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안 Nov 07. 2024

제발. 119 구급차만 타지 말자!

그들은 내가 시험장에 그렇게 나타날줄 꿈에도 몰랐다.

시험 당일 새벽까지 나는 쉽게 잠을 이루지 못했다.

아니. 정확하게 얘기하자면 구술시험준비를 하느라 꼬박 날을 샜다.


이 자격증 시험은 1차 실기 시험이 끝나면

말에서 내리자마자 대기실에서 몇 분 동안 기다렸다. 그러면 바로 점수가 통보되고 1차 시험당락이 결정되었다.


합격점수를 받는 시험자는 1차 실기 시험을 치르느라 여전히 호흡이 진정되지 않은 상태로

헐떡거리면서 구술시험을 보게 되는 거였다.


실기 시험준비도 온 에너지를 쥐어짜며 준비했지만

구술도 만만치 않아서 나는 그동안 구술 대비 요약본을 A4 40장 분량으로 쭉 정리한 뒤 한 달 동안 달달달달달 외웠다.

그리고 핸드폰 음성 녹음에 내용을 녹음해서

차로 이동할 때마다 중얼중얼 외우며 준비를 했다.

예상문제의 첫 문장의 한두 단어만 나와도

척! 하니 답이 나왔다.


시험 당일 밤새 공부를 하고 보니 날이 밝았다.

아침에 거울을 봤다.

머리는 산발이었고 내 눈은 핏줄이 올라 퀭하니 동태 눈깔이었다.

큼! 부스스한 내 몰골을 보면서 나를 격려했다.


야. 오늘이다. 준비 됐냐?

오늘 119 구급차만 안 타면 된다.

어.그리고..... 합ㄱ....

됐고!

A C! 그냥 즐겨!


시험 며칠 전 내 친한 동기들이 말했다.

친구야. 너 시험 볼 때 우리가 응원 가려고.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1초도 안돼서 말했다.

오지 마. C!


친구들은 시험 연습마장 옆에다가

ㅡ합격 기원! 내 친구 ㅇㅇㅇ! 힘내라!ㅡ

응원 현수막을 걸고 싶다고 안달을 했다.(우쒸!)


응원 로고가 박힌 티셔츠를 단체로 맞춰서 입고서

문구점에서 먼지떨이 총채를 사서 두 손에 들고

연습마장 울타리에 나란히 서서 응원을 하겠노라.

농담 삼아 얘길 했다.


하지 마 C! 너네 오기만 해 봐.

내가 짱돌을 던져 불라니까!

나 지금 엄청 예민하니까 암 껏도 하지 마.

하지 말라고!


흰색 실크 셔츠에

스판끼가  짱짱하고 몸매가 쫙 드러난

대회 규정 검은색 대회 재킷을 입고

흰 승마바지를 입고 부츠를 신고서 시험장으로 향했다.


시험장엔 다행히 내 친구들이 현수막은 걸지 않았고 치어리더들처럼 먼지떨이를 들고

응원가를 부르는 일은 없었다. 내가 내 친구들을 향해 짱돌을 던질 일도 없었다. 다행이었다.


시험장소가 다른 학교 실내 마장이라

내  시험 짝꿍말 호크는 전날 미리 그곳 마방에 들어가 있었다.

시험 전 마지막 연습할 때도 역시나

호크는 발광을 하며 난리를 쳤고

덕분에 내 정신상태는 안드로메다로 갔었다.

나는 호크 갈퀴를 예쁘게 따주면서 사정을 했다.


호크야. 오늘은 누나한테 중요한 날이야

그니까 오늘은 지랄하면 안 돼. 응?

너. E C!

오늘도 누나를 우주로 날릴 생각은 하지마라아. 오늘은 아니야. 알겠지?

잘 부탁해.


호크와 짝꿍이 되어서 첫 번째로 시험을 보는

ㅇ감독네 코치가 말위에 올라갔다.

그는 이제 막 시험장에 들어갈 참이라

연습마장에서 워밍업을 했다.


시험 순서가 다가오는 시험자들도

연습마장에서 자기 짝꿍말들과

수직 장애물과 쌍둥이 수직장애물 옥사를

몇 번씩 넘으며 몸을 풀었다.


연습마장 울타리 옆에서 호크 상태를 보니

컨디션이 무척 좋아 보였다.

처음 시험을 치르는 호크는 다른 말들 사이에서 한껏 신이 난 모양이었다.

발걸음은 탱탱볼이 튕기듯이 가볍고 리드미컬했으며 장애물 점핑 때는 물 흘러가듯이

사뿐하게 넘고 착지를 했다.


마치, 다른 말들에게 뽐내는 듯한 발걸음이었다.

나 봐라. 나 이런 거 진짜 잘한다. 하듯이!

오! 오늘 호크 발걸음 좋은데요?

호크 위에서 코치가 말했다.

호크가 오늘은 중요한 자리에 오니까

이제야 정신을 차렸는갑다. 생각하면서

나는 안심을 했다.


코치가 시험장에 들어갔다 나왔고

구술 시험장까지 무난하게 갔다 온 모양이었다.

코치는 신이 나서 다음 시험을 치를 우리에게

넌지시 말했다. 이런저런 문제가 나왔다고.

뭐. 별거 아니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시간이 좀 지난 후에 호크와 두 번째로 시험을 볼 마장 동기가 말 위에 올랐다.

호크 컨디션은 여전히 좋아 보였다.

이제 곧 시험장안으로 들어갈 그 사람은

호크와의 연습에 초집중을 한 듯했다.

호크는 이미 첫 번째 시험을 치른 상태여서 충분히 몸이 풀린 상태였기에 지켜보던 감독이 장애물만 몇 번 점핑을 하고 호크 체력을 아끼라고 말했다.


그 사람은 긴장이 많이 되었던지 장애물만 열 번 넘게 점핑해 댔다. 호크는 숨이 차서 헐떡거렸다. 그걸 지켜보던 나는 생각했다.

저러면 호크가 지칠 텐데.

내가 호크와 세 번째로 시험을 볼 예정이었기에

슬슬 걱정이 되었다.


그가 다시 시험장으로 들어갔고 그 역시 구술시험까지 잘 통과했다.

그가 말 위에서 내리니 호크가 시험을 치르느라 어찌나 땀을 많이 흘렸던지 온몸에 땀이 번들거렸고 하얀 거품이 일었다.

호크 컨디션이 걱정이 되었다.


내 시험 차례는 맨 마지막 순번이었다.

시간이 여유 있었으므로 호크 몸 위에 얹어진 안장을 다 풀어내고 수건을 물에 적셔서 땀범벅인 호크 몸을 닦아주었다.

호주머니에 있던 각설탕도 여러 개 먹인 후 호크가 잠시나마 쉴 수 있도록 했다.


이제 내 차례였다.

입고 있던 두꺼운 잠바를 벗고 대회복 차림으로

다시 안장을 얹은 호크 위로 올라갔다.


시험장 들어가기 전 나 역시 연습 마장에 들어가

호크와 호흡을 맞췄다.

그날 연습마장에는 학교 교수와 조교도 시험 볼 학교 학생들의 밍 업을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학교 학생 신분이기는 했으나

그날은 ㅇ감독 마장 말을 고 시험을 치르기에

나는 그날만큼은 학교 소속이 아니라

ㅇ감독네 마장 소속이었다.


8월에 자격증 시험을 치를 때

말똥 삽질 지옥 학교를  도망 나와 사설 승마장 말을 데리고 시험을 봤던 내 친구와

그날 내 처지가 같았다.


당시 내 친구는 학교 학생이었으나

그날은 사설승마장 말을 타고 나타나 시험을 쳤고

학교 교수와 조교의 냉랭한 무관심 속에서 시험을 봤다.

나  역시 학교 학생이었으나 그날은 ㅇ감독 말을 타고 시험을 치르니 학교 교수와 조교는

8월에 내 친구에게 그랬듯이,

그날 나란 존재는 그들과 1도 상관없는 시험자였다.



내가 호크를 타고 나타나

너네 잘 봐라. 내가 어찌 해내나! 하며

그들을 의식하면서 통통 뛰거나

다그닥 다그닥 달리면서 원을 렸다.

마장마술 코스연습을 할 적에

학교 교수와 조교, 어린 학교 선배들의 시선이

모두 나에게 쏟아졌다.


흥! 어떠냐. 조교야.

지금도 내가 개떡 같은 자세로

뇌 없는 아메바처럼

아아아아무 생각 없이 말 타고 있냐? 시꺄!


나는 최대한 우아아아하게 말을 타려고 노력했다.

그들이 맨날 지적질하며 노래를 했던

얼어 죽을 클뤠식한 자세로 말이다.

내가 봐도 내 자세와 리듬감은 상당히 좋았다.


교수와 조교는 나를 한 번씩 흘깃흘깃 쳐다봤다.

나는 그들의 시선을 즐기면서 생각했다.

내가 마랴.

그동안 이 날을 기다리면서

뼈를 갈았다. 뼈를!


이제 ㅇ감독 지시에 따라 장애물 점핑 연습을 했다.

높이는 1미터 10센티. 연습마장 좌우로

장애물 두 세트가 마주 보고 있었다.

나는 호크에게 신호를 주고 더그덕 더그덕 달려 그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나비처럼 우아아아하게 점핑을 했고

! 안정되게 착지를 했다.


흥!


곁눈질로 내가 장애물 넘는 모습을 말없이 지켜보던 교수가 정말이지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지으며 바쁜 걸음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말했다.

우와. . 그동안 실력이 진짜 많이 느셨네요!

ㅡ오냐!ㅡ


그도 그럴 것이 나는 그동안 학교에서

내가 장애물 점핑하는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고

뒤에서 조용히 ㅇ감독에게 배웠기에

내가 1미터 10센티 높이의 장애물들을

그처럼 안정감 있게 넘을 수 있을 거라곤 상상하지 못했다.

그들은 내가 이런 모습으로 나타날 줄은 꿈에도 몰랐던 거다.


나는 자격증 합격도 중요했으나

그동안 그들에게 받은 무시와 무관심에

시험장에서 당신들을 놀라게 해주마.

작정해 오던 터라 그들이 그리 놀라는 건 당연했다.

다만 내가 더 놀란 것은

평소 칭찬이라곤 도통 모르는 무표정하고 냉랭한 그 교수가 그와 같은 표정을 지으며 나에게 다가와  본인의 육성으로 놀라움을 표시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정확히 따지자면 두 달 반동안

장애물 고자에서 높이 일 미터를 거뜬하게 뛰어넘는 도전자가 되어 그들 앞에 짠. 하고 나타난 것이다.


은 이번 시험엔 절. 대.로. 장애물 점핑 못해요. 그러다 낙마하면 선생님 뼈 부러져요.

그냥 좋게 내년에나 시험 봐요. 하면서

내 남편도 걱정 안 하는 내 뼈 골다증까지 걱정했던

망할놈의 조교야!

봤냐. 이놈아!

내가 물처럼 부드럽게 장애물 위로 날아오른걸!

이 x노므시꺄!


 조교도 내 모습을 보고 너무 놀라서

본인도 못 느끼는 사이 턱에 힘이 풀려서

입이 떡! 벌어졌고

나랑 시험 연습마장에서 연습하던 어린 선배들도 깜짝 놀라더니  씩 웃으며

말 위에서 나를 향해 엄지를 들어 올렸다.


같은 날 같은 도전을 앞둔 시험자들

학교 나이 어린 4학년 선배들은 모두,

진짜. 모두!

시험 전날, 나를 진심으로 걱정했고 응원해 주었다.

. 조심하세요. 힘내세요. 다 잘될 거예요!



시험장에서

내가 저 우주로 날아가 땅에 처박히리라

예상하거나

기대하거나

소망하거나

점치거나

상상하거나

혹은,

걱정했던 이들은,

나를 제외한 내가 이 자격증 시험을 본다는 사실을 안 모든 인간들이었다.


그러나

시험장 안에서도 나 혼자 우주로 날아가지 않았고 말을 타고  흐르듯이 날아가서

사뿐히 착지를 했다.


그날

진짜 119 구급차를 탄 이는

내 수험번호 바로 앞 번호

학교 4학년 나이 어린 여자 선배였다.


그 어린 선배는

시험도중 장애물 앞에서 말이 끼익 멈추면서 장애물을 거부한 탓에

공중으로 슈웅 혼자 날아갔다.

ㅡ호크가 나를 늘 그렇게 날렸듯이ㅡ

결국,

시험장 벽을 사이에 두고 시험장 바로 밖에서 대기하다가 시험장 안으로 냉큼 들어온 119 구급차를 타고 병원으로 이송됐다.

소문에 따르면 그 친구는 팔에 금이 갔다나 뭐라나.



두 번  시험을 치르고 한 시간 후에 다시 나를 태운 호크는 체력이 바닥이 나버린 모양이었다.

스포츠카 같던 호크 평소 발걸음이 슬슬 탄력이 떨어졌다.


급기야 코스를 그릴 때

마장을 대각선으로 가로지르며 직선으로

쭉쭉 뛰어가야 할 지점에서

삐뚤 빠뚤 삐뚤 빠뚤

지 맘대로 가버렸다. 젠장!

연습땐 단 한 번도 없던 일이었다.

늘 에너지 넘치던 호크가 지친 거다.


그래도 호크는 끝까지 최선을 다해줬다.

적어도 연습마장 교수와 조교 앞에서 나를 우주로

날리지 않아서 고마웠다.

만약 그랬다면 나는

합격여부를 떠나 교수나 조교 앞에서

개망신을 당했구나 생각하면서 잠을 못 잤을 거다.


그날 나는 마장마술 코스를 그릴 때 실수가 많아

합격점에서 딱 1점이 부족해서

1차에 떨어졌고 허구한 날 죽어라 외워댔던

구술 시험장엔 발도 내밀지 못했다.


합격을 바라며 연습을 하기도 했으니 아쉬움도 컸지만 실은,

나이가 많다는 죄로 교수들이나 조교에게

입학 후 1년 내내 무시당해 온 것에 대한

복수는 제대로 한 셈이니

차라리 홀가분했다.


그것은 나뿐만 아니라 같은 이유로

마음의 상처를 입은 채

열심히 학교 생활하는 만학도 내 동기들을

위한 복수이기도 했다.

ㅡ열사다. 열사!ㅡ


나는 애초에 목표한 바대로

수직 장애물 1미터 10

옥사 장애물 1미터를

비겁하게 피하지 않고

경로대로 멋지게 잘 뛰어넘었다.


그 사람의 승마실력이

학교생활 인권보장의 기준이라는 듯이

무례하게 함부로 말하고 행동하는 이들,

그 그지 같은 사고방식을 가진 이들에게

나는 멋지게 한방 먹였다.

나이 오십 줄에 접어든 만학도로서.

우쒸! 나이 먹었다고 무시하지 라 마랴.


그들도 안다.

장애물 1미터 10은 쉽게 뛸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더구나 두 달 만에 그걸 해낸 이는

역대로 뒤져봐도 없었다.

그것도 이제 막 입학한 1학년은 더구나 전무했다.


그것은 앞으로 내가 학교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

내 실력을 무시하거나 폄하하거나

터부시 하는 인간들은

교수들이고

조교들이고

학생들이건 간에

아무도 없을 거란 의미했다.

오기로 이걸 해낸 나는 내가 생각해 봐도

아주우 아주 독한 년인 것이다.


1년 동안 뼈를 갈아 넣고 이를 바득 거리면서

준비해 왔던 일 년의 모든 자격증 시험과정이 끝났다.

결과적으로

나는 ㅇㅇ지도자 자격증 하날 땄고

나머지 두 개의 자격증 시험은 떨어졌다.


다음 해 도전은 한번 해 봤으니 좀 더 수월해질 거다.

미리 걱정하지 않았.

이젠 높은 장애물이 겁나지도 않았고

우주로 날아가는 것도 겁나지 않았다.

ㅡ겁 따윈 개나 줘 버렷!ㅡ


ㅇㅇ지도사 자격증 하나만으로도

나는 이제 승마 교관이 될 법적자격을 갖추었다.

우리 마장에서든 어디에서든 교관으로서

승마 수업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시험날 응원 현수막은 걸지 못하고

응원하러 갔다가는 나에게 돌을 맞을까 봐

시험장 근처에도 못 오고

시험날 저녁, 내가 연락을 해올 때까지

오매불망 내 연락을 기다리던 친구가

전화를 받자마자 내게 말했다.


어디야.

병원이야?

A C!

아니다. 집이다!


 친구는 이와 같이



하루종일 다양한 버전으로

시험 연습 마장과 시험장에서 날아갈 내 모습을 상상하며 걱정했다며

뒤늦은 고백을 했다.


! 친구야.

그런 걱정쯤은

어둬. 넣어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