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소서에 뭘 써야 할지 모르겠다는 분들을 보면 '나에 대한 정리'부터가 되지 않은 경우가 허다하다. 좋은 경험을 가지고도 말하고 싶은 걸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다거나, 반대로 유달리 특별한 경험이 없어서 쓸 말이 없다고 하소연하는 경우도 있다.
일단 정리부터 해야 한다. 지금까지 20~30년을 살아온 세월을 날짜로 환산하면 9,000일이 넘는다. 그중 자소서에 쓸만한 고교시절부터 감안해도 약 10년이니 3,650일이나 된다. 시간으로 환산한다면 8만 시간이 넘는 방대한 여정을 걸어온 셈이다.
당장 자소서를 제출하겠다고 글부터 쓴다면 당연히 써질 리가 없다. 그 긴 세월이 모두 떠오르지도 않을뿐더러, 각 사연마다 느꼈던 감정이나 생각, 깨달음은 (일기를 쓰지 않은 이상) 깊게 고민해야 간신히 '그랬을 것이다'정도 수준으로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그래서 자소서에 100% 사실을 기록해야 한다지만 정말 100% 사실을 담기는 어렵다. 과거의 경험을 현재의 기억으로만 소환하는 것이기 때문에 왜곡된 지점이 있을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무척 숨 가쁘게 달렸던 상황을 떠올려 보자. 당시 얼마나 힘들었는지, 어떤 하늘이었는지 생생하게 떠올려 보는 것이다.
이때 나는 왜곡된 이미지를 머릿속에 떠올리게 된다. 1인칭 시점이기 때문에 내가 달리는 모습을 결코 볼 수 없는데도 머릿속에는 '내가 달리는 모습'을 3인칭으로 바라보는 이미지가 그려진다. 마찬가지로 자소서에 쓰는 내용들 역시 실제와는 조금 다르게 왜곡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렇게 3인칭 시점으로 멀리서 바라봐야만 당시 상황이 구체적으로 떠오른다. 1인칭으로는 시야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공간이나 상황에 대한 해석이 지엽적이게 된다. 만약 1인칭 시점에서만 경험을 해석하려 한다면 어딘가 부족하게 느껴지고 초라해 보이기까지 한다.
자소서에 입력할 경험은 그다지 대단하지 않아도 된다. 얼마나 화려하고 뛰어났는지 보다 그 경험을 통해 무엇을 얻었는지에 따라 가치가 달라진다. 아무리 사소해도 업무에 도움이 될 역량이나 자세, 인생을 살아가는 지혜를 얻었다면 훌륭한 경험이다.
한 가지 사례를 들어보겠다. 편의점 알바를 하면서 항상 퇴근 전에 쓰레기통을 청소한 분이 계셨다. 그게 원래 해야 했던 업무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쓰레기가 꽉 차있지 않을 때도 항상 비우셨고 주변 얼룩도 대충이나마 닦아 흔적을 없애셨다.
음식물통도 자주 비우셨는데 돌이켜 생각해 보니 이 덕분에 '냄새나지 않은 편의점'이었다고 한다. 다음 근무자 시간에 사람이 몰리더라도 쓰레기가 넘치는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으며, 음식물 냄새가 나지 않으니 손님들이 조금 더 쾌적하게 이용할 수 있었다.
이 내용을 바탕으로 '청결의 중요성'을 강조하셨고, 다른 근무자에게 미친 긍정적인 영향과 혼밥 손님들의 증가, 그리고 입사 후에도 남들이 꺼리는 일에 기꺼이 나서겠다는 포부까지 알차게 담으셨다. (만약 제조 현장이라면 정리정돈으로 안전사고 예방까지 연결할 수 있다.)
이렇게 가벼운 알바 경험조차 3인칭 시점으로 바라본다면 내 행동으로 만들어진 결과, 나비효과를 어렴풋이 포착할 수 있다. 당시에는 아무런 깨달음을 느끼지 못했을 수도 있지만 지금 돌이켜 봤을 때 그 사소한 행동들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면 뒤늦게나마 깨달음을 얻은 셈이다.
그러니 정리 좀 하자. 다급하게 자소서부터 쓰려하지 말고 내가 어떤 세월을 보내왔는지 철저하게 3인칭 시점에서 정리해 보는 것이다. 특히 스펙은 이력서에 충분히 드러나 있으니 전공이나 자격증을 갖췄다느니 그런 내용 말고, 그 전공이나 자격증을 공부하면서 무엇을 배웠고 어떻게 활용했는지 등 '행동'을 서술하자.
최소한 정리는 아래 표처럼 시간적, 공간적 배경을 모두 더해서 정리하자. 처음에는 아주 간단하게 내가 무슨 역할을 했는지, 그 역할-행동의 가치는 무엇인지를 몇 단어로 적어본다. 그 후 자소서 문항마다 알맞은 경험을 배치하고 아주 구체적으로 경험을 다시 정리한다면 시간도 절약되고, 내용도 깔끔해진다.
여기서 중요한 건 자소서의 각 문항마다 반영할 '주제'이다. 자소서 문항이 3~5개 밖에 되지 않으므로, 여기에서 내 어떤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지를 미리 정하는 것이다. 만약 제한 글자수가 700자 이내라면 한 문항당 주제는 한 가지여야 한다.
대부분 가치에 초점을 맞춰서 주제를 정하면 좋고, 자소서를 작성할 때는 정한 주제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경험을 풀어야 한다. 글의 처음과 끝에 주제를 반복하여 언급한다면 내 의도를 보다 명확하게 전달할 수 있다. 아무리 사소한 경험이라도 좋으니 1) 정리하고 2) 가치를 찾고 3) 주제를 정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