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안 Dec 05. 2024

크고 작은 일들이 파도처럼 다가오고 흘러갔다.

인생은 강물처럼 흐른다.

말과 함께 사는 인생에 발을 내딛자마자

하루 7.8시간씩 말을 타는것이

일상이 되버린 날들이 거듭되었다.

내 몸은 니가 지금 이팔청춘인줄 아는거냐며

내 몸 이곳 저곳이 삐그덕거리며 시위를 했다.


나이먹어 다시 들어간 학교 생활에서

정신적, 육체적인 고통스러운 환경과 일정도

중년인생인 나를 혹사시키는데 한 몫했고

1년간 뼈를 갈듯이 몰아붙인 자격증 시험

준비과정도 내 몸을 혹사시키는데 한 몫 거들었다.


어깨와 손목이 말똥 삽질에 제일 먼저 삐그댔고

말 위에 앉아서 고집센 말들을 제어하느라

고삐를 잡은 팔 근육도 어깨와 손목을 뒤따라 삐그덕댔다.

고삐잡는 팔 근육에 염증이 나서

나는 꼼짝없이 두달가까이 말을 탈수가 없었다.


그 다음은 낙마때 이리 저리 날아가 바닥에 부딪히며 고통받은 허리상태도 두고두고

나를 괴롭혔다.

삐그덕대는 내 몸 모든 관절과 근육엔

365일 내내 온갖 파스와 압봉이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상태가 심각했던건

내 오른쪽 눈 상태였다.

다만 평소에 워낙 시력이 나쁜 상태였기에

형체만 흐릿하게 가늠이 될 정도인

시력이 있는듯 없는듯한 오른쪽 눈상태가

늘상 익숙했다.

그러나 나도 모르는 사이

오른쪽 눈도 역시나 차츰 차츰 조금씩

상태가 나빠지고 있었다.


눈 상태가 좋질 않아서 처음엔 안경 문제인가 생각하고서 두달에 한번씩 새 안경을 맞췄으나

별 차이가 없었다.

빌어먹을 안경점 같으니라고.

돈은 오지게 비싸게 받더니

안경은 엉망으로 맞춰놨네!

당시 나는 그렇게 생각했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의 일정이 워낙 촘촘하게

온 몸을 쓰는 일과로 짜여있었기에

눈이 이렇게 엉망진창인 지경이 되어있는줄도 모른채 나는 내 몸을 혹사시키며 말을 탔었다.


언젠가 내 친구와 식당을 가려고

친구를 조수석에 앉히고 운전을 하던 날이었다.

내 오른편에 앉은 친구와 이야기를 하며

운전을 하다가 무심코 곁눈질로 오른쪽을 향해 친구가 앉은쪽을 바라보았다.


조수석에 앉아 튀어나온  친구 무릎쪽 다리를 제외하고 조수석에 앉은 친구가 오는쪽 눈 시야에 전혀 잡히질 않는거다.

마치. 무릎 밑 다리만 있는 유령처럼.


어? 뭐지?

나는 순간 너무 놀라서

살짝 고개를 돌려서 오른편에 앉은 친구를 바라봤다.흐릿한 형체가 잡혔다.

다시 정면을 바라본채로

오른쪽 눈으로 의지하며

곁눈질로 조수석을 바라봤다.

역시나 친구 무릎쪽 다리만 시야에 잡혔다.


오른쪽 시야는 아무것도 형체를 보지 못했다.

다만 왼쪽 눈이 거들수 있는 각도에서야

겨우 조수석에 앉은 친구 전체 형체를 인식했다. 심각한 상태였다.

아.이런.망할!

 오른쪽 눈이 정상이 아니구나.

이러면 안되는데.


나는 원래 시력이 굉장히 안좋은 상태였다.

특히 오른쪽 시력은 형체만 대략 짐작할뿐

평소에도 시력이 거의 없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오른쪽 눈 상태가 이러니 나도 모르게

습관처럼 그나마 남아있는

왼쪽 눈 시력에 의지하면서 살았다.

안경을 벗으면 근처 벗어둔 안경을 찾지못할정도로

흐릿한 형체만 겨우 구분할정도의 시력이었다.


오른쪽 눈은 시력이 원체 좋지않으니

형체만 흐릿 구분할뿐

안보이는 상태가 당연했고 익숙했다.

당연한듯 익숙한듯 완벽한 짝눈상태로 지냈다.

조수석에 앉은 친구가 시야에 잡히질 않자

정말이지 문득! 깨달았다.

예삿일이 아니라는 걸.


눈이 심각한 상태로 망가졌다는 걸

인지하자마자 왼손으로 왼쪽 눈을 가린채

오른쪽 눈 시야를 다시 확인했다.

빛과 어둠만 감지할뿐 형체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큰일 났네.망했다.는 생각만 들었다.

등골이 서늘해지며 두려움이 밀려들었다.


남편 마장에 필요한 자격증을 따보겠다고

학교에서 ㅇ감독 마장으로.

다시 우리 마장으로 이동해다니며

레슨을 들으며 하루 종일 말을 탈 적에,

이건 평소 내 체력에 비해 과부하가 걸린 스케줄이라는 생각을 줄곧 었다.


이팔청춘도 아닌 오십줄이 다된 인생이

이팔청춘들 운동량보다 더한 운동 스케쥴을

소화해내고 있었다.

몸은 당연히 삐그덕대며 여기저기서 신호를 보내왔으나 내가 연습에 온 정신이 팔려서

내 몸 어디가 무너지고 있는지 신경쓸 겨를이 없었던거다.

참 무심하기도 했고 미련하기도 했다.


눈 상태를 자각한 뒤에 뒤늦게 깨달았다.

당시 말을 탈적에 수도 없이 말에서 떨어진 이유는

물론 말을 타는 기술적인 문제도 있었겠지만

근본적으로는

 눈에도 문제가 있기 때문이었다.


말 위에선 말타는 기승자의 밸런스가 중요했다.

한쪽 시야가 무너진 내 눈상태는 결국

내 몸 밸런스가 무너지는것으로 연결되었던 거다.

장애물을 점핑 연습때에도 그러했다.


말이 장애물 앞에서 땅을 박차고 뛰어오르는 타이밍이나 장애물을 뛰어넘고 바닥에 착지할 ,

내 몸의 균형을 유지하지 못한건

좌우 밸런스가 무너진 내 눈 상태도 원인이었다.

 위에 앉은 내 밸런스와 말의 리듬사이에

엇박자가 나거나 잘못되어

우당탕탕할때면 나는 영락없이 말에서 떨어졌다.


그것은 오른쪽 눈 시력이

완전히 망가질데로 망가진 이유로

장애물 횡목과 장애물을 향해 뛰어가는

나의 거리가 가늠되질 않았던 것이다.

장애물 횡목이 심하게 외곡되어 겹쳐보였기에

사실 점핑하는 그 직전과

점핑 순간

그리고 점핑이후의 착지 내 밸런스에

문제가 있을수밖에 없었던거다.


왼쪽 시력에 의지해

적응하며 살다보니

오른쪽이 그 지경이 된줄도 모르고 산 것이다.

하아.나는 얼마나 둔한 사람인가.


그제서야 눈이 심각한 상태임을 자각했으니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이다가

아침이 되자마자 남편에 말했다.

남편.나 병원에 가야겠어.

왜? 어디 안좋아?

나 지금 오른쪽 눈이 전혀 안보여.

뭐라고?

남편은 내가 덩달아 놀랄까봐

놀란 마음을 내색하지않은 채

 치료받으면 괜찮을거야.너무 걱정마.하며 위로했지만 나 못지않게 놀랐을줄 안다.


당장 병원으로 가서 온갖 검사를 했다.

맨 먼저 시력을 테스트하는 선생님이 기계검사와

수동검사를 마친후에 내 앞에 바짝 다가와

바로 내 앞에 손가락을 펴고 물었다.

왼쪽 가리고 오른쪽 눈으로 보세요.

손가락 두개를 펼치고 물었다.

몇개로 보이세요.

모르겠어요.안보여요.

다시  손가락 다섯개를 펼치고 물었다.

이건요?

안보여요.

빛과 어둠은 구별되시나요.

네.


의사는 검사 결과를 놓고

내 눈 상태에 대해 설명을 했다.

수술이 결정되었다.

의사들이 수술전 대부분 그렇듯이

수술후 부작용에 대해 장황하게 나열하며

설명했다.


의사가 수술전에 나에게 했던 말들

수술해도 결과가 드라마틱하지 않을수 있고

전혀 시력회복이 안될수도 있다는 말을 했다.

그렇치않아도 겁쟁이인 내겐 무섭고 감당하기 힘든 말들이었다.


결과적으로만 말하자면,

오른쪽 눈은 다행히 잘 수술이 되어서

시야가 한결 편안해졌다.

의사가 수술이 잘 되었다며

후유증이 없도록 조심하시고 눈 관리 잘 하세요. 말할때 나는 제일 먼저 의사에게 물었다.

선생님.제가 언제쯤 말을 타도 될까요?

눼에? 말이요오?

역시나 그 의사도 놀라며 그렇게 말했다.


제가 말타는게 업인 사람이라서요.라고 덧붙이자

그는 눈에 갈수있는 충격이나 심한 운동은

안정이 될때까지 피해야한다고 말했다.

망했네.

당장 시험일정이 다가오는데 어쩌지?

내 눈보다도 다음 시험 일정이 당장 걱정이 됐다.


눈 수술후 회복하느라 한달넘게 운동을 쉬었다.

내가 눈수술과 팔 근육 염증으로

운동을 중단한채 쉬는 도는중에도

파도가 하나 지나면 다시 큰 파도가 오듯이

그해 자격증 시험일정은 다시 다가오고 있었다.

마음이 편안하지 못했다.


매일 잠시도 쉬지않고 내 몸을 몰아붙이며

달려온 일정들이 거짓말처럼 딱 중단되었다.

집안에 처박힌 채 옴짝달싹 못하고 있던 내게,

이번에는 불안증이 다시 고개를 쳐들어

시꺼먼 먹구름처럼 스멀스멀 나를 감쌌고

오랫동안 나를 괴롭혀오던 우울증이 다시 도졌다.


기왕 시작된 일.

어찌되었건 해야하니까

몸 돌볼 겨를도 없이 나를 몰아댔다.

팔 근육이 아작이 났는지

눈 시력이 어떤 지경인지 신경쓸 겨를도 없었다.


고삐조차 못 잡는 지경이 되어서야 잠시 멈췄다.

지난 시간 되돌아보니

무식하게 덤벼들었으나

내가 이룬건 아무것도 없었

몸은 엉망진창이 되어 있었다.

우울했고

바닥으로 깊이 가라앉어버린 느낌이었다.


남편 마장에도 역시나

이런 저런 일들이 거센 파도처럼

다가오고 다가오고 흘러갔다.

그저 남편과 나는 의연하게

맞이할 것은 맞이하고

흘려보낼 것들은 또 그렇게 했다.


11월 12월 1월이 그리 지나갔다.

불안정한 심리 상태가 될때마다

나는 책을 꺼내 읽었고

서랍에 넣어둔 화구들을 꺼내 그림을 그렸다.

그리고 한번씩

거실창으로 마당을 내보며 생각했다.

빨리 회복해서 다시 말을 타야할텐데.


두달정도 충분한 휴식을 가지며

몸을 회복시킨후에

다시 말 위에 올라갔다.

시야가 한결 편안해지니

말 위에서 평화롭고 안정된 느낌이 들었.


몸이 회복되어 다시 말을 타니 자신감이 차올랐다.

그동안 말을 탈 때

눈 상태가 엉망인줄도 모르고

불안정한 시야가 원인이 되어 나를 괴롭혔던

두려움. 조바심. 불안감들 

먼지를 털어내듯이 툴툴 털쳐냈다.

저멀리 공을 냅다 차 버리듯이.


학교 마장에서 말을 탈때도 그러했고

ㅇ감독네 마장에서 장애물 점핑 연습할때도

나는 감사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행복하고 자신감있게 말을 탔다.


과정이야 어찌되었건간에

그동안 심리적으로나 운동 수행 측면에서나

찌질이 겁보 같았던 지난 시간속 나를

우여곡절 이겨낸것이

스스로 기쁘고  자랑스러웠다.


여기저기 고장나 움직이지 못한 기계를

뚝딱 뚝딱 잘 수리한 후에

기계가 왱 왱 소리를 내며 정상작동 하는 느낌이었다.

이제 다시 힘을 내어 직진만하면 되었다.


인생은 강물이 흐르는것 같다.

굽이 굽이 치고 흐르며

때론 시끄럽거나 혹은 다시 잠잠하게 고요해지며

어쨌거나 바다로 향해 흐른다.


흘러갈것은 흘러가고

이제 다시 새 달이 왔으니

고장난 몸을 뚝딱뚝딱 고치고서

이젠 강물처럼 애쓰지않고

나에게 다가오는 시간들에 순응하며

부드럽게  흘러가 볼 참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