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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십대 제철 일기 Aug 03. 2024

'손해 보는 결혼'을 하겠다고 외치다

계산기 두드리지 말 것!

'K-결혼'이라고 말하는 한국의 결혼은 꽤 어렵다. 여러 관례와 남들 시선을 의식하다 보면 끝도 없는 비용과 시간을 들여야 한다. 정성보다는 돈, 진심 어린 축하보다는 계산이 먼저 나오기도 한다. 비정상적인 웨딩 산업도 예비부부들을 지치게 한다.


이 과정에서 예비부부들이 종종 부딪히고 결국 갈라서는 경우도 허다하다. 우리 부부 역시 결혼을 준비하면서 크게 싸우거나 몰랐던 모습(?)을 보게 될까 조금 걱정했지만 다행히도 우리는 한 번의 충돌 없이 무사히 결혼식을 치렀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생각해 보면, 그때 우리가 자주 하던 말이 있다.


"이제 우린 한 배를 탄 거야."


정말 그런 느낌이었다. 결혼 준비를 하면 무수한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머리를 맞대고 크고 작은 선택을 함께 결정해야 했고, 그때마다 수백만 원 수천만 원의 비용이 들다 보니 벌벌 떨리는 손을 맞잡아야 했다. 우리는 가족이기 전에 '한 팀'이 된 느낌이었다.


힘든 감정은 오히려 밖에서 왔다. 내 인생의 가장 큰 파티에 사람들을 어떻게 초대해야 하는지가 참 어려웠다. 청첩장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돌려야 하는지 판단하는 것도 어려웠고, 초대하는 과정에서 자꾸만 계산기를 두드려야 하는 상황도 힘들었다.


결국 우리는 결정했다.

이름하야 '손해 보고 결혼하기'로!


남편과 나는 우선 청첩장 모임에서 쓰는 돈이나 결혼식 날 들어오는 축의금에 대해 절대 계산하지 않기로 했다. 결혼식에 와주는 것만으로도 고맙다는 마음을 갖기로 했고, 그다지 친하지 않은 관계라면 청첩장을 돌리지 않기로 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쉬워졌다. 내가 친하게 지내는 사람과 종종 연락했던 사람에게만 결혼 소식을 알렸고 청첩장 모임도 빨리 끝났다. 결혼식 당일에 하객이 별로 없을 것 같아 불안하긴 했지만 그래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다 오겠거니 하는 마음이 컸다.


그래서 더 실망이 컸던 것 같다. 직접 만나 밥을 사고 청첩장을 준 사람 중에 결혼식에 오지 않는 사람이 더러 있었다. 참석하지 못한다고 미리 연락을 주지도 않고 결혼식이 지나도 연락 한 번 없는 경우도 있었다. 나는 결혼식을 잘 마치고도 이들은 불쑥 생각나곤 했다.  


나는 내게 축의금을 한 사람들의 목록을 정리해서 그들에게 감사 기프티콘을 보냈다. 어찌 됐든 축의금을 많이 한 사람에게는 값이 더 나가는 선물을 보냈는데, 그러다 보니 자꾸 '돈'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분명 나는 10만 원을 축의 했는데 5만 원만 보낸 사람도 있었고, 대가족이 와서는 축의금을 적게 한 사람도 있었다.


어느덧 나는 미친 듯이 계산기를 두드리며 내가 얼마나 손해를 봤는가에 빠져 우울해하고 있었다. '손해 보는 결혼을 하자'는 다짐은 까맣게 잊었다. 심지어 우리는 결혼식이 끝나고 모든 축의금을 각자의 부모님께 전부 드리며 계산기를 꺼놨었다.


그래놓고 왜 다시 계산에 빠졌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보이기 시작했다. 나를 축하해 주러 황금 같은 봄날 주말 길을 와준 사람들, 내가 직접 소식을 알리지 않아도 찾아와 준 이들, 결혼식이 끝날 때까지 햇살처럼 웃으며 비춰준 사람들.


다시 보니 고마움 투성이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본질은 축하하는 마음이라는 것을. 난 나의 결혼식 이후부터는 내 결혼식에 왔거나, 청첩장을 주며 고마움을 표시하는 사람의 결혼식엔 모두 참석했다. 아무리 먼 길이어도 주말 오후여도 좋은 마음으로 다녀와 진심으로 축하를 해주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아무것도 받지 않고도 결혼식에 다녀왔다. 상대방이 고마워하지 않는다면 그 길로 관계를 정리했고, 고마워한다면 그것만으로도 깊은 축하를 했다. 기쁜 날 가장 중요한 건 돈도, 계산도 아닌, 마음을 주고받는 것이니까!


ps. 하지만 그렇다고 기본적인 예절을 간과하는 건 금물. 다음 편에선 'K-결혼 예절'에 대해 정리해 보겠습니다.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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