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삼성동의 대형 서점에서 손바닥만 한 수첩을 구입했다.날짜를적을 수 있는 칸과그 아래세 줄공란이 반복되는 구성으로무엇을 쓸지는 본인에게 달린 거였다. 보라색 색감이 차분한 이 수첩 안에 의무감이 드는 To do list는 적고 싶지 않았다. 아이디어나 영감 리스트를 적기에는 칸이 모자라 보였다.
행복한 순간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고민을 하다 오늘의 행복을 적기로 했다. 항목 칸이 딱 세 개이니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을 성싶었다.
한 달 여 시간이 흐르고 수첩은얼마 못 가 책장 깊숙이 박혀 버렸다. 어디 두었는지 가물가물했던보라색 수첩은 새 집에 오고 미니멀 라이프를 연습하면서어느 상자 속에서 나와 빛을 보았다. 이번에는 자주 쓰고 싶었다. 침대 옆 조그마한 바구니로 자리를 옮겼다. 눈에 잘 띄면 쓸 일이 많아질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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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첩 속 지난 기록을 거슬러가다 보면 느낀다. 행복은 크고 거창한 것이 아니라 일상의 소소한 순간 속에 더 자주 존재한다는 것을.
심리학 연구에서도 행복은 크기가 아닌 ‘빈도’에좌우된다고 한다.수첩을 쓰려면 늦은 밤 침대에 엎드려 오늘의 행복했던 순간을 곰곰이떠올려보아야 한다. 신기하게도 하루에 한 번 이상 좋은 기억이 존재한다. 대개는 사소한 기억이다.
늦은 오후, 아름다운 빛을 따라가는 산책 또한 하루의 행복이다. @에디터 휘서
옆집 화단의 방울토마토를 맛있게 먹고 있는 까치의 모습을 살금살금 지켜본 일, 규칙적으로 돌아가는 세탁기음이 편안하게 들렸던때, 동네 나뭇잎의 색이 가을을 담뿍 머금었음을 알아챈 순간, 좋은 사람들과의 맛있는 식사자리등등. 나를 둘러싼 주변의 소소한 일과 동식물의기억이다.
쓰기 전에는 잘 보이지 않던 행복이 기억하기 시작하자 나타났다.
아주 큰 기쁨으로 가득한 날만 행복인 줄 알았다. 적기 시작하니 잠시나마 환히 웃을 수 있는 모든 일이 행복이었다. 자연의 작은 변화가 일상의 활력소였고 살아있는 순간이 존재의 기쁨으로 다가왔다. 하루하루 해내야 할 일이 나를 성장시킨다면 행복을 돌아보는 행위는 내면을 충만하게 물들인다. 오늘 하루도 무사하게 살아있음을, 반복하는 일과 속에 매일 다른 행복이 숨어 있음을 감사하게 여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