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서점에 차곡차곡 쌓여가는비밀 곳간을 멋지게 풀고 싶었다. 보통 판매 금액은 예치금으로 먼저 들어오고 원할 때 입금을 받을 수 있다. 문제는 팔릴 때마다 바로 받으면 커피 1~2잔 값이라 금세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는 것. 예전에는 예치금으로 쌓아뒀다 새 책을 살 때 보태곤 했는데 아까운 경우가 생겼다. 예치금으로 새 책을 샀는데 책이 별로면 현명하게 쓰지 못한 것 같아 괜스레 후회가 들었다. 한 달에 한 두 권씩 꾸준히 책이 나가니 어느 정도 금액이 모였을 때 찾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그렇게 1년이 가까워지자 ‘책이 아닌 무엇으로 바꿔야 기분이 좋아질까’란 고민에 이른 것이다.
문득, ‘여행지에서의 며칠이 되면 어떨까?’란 생각이 스쳤다.
오호! 바로 이거였다. 책이 여행이 된다면 두고두고 기억에 남는 교환이 될 터였다. 서로 우위를 가릴 수 없는 좋아하는 취미이니 상호 교환하는 발상이 재미있었다. 독서는 앉아서 하는 여행이고, 여행은 서서 하는 독서라는 유명한 구절도 있지 않은가. 이 방법을 이용하면 책이 여행이 되고 그 여행에서 얻은 영감과 사진이 다시 글이 되는 선순환이 되지 않을까?
그즈음 3곳의 온라인 서점에 쌓아 둔 예치금을 합산해보니 17만 원 정도가 되었다. 당시 해외를 생각하던 차, 여행비를 충당하기에는 부족했다. 필요 없는 물건을 중고 사이트에 틈틈이 판매한 금액을 보탰다. 41만 6260원.
이 돈으로 상하이를 경유하는 쿠알라룸푸르행 왕복 티켓을 끊고 하룻밤 숙박비에 보탰다. 책을 순환시켜 만든 금액과 집안 곳곳의 쓰지 않는 물품을 비운 돈이 모여 여행이 되었다.
오랜만에 혼자 떠난 여행, 열흘 간 말레이시아의 곳곳을 마음껏 누볐다. 예술적 영감을 주는 다채로운 거리를 수시로 마주쳤고 생각지도 못한 좋은 인연을 연이어 만나 풍성한 기억을 담고 돌아왔다.
정말 책이 여행지에서의 기분 좋은 나날로 바뀐 것이다. 만약 예전처럼 책 1~2권을 팔 때마다 현금으로 전환했다면 내 통장에서 야금야금 시나브로 증발했을 것이다. 어느 정도 목돈이 모일 때까지 참고 기다린 보람이 있었다.
게다가 이 여행은 단순히 여행으로만 끝나지 않았다. 너무나 소중해서 기록으로 남겨야겠다는 결심이 섰고 반짝하다 말았던 블로그를 재개하는 계기로 삼았다. 말레이시아 여행첫 날을 기점으로 여행 이야기를 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꾸준한 포스팅을 이어가다 어느 날 포털 사이트의 메인 화면을 장식하는 일이 벌어졌다. 그 사건이 기폭제가 되어 점점 알려졌고포털 여행 카테고리메인에 2주마다 오르는 여행 콘텐츠를 계약하게 되었다. 그때부터 1년 간 포토에세이를 연재하며 매회 수천에서 수만 명의 독자와 만났다.
@에디터휘서, 2018
인생이란 참 알 수 없는 것이다. 어떤 사소한 생각이 연이은 도미노 효과를 일으키니 말이다. 중고 판매 금액을 재미있게 써보자는 생각이 인생의 전환점을 안겨줄 여행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돈을 쓰는 방식을 보면 누군가의 가치관을 엿볼 수 있다는데 어쩌면 나는 가장 나다운 선택을 했다. 책이 여행이 되고, 그 여행이 다시 이렇게 글로 피어나고 있으니. 언젠가 책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니 잘 사용하고픈 금액이 모이면 곰곰이 고민해 보시길. 누가 아는가, 그 선택이인생을 바꾸는 계기가 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