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 특강을 여러 차례 나가며 종종 얼굴이 눈에 익는 분들이 계셨다. 한 분은 이미 세 번이나 봤다는 걸 대번 알 수 있을 정도로 낯이 익었다. 그분은 항상 수십 장의 A4용지를 들고 계셨다. 어디서 모은 것인지 이 회사 입사를 위한 일종의 공략집이었다. 합격자들의 자소서와 예상 면접 질문들, 회사의 주요 경영 전략이나 임직원들이 사회공헌 활동 내용까지 깔끔하게 정리해 두셨다. (팔아도 될 수준)
그런데 왜 자꾸 떨어지는지 의아했다. 벌써 두세 번 불합격을 하면서 '자료 모으기'는 더 집요해졌고, 회사 차원에서 주최하는 취업특강을 모두 빠지지 않고 참석하고 계셨다. 마침 일 대 일로 15분 상담 코너가 마련되어 긴밀히 이야기할 기회가 주어졌다. 이때도 역시나 준비한 A4 용지 무더기를 가져오셨고, 그중 조언이 필요한 용지 몇 장을 골라 책상 위에 꺼내놓으셨다.
이때 발견한 문제는 딱 한 가지였다. 솔직하게 현업에 종사하고 있던 나보다 직무 지식이 많으셨다. 그리고 애사심도 보였다. 그런데 단 한 가지, 그걸 표현하지 못하고 계셨다. 정말 회사와 잘 어울리는 실력자인데 자신을 온전히 드러내지 못하고 무언가 로봇처럼 느껴졌다. 정답을 찾아서 옳은 말만, 좋은 말만 내뱉다 보니 모범생으로 보일 수는 있어도 인간으로서 매력이 없었다.
인성 면접에 참여하는 면접관들은 이미 현업의 직책자 분들이 시기 때문에 '함께 일할 후배'를 뽑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심지어 채용 인원이 극소수인 직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함께 일하고 싶은가?"에 대한 의문은 더 중요하게 여겨질 수밖에 없다.
사실 신입사원들이기 때문에 역량은 비슷비슷하다. 우위를 매길 수는 있어도, 실무 입장에서는 도토리 키재지처럼 여겨진다. 그러니 아무리 옳은 말, 정답만 이야기한다 해도 그게 곧 실무를 잘하는 것과 직결되지 않는다. 나는 몇 마디 조언과 함께 이런 말을 전했다.
"A4 용지를 이렇게 가지고 다니고, 취업 프로그램도 여러 번 참여했잖아. 진짜 누구보다 열심히 준비해 왔다는 걸 어필해 봐."
자소서에서부터 정답을 아는 것을 피력하기보단 이곳에서 함께 일하기 위해서 부단히 준비해 온 태도를 메인재료로 삼을 것을 추천했다. 그리고 그 태도에 걸맞게 직무역량도 상당히 갖췄다는 점을 서브 재료로 얹어 놓으면 보기도 좋은 떡이 맛까지 좋은 셈이 된다.
그러고 나서 몇 달 뒤, 우리 부서에 새로운 신입사원이 배치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하지만 다른 파트였기 때문에 별달리 신경을 쓰지 않고 현장으로 나서는 순간 "안녕하십니까!" 우렁찬 외침이 들려왔다. 바로 그 친구였다. 몇수만에 합격한 것인지, 그 기쁨이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났다.
지난 3년 간, 자소서를 첨삭하면서 이 친구와 유사한 사례를 종종 목격했다. 초안과 함께 자신의 이력이라고 보내는 파일 양이 상당하다. 그 파일들 모두 깔끔히 정리되어 있는 것은 기본이고, 고민의 흔적까지 엿보인다.
하지만 그 자료에서 정답을 찾으려고 해서는 안된다. 준비가 투철할수록 자신에게 최상의 답변만 내놓고 싶어 하는 심리 때문에 오히려 '문항과 동떨어진 답변'을 내놓기도 한다.
이런 문제가 편견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마치 자소서에 정답이 있을 것이라는 착각, 그리고 자신의 캐릭터는 정답에 일치시켜야 한다는 강박.
자소서를 작성하기 전엔 한 가지만 명심하자. '자소서는 나를 처음 표현하는 단 하나 글'. 그러므로 해답지가 아닌 나를 살펴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