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을 쓰고 싶다는 꿈
아내는 물었다. 야단맞아 잔뜩 뿔난(주눅 들진 않았지만) 첫째가 내 옆에 턱 앉았다. 죄목은 '중 2가 돼 첫 시험을 앞뒀는데 새벽까지 게임을 하다니!'였다.
"아... 그게..."
소파에서 편한 자세로 책을 읽던 난 자세를 고쳐않았다. 하지만 속으론 '그럴 수도 있다'라고 생각했다. 나도 그 나이 때는 시험 기간에도 오락실 앞을 그냥 지나치진 못했으니.
내가 얘기해 보겠다며 아이와 침대에 나란히 앉았다. 아이는 이럴 때마다 도대체 왜 공부를 해야 하냐 물었다. 그간 그 질문을 들을 때마다 아이스크림 브랜드처럼 서른한 개의 이유를 쥐어짜 말했지만 아이는 아직 공감하지 못했다. 난 겨우 32번째 이유를 생각해 냈다.
"넌 프로게이머 될 거라며 게임하는 걸 합리화하지만 게임을 하는 사람보단 게임을 만드는 게 훨씬 가치가 있을 것 같은데? 또 그게 직업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훨씬 크기도 하고. (아니, 둘 다 어려운데 개발자가 좀 덜 어렵다고 해야 하나?)"
다행히 아이는 '직업'이라는 단어에 관심을 가졌다.
"아빠 첫 직업은 뭐였는데?"
"기자"
"아, 기레기?"
"아니 순수한 기자였어. 그땐 그런 말도 없었고. 또 그런 건 TV나 신문 기자들에게 붙는 단언데, 아빤 월간지 기자였어."
"그 기자와 저 기자가 뭐가 다른데?"
"음, TV나 신문은 매일 새로운 소식을 전달하기 위해 쉼 없이 달려야 하지, KTX처럼. 그런데 잡지는 보통 한 달에 한 권이 나와. 좀 더 긴 호흡으로 한 분야에 대해 전문적으로, 하지만 잡다하게 다룬달까?"
"그럼 아빠네 잡지는 뭘 다뤘는데?"
"음... 그러게? 기본적으로는 '문화'를 다뤘는데 한 마디로 말하면 일탈이랄까? 욕구, 상상, 선입관 깨는 거?"
"그게 뭐야."
"정체를 말하기 쉽지 않네? 유명한 배우나 가수도 인터뷰했는데 창 없는 고시원에서 사는 신인 연극배우도 얘기했고 자라섬 재즈 페스티벌 같은 유명한 축제도 취재했지만 철거 5일을 앞둔 한 빌딩에서 펼쳐지는 록페스티벌에 대한 픽션도 썼지.
"정말 잡다하네. 아빠가 쓴 글 함 보여줘 봐."
"응, 이 글이 아빠가 가장 좋아하는 글이야."
나는 블로그에 저장했던 먼지 쌓인 십몇 년 전의 글 한 편을 아이에게 보여줬다. 그 달 특집은 '구름'이었고 난 고개 들어 구름을 보며 한 달을 보냈었다.
어느 날, 심야 코미디 프로그램의 사회자, 구로다는 쇼 프로그램을 시작하며 방청객에게 이런 말을 던졌다.
“오늘, 뭔가 얘깃거리가 없을까 고민하다가 도서관에 갔습니다. 이런저런 책들을 들춰보다가 지난 신문들이 가득한 열람실에서 이런 기사를 발견했습니다. 1986년 기사였어요. 제가 중학교를 졸업하던 시기죠. 당시 지브리의 첫 작품인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천공의 성 라퓨타>가 개봉했습니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엄청난 흥행작입니다.
그리고 그 애니메이션이 낳은 한 가지 신기한 현상이 있습니다. ‘라퓨타 신드롬’입니다. 애니메이션에서 라퓨타를 감싸고 있는 적운, 혹은 적란운, 쉽게 말해 뭉게구름이 하늘에 두둥실 떠다니는 날에는 '사람들이 문득 하늘을 올려다보는 횟수'가 증가했다고 합니다.
이와 관련해 재밌는 조사가 있었는데요, 조사 항목에 이런 게 있었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새똥에 맞는 신체부위는 어디인가?’ 좀 어이없는 질문이죠? 전일본조류협회에서 매년 실시하는 ‘도심의 까마귀와 비둘기가 인간에게 주는 폐해’ 보고서에 나와 있는 거예요. 보통은 어깨에 새똥을 맞았다는 답변이 많았습니다만 ‘라퓨타 신드롬’이 횡횡하던 당시에는 얼굴에 새똥을 맞는 사람이 급증했다고 합니다. 여러분에겐 웃음거리 일지 모르겠지만 당시 도심에 거주하던 조류들에게는 절체절명의 위기가 닥칠 수밖에 없었죠. 그만큼 사람들의 새들에 대한 불만이 고조됐으니까요.
당시의 도쿄 거리의 풍경을 생각해 봅시다. 도쿄의 도심에서 점심을 먹고 화창한 날씨를 즐기기 위해 삼삼오오 떼를 지어 거리에 나옵니다. 하늘엔 뭉게구름에 떠가고 있군요. 드디어 누군가가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그리고 그 구름을 목격합니다. 그의 입은 벌어지고 눈이 가늘어집니다. 뭉게구름 속에서 라퓨타를 찾고 있습니다. 거리를 지나던 사람들이 하나둘 그와 같이 구름을 바라봅니다. 이윽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시선을 하늘에 두고 멍하니 있습니다. 이처럼 ‘하늘에 뭉게구름이 보일 때 무의식적으로 하늘을 올려다보는 동작이 전이되는 현상은 재채기, 혹은 하품과 같은 전염성을 가졌다고 합니다. 심지어는 당시에 구름 속에서 라퓨타로 보이는 무언가를 봤다는 목격담도 여러 차례 소개되었답니다.
애니메이션 한 편이 가져다준 영향이 참 대단합니다. 그래도 피 튀는 르느와르 영화들의 범람으로 범죄율이 급증했던 현상보다는 훨씬 양호하지 않습니까? 좀 웃긴 풍경이긴 하지만.”
오랫동안 연락이 안 됐지? 웨일스에 다녀왔어. 하늘을 보고 싶어서 그곳에 다녀왔다고 하면 비웃을까? 그럴지도 모르겠다. 보통은 하늘을 보러 간다고 하면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을 떠올릴 텐데, 웨일스의 하늘은 그런 것과는 거리가 머니까 말야.
우연히 들었던 것 같아. <천공의 성 라퓨타>에 등장하는 풍경의 배경이 영국의 웨일스 지방이었다고,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스케치북을 들고 혼자서 웨일스의 이곳저곳을 다니며 스케치를 했다고. 나도 한 때 라퓨타 신드롬에 빠져있었는데 아무리 하늘을 봐도 우리나라의 적란운 속에는 라퓨타가 존재할 것 같지 않았단 말이지. 우리나라 편서풍은 기껏해야 중국에서 황사 따위나 싣고 오는 게 자신의 임무라고 생각하나 봐.
웨일스, 그곳의 편서풍이 싣고 다니는 높다란 적란운 속에는 정말 신비한 성이 숨겨져 있을 거라 생각했어.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에게는 구름만 스케치해 놓은 스케치북이 존재한대. 바로 웨일스의 어딘가에서 그는 하루 종일 앉아 시시각각 변하는 구름을 그 스케치북 안에 그려놓았을 거야. 뭐 구름만 스케치한 건 아니지. 이곳 탄광촌의 풍경 역시 그의 스케치북을 가득 채웠고, 그 풍경들이 <천공의 성 라퓨타>를 탄생시켰을 거라 생각해. 예전에는 푸른 하늘의 뭉게구름 속에 숨어있는 라퓨타를 상상했는데 그곳에 다녀온 후부터는 이곳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거대한 잿빛 구름의 한가운데 그곳이 있을 거란 생각이 들어. 그 커다란 암석 덩어리를 안고 있을 만큼 이곳의 구름은 힘이 있고 때론 푸근해. 자, 이 사진들을 봐. 그곳의 하늘이야.
그냥 평범한 흐린 하늘 아니냐고? 뭐…, 사실 이건 네모난 인화지일 뿐이지.
가끔은 그런 꿈을 꿉니다. 제가 조종하는 비행기가 구름에 휩싸였다가 구름을 벗어나면 전혀 다른 세상에 존재하게 되는 내용의 꿈 말입니다.
아, 사실 구름 위 세상이라는 곳은 어린 시절 상당히 흥미로운 공간이었답니다. 제가 읽었던 몇 권의 동화책에는 구름 위에는 좀 더 고차원적인, 예를 들어 신이라 불리는 존재를 비롯해…, 여러 존재들이 그곳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곳에서 세상을 내려다볼 수 있었고 아니, 제가 본 책에서는 분명 그들의 일상은 그렇게 높은 곳에서 우리를 보며 마치 물건을 품평하듯이 지상의 인간들이 하는 일들에 대한 코멘트를 다는 게 전부였죠. “쟤는 노상 빵가게에서 빵을 훔쳤군, 쯧쯧, 허… 저 놈은 베란다에서 아래 지나가는 사람들한테 침을 뱉고 있어.” 이런 식으로 말이죠. 이런, 말해놓고 보니 제 어린 시절을 얘기한 것 같아 좀 쑥스럽습니다.
이런 상상은 금방 깨지고 말았습니다. 비행기의 존재에 대해 알게 된 거죠. 뭐 당시 비행기야 무척 귀하긴 했고 또 그런 시골 마을에 비행기를 타 본 사람도 없었을뿐더러 저로선 사람이 실제로 하늘을 난다는 것은 상상하기로 힘든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전쟁이 터지면서 비행기의 존재가 부쩍 많아졌습니다. 구름 위의 세상을 확인해보고 싶은 제 호기심은 비행기를 몰고 하늘 위로 올라갈 기회를 노리게 됐죠. 그리고 저는 비행사가 됐습니다.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전투기 비행사죠. 첫 비행에 나섰을 때 전 명령을 어기고 편대에서 이탈해 구름 위로 올라갔습니다. 이미 공군에 지원하기 전부터 ‘구름 위에는 구름이 없는 하늘이 있을 뿐이다.’라는 말을 듣기는 했지만 제 두 눈으로 확인하기 전까지는 그런 말이 귀에 들어오질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 첫 비행에서 저는 확실히 볼 수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들 말대로 그곳에는 단지 또 다른 하늘뿐이었습니다. 그 후 저는 그저 전투기의 일부가 되어 수많은 전투에 참여했습니다. 죽이지 않으면 죽는, 게다가 그곳에선 부상이라는 말이 없습니다. 그저 적의 기관단총에 날개나 동체를 맞으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검은 연기를 뿜으며 지상으로 내려와 꽈당!
저는 전쟁이 거의 막바지에 접어들 때까지 여전히 살아남았습니다. 그 말은 그만큼 많은 적기를 격추시켰다는 말이겠죠. 기계적으로 말이에요. 어느 전투에선가 제가 몰던 비행기는 결국 적이 쏜 기관단총에 맞고 말았습니다. 동체에선 검은 연기가 뿜어져 나왔죠. 그걸로 끝인 줄 알았습니다. 잠시 정신을 잃었다가 정신을 차렸을 때, 비행기는 지상으로 곤두박질치는 게 아니라 서서히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이윽고 구름 속으로 들어가 사방이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마치 지독한 안갯속에 머물러 있는 느낌이랄까요? 이윽고 구름 위로 나왔을 때 저는 그곳에서 수많은 비행기의 무리를 볼 수 있었습니다. 다양한 국적의 비행기들이 서로 마주하지 않고 한 방향으로 유유히 흘러가고 있었답니다. 마치 바다를 가로질러 육지로 향하는 섬나라 잠자리들의 평화로운 행진 같았습니다. 전 그 무리에 합류했습니다. 그리고 저 또한 어딘가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조종간을 잡을 필요도 없었습니다. 너무나 평화로운 시간이었습니다. 전 너무나 평안한 기분으로 살포시 잠이 들었습니다.
여기까지입니다. 제 경험은. 제가 시칠리아의 어느 시골마을에 불시착하기까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정말입니다. 다만 그 일이 있은 후로 다시 어렸을 때 했던 상상을 가끔 하게 됐습니다. 구름 위에는 누가 있으며 무슨 일을 하고 있을까? 분명, 누군가가 있고 어떤 일인가가 일어나고 있다는 건 전 확신할 수 있습니다. 제가 두 눈으로 봤으니까요.
그의 이야기를 경청하던 노인은 녹음기를 끄고 그와 함께 하늘을 올려다본다. 두꺼운 구름 서넛이 바다를 향해 굼실굼실 움직이고 있다….
현재로서는, 이 그림들이 그려질 당시에 다양한 구름이 존재하고 있었을 거라는 추측이 가능합니다. 지구로서는 상당히 불명예스러운 한 차례의 전쟁이 있은 후, 이렇게 지하에서 살아가는 새로운 세상이 펼쳐졌습니다.
당시엔 구름이라 불리었던 이 신기한 자연현상은 지금의 우리 인류로서는 결코 두 눈으로 확인하기 힘든 다양한 구름의 모습을 띠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아, 물론 지금도 지상을 향해 뚫린 두꺼운 창을 통해 구름이라는 것을 확인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하지만 이제 지상을 덮고 있는 그 구름은 강한 자기장을 띤 잿빛 수분 덩어리에 불과합니다. 결코 낭만 따위는 찾아볼 수 없고 영원히 똑같은 모양으로 하늘 위에 존재합니다.
하지만 이 구름들을 보십시오. 구름이라는 수분 덩어리가 이렇게 다양한 모습을 보일 수 있다는 게 신기하지 않습니까? 얼마 되지 않지만 과거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문헌들에 의하면 이 다양한 형태의 구름들은 당시 인간들에게 상당히 낭만적인 상상을 불러일으켰던 것 같습니다.
이런 자연의 변화를 볼 수 없다는 게 현재를 살아가는 인류에게는 무척 불행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우리의 세상은 변치 않는 풍경을 유지하고 있으니까요, 계절이라는 게 없으니까요. 자연이라면 고작 무표정한 구름과 거센 바람과 황색의 흙먼지, 그리고 폐허뿐입니다.
그래서 이 스케치북은 우리의 생존인류박물관에 전시하려 합니다. 여러분들도 이 스케치북을 보면서 300여 년 전 구름이 펼쳐졌던 하늘을 꿈꾸어보시기 바랍니다. 다시 그런 세상이 오길 염원해 주시길 바랍니다. 전시품의 이름은 사인된 대로 ‘구름 스케치북 - 미야자키 하야오’라는 이름이 붙게 될 것입니다.
- THE END
"이게... 기사야?"
"꼭 일어난 일을 빠르고 흥미롭게 알리는 것만 가치 있는 건 아냐. 오히려 반대로 머리는 텅 비우고 가슴을 채우는 이야기도 필요하거든."
"어쩔~"
"고백하자면 사실... '신춘문예'라는 소설가 공모전에도 나가고 싶었어."
"나가 보지? 나한테 맨날 뭐든지 일단 해보자면서!"
"아빠는 안 된대. 엄마가 '글을 쓰는 데 미쳐 본 적이 있느냐'라고 물었는데 아빤 그런 적도, 자신도 없었거든. 그래서 소심하게 기회가 될 때마다 잡지에 이런 픽션을 쓰면서 '이 기자 소설 쓰고 있네.'란 소리를 누군가 해주지 않나 귀를 기울이는 게 고작이었지. 그런데 많은 작가들이 그러더라 사람이 인생에 명작 하나는 남길 수 있다고. 자신이 살아온 얘기를 쓰면 된다고. 그래서 희망을 갖고 있어. 50대에는 쓸 수 있지 않을까?"
"음..."
"그러니까 너는 이제 시험공부..."
'쾅!'
아이는 나를 방 밖으로 밀어내고 문을 닫았다.
나는 블로그에서 비공개상태인 오래전 글 몇 편을 읽어봤다. 그리고 책을 다시 집어 들었다.
내가 생각건대 사람은 원래 누군가에게 부탁을 받아 소설을 쓰는 것이 아닙니다. '소설을 쓰고 싶다'는 강한 개인적 욕구가 있었기 때문에, 그런 내적인 힘을
바싹바싹 느꼈기 때문에, 나름대로 고생해 가며 열심히 소설을 쓰는 것입니다.
- 무라카미 하루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이 문장을 읽은 난 머리를 긁적였다. 한마디가 한숨처럼 새어 나왔다.
"아직인가?"
-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