가처럼 들렸다. 참아라, 라선. 여기서 잘리면 갈 곳 없다.
"그렇긴 했죠. 그래도 그런 곳에도 좋은 개발자들이 있더라고요."
"믿기 힘드네..."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면서 세안나는 몸을 돌려 PC로 파일을 찾았다.
"방금 보냈어요."
보지도 않고, 세안나가 말했다. 라선은 웃으며 고맙다고 말하고 자리로 돌아왔다.
고압적인 태도에도 개발 리더를 맡고 있는 걸 보면, 오로지 능력으로 인정받고 있는 뜻이었다. 아직 그룹에 이방인인 라선은 불쾌함을 티v낼 수 없었다.
세안나가 준 기능 목록은 감탄이 나올 정도로 불친절했다. 오로지 자신만을 위해 만든 문서였다. 위계와 구조는 명확했지만, 기능 상세 설명은 쓰다가 만 것 같았다. 상세 설명을 쓰는 것보다 기능을 구현하는 게 더 빠르고, 효율적이라고 생각해서 생략한 것일 테다. 코드 역시 컨벤션도 협의로 정하지 않고, 세안나가 쓴 내용을 기준으로 작성하고 있을 것이라 예상되었다. 다른 개발자들은 따라가기 급급하겠지. 존중하되 끌려가서는 안 된다. 라선은 스스로에게 주의를 주었다.
"세안나 어렵죠?"
허니맨이 점심 식사하면서 말했다. 이미 사내에서 모두가 동의하는 의견이라도, 신규 입사자가 처음부터 동의하는 건 위험했다.
"아뇨, 괜찮아요. 제가 아직 이해가 부족해서 답답한 부분이 많으실 거예요."
"에둘러 가지 않아도 돼요. 다들 알고 있으니까."
알지 못하는 게 더 어렵겠지.
"회사에서 굳이 유대감이나 친밀도를 높일 이유는 없지만, 세안나는 최소한의 동료 의식도 없어요. 가성비가 낮았으면, 바로 잘랐을 거예요."
"가성비요?"
"세안나 NK 출신이에요. 사내 해커톤에서 1등도 했다는데, 동료 평가가 최하위였대요. 실력이 좋으니, 계륵처럼 두다가 사직을 권고했다고 들었어요. 레퍼렌스 체크 때문에 대기업에는 다시 못 들어가고 중소기업을 취직했는데, 거기서도 반사회적으로 굴었는지 이 회사 저 회사를 전전하고 있었었요. 그러다 리코가 소문을 듣고 직접 찾아가 인터뷰하고 채용했어요. 제가 인사 담당인데 일말의 상의도 없이요."
매사에 유(柔)한 허니맨이 세안나를 꽤 심하게 못마땅하게 보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이 인건비에 이 정도 역량의 개발자를 구하기 어려운 건 맞지만, 그렇다고 언제까지고 소통을 무시하는 태도를 그대로 둘 수는 없어요."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다고 해도, 앱 개발은 혼자서 할 수 없다. 규모가 커질수록,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버티진 못할 것이다. 허니맨은 세안나가 대체불가능한 존재에서 언제든 교체할 수 있는 인력으로 변하기를 기다리고 있는지도 몰랐다. 라선 자신처럼 쉽게 뺐다 끼울 수 있는.
"제가 노력해 볼게요. 그런 분들이랑 협업해서 결과물을 내라고 저를 뽑으신 거잖아요."
허니맨은 라선의 태도가 마음에 들었는지, 흐뭇하게 미소 지었다.
식사를 마치고 허니맨은 라운지에 놓인 소파베드에 앉고는 수면 안대를 끼고 낮잠을 청했다. 라선은 사무실을 나와 근처에 강을 따라 난 산책로를 걸었다. 왜가리 한 마리가 날아와 수심 얕은 곳에 내려앉았다. 천천히 발을 옮기던 왜가리가 멈춰서 물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곧장 부리로 팔뚝만 한 잉어를 잡아 올렸다. 왜가리는 입을 조금 벌렸다 닫으면서 자신 목 두께의 두 배나 돼 보이는 잉어를 한 번에 삼켰다. 식성 한번 좋았다. 잡아먹진 못하더라도 잡아먹히지는 않아야 한다.
산책을 마치고 돌아온 라선은 외부에 공개된 사용자 매뉴얼과 기능목록, 실제앱을 대응하는 작업부터 시작했다. 우선은 구조를 그리는 것이 먼저다. 하나씩 작성해 가면서, 궁금한 것들이 차곡차곡 쌓였다. 모른다고 바로 물어서는 안 된다. 최대한 구체적으로 질문을 다듬어야 한다. 그래야 '글'로 옮길 수 있는 구체적인 대답이 나온다. 운 좋은 경우, 질문을 만드는 과정에서 의문이 해소되기도 한다. 무엇보다 지기 싫었다. 테크니컬 라이터가 '테크니컬'하지 않다고, 단지 '라이터'일 뿐이라고. 그러니 스스로 풀 수 있는 부분은 반드시 해결하고 물어야 한다. 바보 취급 당하기 싫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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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필요해요? 어차피 점수만 볼 건데."
'전세 대비 저평가 지수 계산식이 어떻게 되나요'라고 라선이 물었을 때, 돌아온 대답이었다. 세안나는 귀찮은 표정을 지었다.
"그냥 지수 값만 보여주면 설득력이 떨어져요. 툴팁으로 도출 방식과 의미에 대해서 간략하게 설명해 줘야, '왜 이 지표를 봐야 하는지', '이게 왜 중요한지' 알 수 있지 않겠어요?"
"매매 가격과 전세 가격의 증감률을 비교했을 때, 매매 가격의 상승이 전세 가격 상승보다 낮으면 저평가, 높은 고평가."
라선의 말을 털어내듯, 세안나가 말했다.
"전세 가격은 실거주 가격 의미하고, 매매 가격은 투자 가격을 의미하니, 실거주 가격은 높아지고 있는데, 투자 가격은 적게 오르니, 상승여력이 있다."
한 번에 이해하지 못한 라선이 멈춰있자, 세안나가 덧붙였다.
"이렇게 하나하나 다 물을 생각은 아니죠?"
이미 등을 돌리고 세안나는 헤드폰을 쓰고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당연하죠. 여기 리스트예요. 방금 말씀해 주신 것처럼 내용 채워서 주세요."
라선이 인쇄한 리스트를 세안나와 모니터 사이로 내렸다. 헤드폰을 벗고 세안나가 라선에게 고개를 돌렸다. 이게 뭐냐는 표정이었다. 못 들은 모양이었다.
"하나하나 물을 생각 없어요. 여기 리스트에 방금 말씀해 주신 것처럼 내용 채워서 주시면 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라선이 최대한 공격적이지 않은 톤으로 말했다. 날 선 눈으로 라선을 흘겨보고 나서, 세안나가 파일로 달라고 했다.
자리로 돌아가면서 라선은 사람들이 자신을 힐끔힐끔 보고 있는 것을 느꼈다.
30분 뒤 세안나가 파일을 메신저로 보냈다. 다른 말은 없었다. 라선은 고맙다고 답했다. 돌아오는 말도 없었다. 세안나보다 채팅봇들이 더 인간적일 것이다. 앞으로 가장 밀접하게 소통해야 할 사람이 기계 수준의 사교성을 지니고 있다. 사회적 능력의 한계를 시험하기 위해 보내진 NPC일 수도. 파일을 열어 내용을 확인했다. 결과물은 군더더기 없었다. 정확히 조금 전 나눴던 대화처럼 1. 사실 기술, 2. 의미 설명이었다. 덕분에 재료는 모두 준비되었다. 이제 페르소나가 등장할 단계였다. 서른 초반에 생애 첫 주택을 구매하려는 신혼부부는 앱을 열었을 때, 가장 먼저 어떤 기능을 사용할까. 지역을 먼저 볼까. 가격을 먼저 볼까. 아니면 청약이 가장 중요하려나. 아, 그러기 전에 먼저 앱 이용자의 인구통계학적 분포를 살펴야 했네. 오랜만에 '진짜 일'을 하려니, 바리바리 어리바리, 수룩수룩 어수룩이었다. 정보 위계를 다시 세웠다, 재배열했고, 합쇼체를 써보았다가, 해요체로 변경해 보았다. 진짜 일은 진짜 일이고, 만만치 않았다.
그래도 일을 한다. 다시 돈을 번다. 그게 중요했다.
3시간이 지났고, 녹아내리는 집중력을 다시 얼리기 위해 라운지로 가 얼음물을 마셨다. 순정한 맛이었다. 소파에 앉은 라선은 저릿한 손목을 풀었다. 직장 생활을 한 후부터 시달려온 통증이었다. 물을 다 마시고 남은 얼음을 흔들었다, 얼음이 상쾌한 소리를 내며 부딪쳤다. 얼음이 잠길 만큼만 물을 따르고 다과 보관 서랍을 열어 쌀과자 하나를 꺼냈다. 마땅히 누릴 수 있는 복지였는데, 라선은 어딘가 죄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어릴 적 편의점에서 쿠키를 몰래 훔치다가 걸렸던 날이 기억의 문틈을 열 때가 있기 때문이었다. 점주가 아버지를 불렀고, 다급히 도착한 아버지의 얼굴은 굳어 있었다. 아버지는 점주에게 공손히 사과를 했다.
가게를 나오고 나서 상가 옆에 있던 벤치에 아버지와 나란히 앉았다. 라선아, 쿠키가 먹고 싶으면 돈을 내고 사서 먹어야 해. 네 것이 아닌 걸 허락 없이 들고 가는 건 절대 해선 안 돼. 그 말을 할 때, 아버지의 목소리가 떨렸던 것이 떠올랐다. 절대 해선 안 돼. 압정처럼 박힌 기억이었다. 쌀과자를 움켜쥐고 자리로 돌아가려고 했을 때, 세안나가 라운지로 왔다. 헤드폰을 벗어 목에 건 세안나는 핏기 없는 얼굴로 냉장고로 갔다. 먼저 말하지 않으면 절대 인사하지 않을 유형이었다.
"바쁜데도, 빨리 답 줘서 고마워요."
라선이 가볍게 목례하고 말했다.
"바쁜데 귀찮게 해줘서 고마워요."
말본새하고는. 괜히 말 걸었다고, 이렇게 빨리 후회하게 될 줄이야.
"다음에 밥 살게요."
타인의 밥을 산다는 건, 생존 도시락만 먹는 라선에게 상당한 지출이었다. 그 의미를 아는 사람은 없지만.
"앞으로 사용자 매뉴얼 개선 건으로 저한테 오거나, 묻지 마세요. 그 정도는 그냥 알아서 있는 자료로 해결하세요. 어차피 매뉴얼 같은 거 아무도 안 보니까."
라선은 자신의 낯빛이 흐려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래도 계속 얼굴 볼 사이니까, 테크니컬 라이터가 개발 리더와 부딪쳐서 좋을 일 하나 없으니까. 참았다. 하지만 이런 태도로 오래갈 순 없었다. 한쪽이 굽신거려서 일이 굴러가면, 그건 일이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뜻이었다.
"세안나 부자고고 앱 써본 적 있어요?"
세안나가 장난치냐는 표정을 지었다.
"개발자들이 그럼 앱 작동 안 해보고 무슨 일을 하죠?"
"앱 '작동'이 아니라, '사용'이요. 부자고고 앱으로 한 번이라도 매물 찾아본 적 있어요?"
"안 찾아봤을 리가요, 내가 만든 앱인데!"
어이없다는 듯이 세안나가 대답했다.
"그 앱으로 실제로 살 집을 찾기 위해서, 다른 단지, 다른 아파트랑 비교해서 진짜 이 집에 내 돈을 전부를 걸어도 되는지를 고민해 본 적 있냐는 뜻이었어요."
라선이 쏘아붙였다. 볼이 상기된 게 느껴졌다. 흥분했고, 넘지 말아야 할 선 끝에 있었다. 세안나도 라선을 노려봤다.
"언제 봤다고, 저보고 집을 찾아보긴 했네, 어쨌네,라고 감히 말하죠? 그럼 라선은 찾아본 적이 있나요? 그렇게 찾은 집 매매는 해봤어요?"
못 했을 것이라는 전제가 깔린 말이었다. 그게 사실이라서 더 화가 났다.
"그럼 세안나는 해봤어요?"
말소리가 컸는지 라운지로 들어오려던 직원이 발을 집어넣었다가 뺐다.
세안나가 입을 열고 독을 뱉으려는 순간,
출장을 마친 리코가 사무실로 돌아왔다.
[다음 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