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만' 할 수 있는 일

유약했지만, 어떤 때보다 찬란한 그 시절

by Gabi깨비
출처 : 픽사베이

EP1. Connecting the Dots : 고3 문과생의 신분세탁의 꿈

지금의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되었을까, 돌이켜 생각해 보았다. 어린 청춘의 방향을 정했던 건 고등학생 때부터였다. 영어수업에서 스티브 잡스의 'Connecting the dots' 연설을 감명 깊게 봤다. 스티브 잡스는 대학생 때 때 캘리그래피 과목을 수강을 했다. (6개월 만에 대학을 때려치우긴 했지만) 그때 아름다운 서체를 배웠었고, 훗날 다양한 글씨체를 포함한 매킨토시를 출시했다. 지금 당장 하는 일이 무의미해 보여도 훗날 돌아보면 중요한 의미가 된다. 본인이 진심으로 '좋아하는 일'을 해 나가다 보면 이 점들이 이어진다. 이것이 바로 스티브잡스의 'Connecting the dots' 핵심이다.


그때부터, 가지고 있는 능력과 어떠한 것을 억지로라도 연결을 시키고 싶었다. 나의 시작점(Dot)은 외국어였다. 중학생 때 학교를 3번이나 옮겼던 거 치고는 성적이 그렇게 나쁘진 않았다. 질풍노도 사춘기 시기는 3번의 이사를 감당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벅찼다. 운이 좋게도 외국어고등학교를 진학했고, 거기서부터 '중국어학과'를 처음 시작했다. 여기가 내 커리어의 시작점이다.


고등학교 3학년,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Turning point가 찾아왔다. 그때도 어문계열 학생은 취업이 잘 된다는 보장이 없었다. 그리고 나는 스티브 잡스와 같이 창조적인 일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러려면 이과에 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은 문이과가 통합되어서 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야 하겠지만, 지금 90년 대생들은 깊은 알 거다. 그때는 이과생, 문과생 경계는 철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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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근데, 잠시만, 정신 똑바로 차려. 나 자신.

이제 막 외고 3학년 됐잖아. 이제 와서 이과공부를 하라고?

그것도 일주일에 10번씩 중국어 수업이 있는 이 외고에서?

그러면 이과애들 점수만 깔아주는 꼴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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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을 직시하고 곧바로 생각을 바꿨다.

"그러면 문과로 갈 수 있는 가장 좋은 대학교를 가자.

가고 나서 대학교 전공을 이과로 복수 전공하자."

그때부터 문과생의 신분세탁 꿈을 꿨다. 그렇게 중국어학과와 응용화학과를 동시에 졸업할 수 있었다.


EP2. 대학 입시_무지(無知)와 운명(運命)의 판가름

14학번부터 대학지원 개수를 6개로 제한을 뒀다. 원서접수비 쓰는 게 눈치 보여서 딱 서강대, 성균관대, 경희대, 숙명여대, 부산대 5개를 지원했다. (왜 그랬지? 어리석기 짝이 없다) 이땐 '학과'에 대한 개념 자체가 없었다. 흔히 말하는 문과의 꽃 법학과, 경영학과, 경제학과는 갈 생각이 없었다. 왜 그랬을까. 그때는 오직 대학 이름에만 치중을 했다. 지원했던 대학교 학과를 모두 중국어학과로 통일을 시켰다. 학교 네임밸류만 보고 가려고 그렇게 했다. 'XX대의 경제학과 vs OO대의 경영학과'를 저울질하는 게 귀찮아서.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무지했고, 어쩌면 중국에서 살게 될 운명을 스스로 만들었던 거 아닐까 싶다.


Unnie Noona's Tip

문과의 꽃이라고 불리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공기업 가고 싶은 친구들은 꼭 경영학과, 경제학과, 회계학과와 같이 '회사'와 관련된 상경계열 학과를 선택해라. 이미 학과선택해서 대학교에 다니고 있다면 복수전공이나 부전공이라도 들어라. 공기업 시험준비하면서 돈 몇 백 쓰고 피눈물 쏟으며 후회했던 포인트다. 물론 지금은 다른 회사 잘 다니고 있지만, 내가 경영학과나 경제학과를 나와 공기업에 취업한 세계선은 어땠을까, 지금도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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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 인생은 퀘스트 깨고 경험치 먹기 게임

게임에서는 캐릭터를 경험치를 먹여 레벨업을 하지 않나? 인생도 똑같다. 20대 때는 최대한 많은 퀘스트를 깨고 몬스터를 죽여야 한다. '20대'라는 만능포션이 있기 때문에, 퀘스트 하다 지쳐 쓰러져 버리더라도 다시 부활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아르바이트던, 여행이던, 어학연수던, 인턴이던 그냥 그 나이 때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해 봐라.


20대의 가장 큰 장점은 "저 이거 처음인데요?"가 통한다는 것.

그래서 좀 실수해도, 뭐가 좀 잘못되더라도, 실패하더라도 크게 무너지지 않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시기다. 좌절해도 금방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회복탄력성이 가장 좋을 때. 지금 내가 서른 살 나이 먹고 "저 이거 처음인데요?"시전 하면, " 이 나이 먹고 배운 거 없이 뭐 했냐"라는 소리가 돌아온다. 그러니 젊다는 이유 하나로 무엇이든 도전해도 된다.



그렇기에 어린 나이에 할 수 있는 거 다 해보자
다양한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기회니까 말이야.


Dot 1. 식당 아르바이트_첫 월급 & 첫 인정

나의 첫 알바는 베트남 쌀국수 식당이었다. 학교 앞 점심 공강시간을 활용해서 2-3시간 짧게 일하고, 술 마시고 놀기 좋게 유흥비 정도를 벌 수 있었다. 사장 부부는 정말 좋으신 분들이었다. 일을 1시간이라도 하면 쌀국수 한 그릇씩 말아주셨다. 그때 2014년 최저임금이 5천 원대였고, 그곳 시급이 6천 원이었다. 8천 원짜리 베트남 쌀국수를 알바 갈 때마다 말아주셨다. 가난한 학생시절 고급 밥 한 끼 처리할 수 있는 곳이었기에, 대타 구하는 일에 무조건 손을 들었다.


손님들이 드셨던 자스민차 컵에 립스틱을 박박 닦아가며 일하는 와중에, 주방 아주머니께서 이런 말을 해주셨다. "너 같이 일 잘하는 알바생 처음 본다" 쌀국숫집에서 내 인생 처음으로 '일'에 관련 칭찬을 들었다. 그때 깨달았다. "아, 나 생각보다 일 잘하는 편이구나? K-장녀 짬바가 어디 안 가는구나" 그걸 계기로, 비록 식당 웨이트리스 일을 하더라도 내 '성과'에 대해서 '인정'을 해주는 게 기쁜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 여기서 처음으로 푼돈이었지만 월급을 받아서 부모님 '브랜드 빨간 속옷'을 선물해 드렸다. 아버지는 맨날 군인팬티만 입으시다가 강렬한 빨간 속옷을 받았는데, 글쎄 아빠가 중요한 날에만 그 속옷을 입는다는 얘기를 듣고 아직도 웃음이 난다.


또 학교 근처에 고깃집에서 주말 아르바이트를 했다. 돼지띠인 내가 매일 돼지고기 냄새가 달고 살았지만, 높은 시급 만원을 포기할 수 없었다. 알바 인생 최대 실수 '주문누락'이란 것도 해봤다. 아들과 함께 온 아버지셨는데 너무 죄송해서 석고대죄를 하고 싶은 지경이었다. 다행히 큰 화는 내지 않으셨다. 사장님이 음료수 서비스로 드리라며 배려도 해주셨다. 그 이후로, 나는 알바들이 뭔가 실수를 했어도 그때의 내가 생각나서 화를 내지 않는다. '팁'이란 것도 받아봤다. 아저씨들 무리였는데, "남은 금액은 학생해~" 하면서 남겨주셨다. 내가 어떤 손님이 돼야 대접받을 수 있는지, 어떤 손님이 또 잊을 수 없는 사람인지 깨달았다.

맛있는 쌀국수 한 그릇 출처 : 픽사베이


Dot 2. 올리브영 아르바이트_날 싫어했던 사수와도 함께 일본 여행

올리브영 알바는 거진 9개월을 했는 데, 인턴일을 시작하면서 그만두게 되었다. 종종 올리브영 빅세일 같이 큰 행사날 도와드리러 콜 되기도 했다. 대기업 알바는 확실히 달랐다. 매뉴얼도 있었고, 야근수당 등 정말 확실하게 잘 챙겨주셨다. 그리고 거기서 처음으로 부자란 어떤 사람인가 볼 수 있었다. 올리브영 사장님은 부자였다. 정말 평범하게 보이지만 지갑을 열면 5만 원권 현금이 빵빵, 여유로움이 흘러넘쳤다. 올리브영과 투썸, CJ계열 가게들을 한 역세권에 가지고 계셨다. 사업이란 해본 사람이 잘 아는 거구나 배웠다.


그리고 거기서 처음으로 어려운 상사를 만났다. 올리브영은 점장 밑에 정식직원, 그리고 알바생으로 이루어졌다. 거기에서 처음으로 '기분 = 태도'가 되는 사람을 만났다. 처음엔 무서웠고, 어려웠고, 많이 혼났고, 날 싫어한단 기분까지 들었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 생각회로를 바꿨다. 그 사람은 '일 때문에' 화가 난거지, '나 때문에' 화가 난 건 아니라고 생각하고, 주눅 들지 않았다. 저기압이면 저기압인대로, 좋으면 좋은 대로 그렇게 맞췄다. 그랬더니, 퇴사하는 막바지에 일본여행을 제안하셨다. 본인이 비행기표를 내줄 테니 같이 가자는 말에, 난 바로 OK를 했다. 그렇게 인생처음으로 직장동료와 해외여행을 다녀오게 되었다. 날 선 까칠한 말투 너머에 있는 진심을 간파할 수 있었고, 그 이후로 어떤 상사를 만나든 겁먹지 않게 되었다.


나를 참 많이 아껴주던 조선족 직원분도 계셨는데, 내가 중국어학과 출신이어서 그랬는지 참 뒤에서 잘 챙겨주셨다. 같이 K-POP아이돌 덕후였다. (역시 덕질하는 사람이 마음이 따뜻해) 퇴사를 한다고 하니 정말 많이 아쉬워하셨다. 내가 떠날 때 아쉬운 사람이 많다는 건 그만큼 잘했다는 뜻이니까. 떠나면서 한 번 더 나의 빈자리를 느껴본다.


Dot 3. 교육 관련 알바_대학교 등록금 뽕 뽑는 전략

일단 나온 대학교 이름이 있어야 과외도 할 수 있다. 학벌주의인 우리나라에서 명문대 마크는 마패와 같다. 덕분에 중국어, 영어 과외로 코로나 때도 본인 밥벌이는 했다. 반항하는 사춘기 때문에 꽤나 고생하시는 엄친딸을 맡아서 과외한 적이 있다. 알고 보면 그 아이는 자신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주는 사람이 없어서 삐뚤어지게 행동했다. 그래서 친구처럼 행동했다. 10대 때 예민한 감정선, 복잡 미묘한 친구관계, 어려운 이성관계, 시시콜콜한 이야기 모두 다 들어준 다음에, 나의 영업이 시작됐다. 그러고 어머니 친구가 나에게 굉장히 고마워하셨다. 자기 딸이 드디어 공부에 제대로 불이 붙었다고 말이다. 내 결혼식에 참여도 해준 예쁜 제자가 지금도 참 많이 고맙다.


좋은 대학일수록 강의 외에 좋은 프로그램이 많다. 거기에서 내가 제일 잘 활용했던 건 '공자아카데미'와 '멘토링봉사활동'이다. 공자아카데미로 1년 동안 장학생으로 선정되어 기숙사비, 학비, 생활비까지 받으면서 무료로 중국유학을 했다. 이걸로 난 아직까지도 효녀부심을 부린다. 또 하나는 멘토링 봉사활동. 매주 토요일마다 초등학교 친구들과 함께 창의활동을 하며 봉사시간 인정도 받고, 활동비도 받았다. 대학교 수업만 다니면 등록금이 아깝다. 어떤 프로그램에 내가 참여할 수 있는지 눈에 불을 켜고 찾아서, 등록금 그 이상 뽕을 뺄 것!


+) 중국어학과 등록금이 300만 원인데, 이과는 실험비 등 때문에 응용화학과는 등록금이 500만 원이다. 난 문과 등록금 베이스로 이과를 복수전공을 했으니, 효율적으로 잘 뽑아먹은 셈.

출처 : 픽사베이


Dot 4. 축제도 일이다_커리어와 연결되는 시작점

단기알바는 짧은 시간 동안 큰돈을 받을 수 있다. 방학 때 계절학기수업 듣고 하면 딱 좋다. 알바몬, 알바천국에서 시급 높고(제일 중요) 재밌어 보이는 것들은 다 갔다. 축제 진행보조 알바는 진짜 말 그대로 축제 한복판에서 연예인도 보고, 돈도 벌고 제일 재밌는 알바였다. 송도맥주축제, 지역축제 즐기면서 돈 받는 일도 제대로 해보자.


또 다른 단기알바로는 전시회 통역 아르바이트가 있었다. 이 경험이 또 다음에 이야기할 코트라 해외전시팀 인턴에서도 이어진다. 지금 하고 있는 기술통역의 초석이 되기도 했다. 중국-한국엔지니어 간의 의사소통을 돕는 역할이었다. 이과 복수전공 짬바 덕분인지, 엔지니어가 하는 말을 거의 다 이해했다. 전문 통역가에 못지않게 잘하고 있다 칭찬받았으니, 흐음, 빈말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어린 중문과 학생에게 '기술통역'의 불을 지피기엔 충분했다. 내 커리어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준 말이었다. 내가 지나간 점들은 아무렇게나 놓여 있는 것 같지만, 다 한 점 한 점 연결이 된다. 이과 복수전공부터 시작해서 전시회 통역 아르바이트 때부터 본격적으로 던진 그 돌이, 공기업 전시회팀 업무에 맞고, 엔지니어 업무에 맞아 떨어 들어갔다.

출처 : illustAC



나를 레벨 업시킨 20대의 퀘스트

이제 서른이 된 지금은 새로운 사람을 만날 힘도, 아르바이트할 기력도 없다. 그렇지만 이전에 여러 가지 알바를 하면서, 또 거기에 만난 사람들을 보면서 지금의 나의 가치관을 만들었다. 지금 이 글을 보고 있을 어린 청춘들에게 고한다. "학점 따느라 바쁘겠지? 공부하느라 바쁘더라도, 1-2시간이라도 짬을 내서 알바를 하고 사람을 만나라" 대학교에 없는 인간군상을 볼 수 있는데, 되돌아보면 작은 경험들이 도움이 된다. 거지 같은 사람도 보고, 보고 배울 수 있는 동료들도 만난다. 그러면 새로운 '나'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본인이 무엇에 반응하고 설레는지 알 수도 있다. 나 자신을 잘 안다는 착각은 버려라. 사람은 다양한 상황에 처하면서, 다른 사람과 부딪치며 진짜 자신을 깨닫는다. 그리고 그런 경험은 20대만이 할 수 있는 특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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