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은 일반고를 포기하고 대안학교에 입학했다.
기숙사 생활을 2년 하더니 기숙사 생활은 그만하고 싶다며 자취생활을 시작했다.
아직 성인이 되지 않은 아이를 혼자 자취를 시키는 게 괜찮을까 걱정했으나,
스스로 잘 살 수 있다며 방을 구해달라고 했던 아들.
여력이 된다면 더 좋은 집을 구해주고 싶었다.
그런 내게 아들은 미안해하지 않아도 된다며, 집이 마음에 든다고
어버이날 편지에 써주었다.
그 뒤로 나는 서울에 베이스캠프가 생긴 것 같았다.
혹시나 볼일이 있어 가게 될 때 숙박장소가 되었다.
서울 나들이 겸 종종 아들을 보러 다니곤 했다.
기숙사 생활을 할 땐 코로나가 한창이라 방 구경 한 번을 제대로 하지도 못했다.
밖에서 만나 밥이나 사주고 올 수밖에 없었다.
아들 집에 가면,
한눈에 들어오는 방을 휘익 둘러본다.
청소는 잘하고 사는지, 빨래는 잘해서 입고 다니는지.
뭘 해 먹기는 하는지..
손이 갈 곳이 많다.
방청소를 하고, 쓰레기를 버리고,
화장실 청소를 하고, 빨래도 해서 옷들을 정리해 놓고
작디작은 집이어도 할 일은 다르지 않다.
사람살이가 그렇다.
겨우 한 사람 사는 좁은 공간에도 있을 건 있고, 할 건 해야 하고.
아들은 청소도 잘하고 분리수거도 잘하고 있다고 하지만
사각지대는 존재한다. 내 눈에는 다~ 보인다.
손길이 더 필요한 곳에 손길을 내어주고,
쓸고 닦고 버리고 하다 보면
예전에 우리 집 이사할 때 엄마 모습이 생각난다.
나보다 더 내 집처럼 쓸고 닦던 엄마.
그때의 엄마 같구나. 내가.
아들 집에 다녀오면서
그렇게 엄마의 손길이 닿았다는 흔적을 아들이 느끼고
그걸로 어떤 삶의 안도감 같은 것을 느낀다면
그것이 나의 쓸모라는 것을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