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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십대 제철 일기 Jul 28. 2024

10년 차지만, 응애입니다

사회초년생은 어려워(하)

사회초년생, 입사 이틀 째. 나는 차장님에게 화장실을 다녀와도 되겠느냐고 물었다. 그 질문조차도 여러 번 썼다 지웠다를 반복했던 시도였다. 아무것도 모를 때였다. 대학생 때는 여러 대외 활동을 했고 졸업한 뒤에도 아르바이트나 인턴 생활을 했지만… 어쩐지 '진짜 직장인'으로서 첫 발을 내딛을 때는 긴장이 되어 자주 삐끗했다.


나는 메신저를 보낸 뒤 차장님의 답변을 기다리면서 초조해했다. 누군가는 이 에피소드를 보고 '어디 모자라는 사람 아니야?'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다 큰 성인이 무슨 화장실 다녀오는 걸로 저렇게 고민을 하고 물어보기까지 해?! 하지만 차장님은 어쩐지 익숙해 보였다.


「그런 건 자유롭게 해.」


답장을 받자마자 나는 쏜살같이 화장실에 다녀왔다. 이왕 간 김에 거울도 보고 매무새도 좀 확인하고 천천히 나와도 될 것을! 정말 볼일만 보고 손을 닦은 뒤 물기를 대충 닦으며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매일이 긴장의 연속이었다.



생각보다 업무는 금방 적응이 됐고, 인간관계에서도 애를 썼다. 난 야근이나 회식을 마다하지 않았고 오히려 뭐든 성실히 임했다. 얼마 안 가 회사 내에서 '일도 잘하고 빠릿빠릿한 신입'이라는 평을 들었다. 나는 칭찬에 힘입어 더 열심히 했다.


점점 더 많은 업무가 주어져도 해내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고, 여기저기서 날 찾아도 그저 내가 잘 적응하고 있다는 생각에 뿌듯해했다. 하지만 인생이 어디 내 뜻대로 되나? '생각보다 할 만 한데?'라는 생각이 들 때쯤 사회의 쓴맛을 맛봤다.


아홉 번 잘하던 사람이 한 번만 못해도 평가가 뒤집혔다. '쟤 알고 보니 별로네', '일 잘한다더니 꼭 그렇지도 않던데?', '좀 튀려고 하는 것 같지 않아?' 직접적으로 타박하기도 했고 뒷말도 나왔다. 매일 이어지는 회식이 힘들어서 한 번 거절해도 눈치를 줬고, 업무를 잘 해낼수록 견제를 당했다.


너무 튀지 않는 것과 적당히 성과를 내는 것 사이에서 줄타기를 해야 하는 게 사회생활이었다. 반대로 억울하기도 했다. 아홉 번 못 하던 사람이 한 번만 잘해도 평가가 뒤집힐 때가 있었기 때문이다. '애가 투덜대긴 해도 마음은 여린 것 같던데', '게으름 피우는 것 같더니 할 건 하네', '생각보다 괜찮은 거 같은데?'


냉정한 줄 알았던 사회가 멍청하기도 했다. 사회생활이라는 것은 '잘못된 경기' 같았다. 모두가 선수이자 심판이었고, 실력보다 인맥이 작용해 오심하는 경우도 많았다. 나는 그 판에서 벌써 10년 차로 일하며 아직도 헤매고 있다.


그 사이 이직도 했고, 다양한 경험을 쌓고, 많은 변화가 있었다. 나의 직무에 권태가 오기도 하고 지나치게 열정을 부리다가 번아웃이 오기도 했다. 그러다 후배들을 만나면 정신이 차려질 때가 있다.


패기 넘치는 신입사원들을 보며 나도 그에 맞춰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여주겠노라 다짐할 때도 있는가 하면, 끝이 보이는 후배들을 만나면 나 또한 느슨해지지 않으려 정신을 번쩍 차린다. '선배 눈에는 다 보인다'는 게 무슨 말인지 여실히 느끼는 때다.


요즘 사회초년생들을 커뮤니티에서 '이상한 걸' 배워온다고 한다. 그걸 요약해 보자면 이제 '회사 생활 잘하는 법'은 성실이나 인내가 아니라 '손해보지 말고 내 몫은 내가 챙기면서 일하자' 정도가 된 듯하다.


가령 '퇴근 인생을 수 있도록 칼퇴근하자', '어차피 평생직장은 없으니 적당히 일하자', '날 뽑아놨으니 모르는 건 당연히 알려줘야지', '굳이 막내라고 해서 식당 가서 수저를 놓거나 고기를 구울 필요 없다', '회식하면 몸만 상하니 당당하게 빠지자' 등등.


질리도록 야근과 회식을 해 온 나로선 절대 같은 코스를 추천하고 싶지 않다. 못하는 건 못한다고 거절해야 하고 몸에 좋을 것 하나 없는 술자리도 비추다. 10년 전 나처럼 과하게 쪼그라들어 있을 필요도 없고, 모두와 잘 지낼 수도 없다.


하지만 이 이상한 경기장에선 모두가 선수이자 심판이라는 걸 간과해선 안 된다. 언제 어디서 누군가가 나를 실격 처리할지 모른다는 것. 사회초년생 때는 원래 힘들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힘들지 않길 바라는 욕심일 뿐. 그러니 배워야 최대한 배워야 한다. 일을 가르쳐주는 이에게 고마움을 갖고서.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정직한 심판을 만나 메달도 따고, 스카우트 제의를 받고 더 좋은 리그로 가는 날이 온다. 이건 사회초년생뿐만 아니라 나에게도, 선배에게도, 모든 선수에게도 그렇다. 이 너른 경기장에서 10년 차쯤이야, 응애지 뭐. 이 시대 모든 직장인들이여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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