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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아오 Jan 14. 2024

작은 행복

주말 아침, 편의점으로 출근한다. 날이 쌀쌀한 겨울이라 그런지 거리엔 사람이 없다. 아직 어두컴컴한 아침엔 문을 연 가게들도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물건 정리를 마치고 나니 8시가 되었다. 해가 떠올라 거리가 밝아진다. 하지만 아직도 거리엔 사람이 드물다. 인근 식당들이 슬슬 문을 열기 시작한다.


편의점 통유리창을 밖을 구경하고 있다. 택시가 한 대 편의점 앞에 선다. 기사님이 내릴지 손님이 내릴지 예상하는 것도 재밌다. 나는 기사님을 예상했지만 뒷문이 열린다.


군복을 입은 키 큰 사내가 내린다. 군모까지 반듯하게 쓴 걸 보니 군인이구나. 군인은 휴가를 나와도 군복을 풀어헤치지 않는다. 적절한 선에서 격식을 갖춘 느낌이랄까.


아침 8시에 택시에서 내렸으니, 휴가라고 추측해 본다. 7시에 부대를 빠져나와 황급히 택시를 탔을 것이다. 1분이라도 빨리 집에 도착하고 싶었을 것이다.


이번엔 예상이 맞았다. 군인은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가볍게 뛰어 옆 골목으로 들어간다. 걸음마다 신남이 총총 묻어난다. 얼마나 좋을까.


30분이 지났다. 여전히 한산한 편의점에 종소리가 들린다.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와 문에 달린 종이 울린 탓이다. 오늘의 첫 손님은 누굴까.


편의점 매대 위로 얼굴이 보인다. 키가 크다. 성큼성큼 앞으로 다가온다. 아까 그 군인이다. 신발은 슬리퍼로 갈아 신었지만 군복은 아직 그대로이다.


양말도 벗지 않았다. 군복 바지가 양말 안으로 들어가 있는 걸 봐선 신발만 딱 벗은 상태, 그대로이다. 대체 30분 동안 뭘 했길래 불편한 군복을 아직도 입고 있을까?


성큼성큼 맥주 냉장고로 걸어간다. 아*히 드라이 캔을 네 개 집어든다. 그리고 매콤한 과자 하나도 집는다. 13500원. 그에게 봉지가 필요한지 묻는다.


"괜찮아요." 일회용 비닐봉지를 거절한 그는 맥주 네 캔을 탑처럼 쌓아 올려 가슴에 품는다. 손가락 끝으로 과자를 겨우 잡고는 꽤 빠른 걸음으로 편의점을 나간다.


휴가를 나와 30분 만에 맥주 네 캔과 과자 하나. 쉽게 그 기분이 이해된다. 시원하게 캔맥주를 따고 영화를 보며 과자를 먹는 작은 행복. (반쯤 누워야 한다.)


부대에서 누릴 수 없던 혼자만의 완벽한 자유를 손쉽게 풀고 있었다. 부디 가족들이 교회를 갔기를. 혼자서 맥주를 즐기길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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