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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디터 휘서 Oct 05. 2020

인간관계에도 미니멀리즘이 필요하다


나이가 들면서 연락하는 이가 줄어드는 것은 노력 여하에 상관없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직업, 취미, 관심사, 경제력 등에 따라 내가 만나는 사람이 달라진다.


사람에 대해서도 고심하는 시간을 거쳤다.


단과대학 학생회장에 출마했을 정도로 인복이 넘쳤 첫 직업을 기자로 택한 덕에 전화번호만 수천 개에 달하는 생활을 했다. 취재 때마다 받은 명함은 상자를 가득 채웠고 혹시나 모를 훗날의 취재원을 위해 많은 사람을 만나고 또 만났다. 동창, 연합 동아리 모임, 지인 파티 등 두루 어울렸다. 생각해보면 ‘인싸’의 삶을 살았다. 그 후 기자를 그만두고 또는 개별로 일을 진행하면서 인간관계의 넓이가 확연히 줄었다. 수천 개의 전화번호는 백오십 여개 정도로 간결해졌다. 이제는 글을 매개로 한 이들과 소수의 지인들, 그리고 진행하고 있는 독서모임을 주축으로 재편되었다. 정리보다는 정돈에 가까운 과정을 거쳤다.


이제 모임에 초대되었다고 무턱대고 가지 않는다. 상황과 시간, 오는 사람의 성향을 종합해 가고 싶을 때에만 간다. 하루의 루틴을 깨지 않는 선에서 체력과 시간을 안배해 갈 모임을 정한다. 대신 참석한 모임에는 최선을 다한다. 충분히 그 시간을 즐기고 오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예전에는 시간만 맞으면 대부분 모임에 참가했다. 그 많던 약속을 이어갔던 덕에 새로운 사람을 알게 되고 좋은 인연도 만났다. 그러나 돌아보면 굳이 가지 않아도 될 자리도 상당했다. 시간의 질을 따지기보다는 친구의 간곡한 부탁에 못 이겨, 초대한 사람이 민망할까 봐 얼굴만 비칠 겸 간 적도 부지기수이다.

시간이 많다고 생각했던 어린 청춘은 질보다 상황과 감정에 더 충실했다. 그런 시간을 거쳤기에 오늘날의 판단력이 생겼겠지만 아쉬움은 든다.

Photo by Frank Vessia on Unsplash


이제는 정에 이끌리는 선택보다는 ‘나’에 더 초점을 맞춘다. 긍정적인 에너지와 영감을 주는 사람이 가득한 자리이거나 만날 사람과의 대화가 기대될 때. 누군가를 만나러 가는 길이 즐거울 때만 길을 나선다. 그날의 자리를 100% 예상할 수는 없지만 나와 결이 맞는 사람과의 분위기는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으니 촉을 믿고 가는 것이다.


좋은 사람과의 유쾌하고 풍성한 대화는 시간이 흐른 후 떠올려 보아도 슬며시 미소 짓게 하는 추억을 남긴다. 반면 ‘내가 이 자리에 왜 있지?’하며 자꾸만 시간을 확인하고 싶은 자리는 앉아 있을수록 고역이다. 머무는 내내 시간이 아깝고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도 무겁다. 씁쓸한 기운만 남는다.


Photo by tabitha turner on Unsplash


예전에 어느 외국계 기업의 임원을 인터뷰한 일이 있다. 주옥같은 말씀이 참 많았지만 특히 꽂힌 부분은,

“저는 일주일에 딱 한 모임만 가요. 정말 만나고 싶은 사람을 보러 가는 길이니 늘 즐거워요.”

당시에는 공감보다는 신기하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은 시간 활용을 저렇게 하는구나.’ 싶었다. 간간이 그의 페이스북을 보면 원칙에 따라 엄선했음이 분명한 유쾌한 모임이 일정한 주기로 피드를 채웠다. 나머지는 일의 성과와 사랑스러운 가족과의 일상이 대부분이었다. 워라벨이란 단어가 유행할 때 제일 먼저 이 분이 떠올랐다.


관계의 미니멀리즘은 결국 깊이로 귀결된다.



언제부터인가 일, 가족, 인간관계의 균형을 잘 맞춰가고 싶어졌다. 예전의 나는 어리숙했지만 지금은 분별력이 생겼다. 인간관계 역시 주관과 소신의 윤곽선이 필요하다. 전화번호가 수천 개였던 관계 맥시멀리즘 시기에도 고민을 털어놓고 기쁜 일을 주저 없이 알릴 수 있는 사람은 소수였다. 저장한 전화번호 수에 비례하지 않았다. 그 수가 현격히 준 요즘이지만 진정한 친구의 수는 변함이 없다.


우리 주위 혹은 미디어에서 비치는 폭넓은 인간관계를 무턱대고 부러워할 이유는 없다고 느낀다.


“성대한 생일파티에 초대받아 갔더니 온 사람만 100명은 되더라고요. 처음에는 ‘우와, 대단하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로부터 축하를 봤다니…! 부러웠죠. 하지만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100명이 왔다면 나 또한 이 사람들의 생일을 챙겨줘야 하잖아요. 맙소사, 1년에 3일 중 하루는 누군가의 생일을 챙겨주어야 하는 삶인 거죠.”


어느 책에서 본 인기 많은 사람의 삶을 재구성해 보았다. 많은 사람의 축하를 받는 일상의 이면에는 이런 수고로움과 기브 앤 테이크 공식이 숨어 있다. 여러모로 많은 노력이 필요한 아무나 감당하지 못할 일상.

한때는 나도 이런 인맥을 지닌 삶을 부러워한 적이 있다. 이제는 소수의 사람들을 살뜰히 챙기며 사는 것도 쉽지 않은 길임을 안다. 이 사람들이 나의 인생을 더욱 풍요롭고 단단하게 만들어 줄 귀하디 귀한 은인이라는 것도.


그래서 매달 틈틈이 만나고 싶은 사람을 메모해 둔다. 일상에 매몰되어 안부조차 잊고 사는 것을 경계하기 위해. 그리고 내 사람을 기억하고자 어느 날 문득 다정한 안부 인사를 건넨다. 관계의 미니멀리즘은 결국 깊이로 귀결되는 법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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