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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디터 휘서 Sep 11. 2020

한 달에 세 번, 소비를 멈추다


올해 들어 가계부 앱을 쓰기 시작했다. 갖고 싶은 물건을 시간을 두고 생각해서 사는 편인데도 매일 돈을 쓰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몇 달이 지나 지출 내역을 살펴보니 비는 날이 드물었다.


어느 토크쇼에서 패널 한 분이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아무것도 사지 않는 날을 정해 실천한다는 장면이 퍼뜩 떠올랐다.

Photo by Pocky Lee on Unsplash


소비하지 않는 날을 한 달에 몇 번이라도 실천하면 어떨까? 일명 ‘노 소비 데이’.

특정 일수, 요일을 정하진 않았다. 강박이 생기면 실천하기 어려울 것 같아서다. 가벼운 마음으로 집에서 쉬는 날 시도해 보았다. 딱히 나갈 곳이 없으니 쉽겠지 하는 마음으로.


그러나 쉬는 날 돈을 안 쓸 것이라는 예상은 빗나갔다. 근처 편의점으로 터벅터벅 걸어가 삼각김밥과 바나나 우유로 끼니를 때우기 일쑤였다. 사는 김에 초콜릿이나 곰돌이 젤리 같은 간식까지 야무지게 챙기곤 했다. 그도 아니면 마트에 들러 이것저것, 평소보다 풍성한 장을 볼 확률이 높았다.  


쉬는 날, 돈을 안 쓰게 되리라는 예상은 착각이었다.



몇 번만 클릭하  앞에 도착하는 배달앱 사용도 잦았다.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생활용품을 사거나 드라마, 영화 따위를 보는 작은 소비 또한 무심결에 일어났다. 출근이나 외출을 하지 않는다고 소비가 일시 정지하지 않았다. 단지 외출에 비해 소비 횟수가 줄거나 씀씀이의 폭이 좁아질 뿐. 자잘하게 이어진다. 온라인 결제가 오히려 소비를 했다는 감각을 무디게 만들었다. 미리 입력된 카드 정보로 자동 결제되는 바람에 지갑을 꺼낼 일조차 없었으니.


 하루 종일 집에 있는 날
시선을 내부로 돌려보자고 마음먹었다.



 소비 데이를 위해서는 달라져야 했다. 먼저 식습관에 변화를 꾀했다. 70~80%의 결제가 식비였기 때문. 노 소비 데이를 하기로 한 날은 집에 있는 재료로 끼니를 해결하고 인터넷 소액 결제를 자제했다.


시선을 내부로 돌려보자고 마음먹었다. 이 날 하루만큼은 집에 있는 재료로 나를 위한 요리를 한다. 냉장고와 주방을 찬찬히 살피면 요리할 재료가 은근히 많다. 고형 카레, 수제비, 국거리 고기, 김치, 각종 야채 등을 조합하면 한 두 끼를 만들기에 충분하다. 15분이면 뚝딱 할 수 있는 요리를 하거나 손이 많이 간다는 핑계로 잘 안 해 먹던 요리를 한다.


Photo by Alexandru Acea on Unsplash


재료에 정성을 더하면 건강하고 담백한 음식으로 나를 대접할 수 있다. 뜨끈한 국물이 당기면 수제비나 잔치국수를, 비 오는 날에는 빗소리를 배경 음악 삼아 김치전을 굽는다. 양파와 청양고추를 송송 썰어놓은 오리엔탈 소스와 얼음을 동동 띄운 오미자 칵테일을 곁들인다. 바삭하고 노릇하게 구운 전과 천상의 조합이다.


집안일에 시간을 할애하는 것 또한 추천할 만하다. 집 안의 모든 창문을 열고 느긋하게 청소기를 돌리고 물걸레질을 한다. 말끔하게 구석구석 닦아내면 집 안도 기분도 환해진다. 공간을 정돈하고 깨끗이 하는 일은 나를 정화하는 행위와 다름없다.


귀찮은 일을 좋은 의식처럼 들이면
절로 행복해진다.



직접 요리를 해 먹고 청소를 하는 것만으로 오후의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기분 좋은 포만감과 한결 깨끗해진 환경 보상처럼 주어진다. 저녁나절부터는 휴식 모드. 편하게 의자에 기대 보고 싶은 채널을 본다. 나른해지면 개운하게 샤워를 하고 상쾌한 기분으로 좋아하는 책을 보다가 잠든다.


하루 동안 1원도 쓰지 않았다. 몸과 집을 살뜰히 챙겼다. 평소에는 귀찮았을 법한 일에 시간과 공을 쏟으면 결과도 그만큼 따라온다. 왠지 자신이 대견해지는 기분이 밀려온다. 귀찮고 힘든 일을 좋은 의식처럼 들이면 절로 행복해진다.


물질과 소비로 매일을 채울 순 없다. 집 안을 돌보며 내가 가진 물건과 오늘의 평온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보자. 노 소비 데이를 통해 나에 집중하는 시간을 얻었고 절제의 기쁨을 알았다.


매달 적어도 세 번 이상 실천하려고 한다. 달력에 표시할 때마다 꽤 기분이 좋다. 이상하게도 아무것도 사지 않은 날 가장 충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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