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를 못했다. 선홍빛으로 충혈된 눈과 살짝 부르튼 입술은 피곤함을 절로 드러내었다. 달리는 고속버스 안에서 잠시 잠을 청하고 나서야 '아! 넥타이!' 면접에 쓸 넥타이를 두고 왔다는 걸 깨달았다. 밤 10시, 버스에서 내려 부리나케 근처 남성복 매장으로 향했다. 문을 닫으려던 사장님은 사정을 듣고는 이미지에 알맞은 넥타이를 골라주셨고, 이곳에서 구매하신 분들 중 합격한 사람이 많다는 응원까지 곁들여 주셨다.
모텔에 들어와 1분 자기소개를 다급하게 외웠다. 단 하루도 쉬지 않고 세 개의 아르바이트를 뛰었던 나에게 자기소개를 제외한 다른 면접 질문들은 준비할 겨를이 없었다. 쪽잠을 자고 새벽에 일어나 다시 자기소개를 외웠다. 제발 자기소개라도 제대로 하자는 마음 하나뿐이었다. 이제껏 1차 서류, 2차 인적성을 통과했던 운이 여전히 따르길 간절히 소망했다.
준비해 온 비비크림으로 얼굴 톤을 다듬고 왁스로 머리를 정돈했다. 다행히 짧은 머리를 오랫동안 고집해 온 덕분에, 조금만 정돈해도 깔끔한 이미지가 완성되었다. 마음을 가다듬고 드디어 면접 자리에 앉아 준비한 자기소개를 읊었다. 하지만 쟁쟁한 경쟁자들에 주눅이 들어 말을 더듬었고, 잇따른 질문들에는 90% 이상 "모르겠습니다"라고 답했다. 망했다.
회사의 비전이나 제품 생산량처럼 기본적인 정보도 대답하지 못한 탓에 누가 봐도 면접을 망쳤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함께 면접을 본 세 명의 지원자들과 점심을 먹으며 한숨을 돌렸지만, 끝내 그분들은 내 전화번호를 묻지 않았다. 나를 제외하고 서로 합격 결과를 공유하자며 번호를 주고받으셨다. 나도, 그분들도 엉망이었던 면접 현장에 계셨으니 구태여 번호를 알리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 뒤, 휴대폰에 설치한 이메일 알람이 울렸다. 결과를 기대하고 있지 않던 터라 발표일까지 잊고 있었는데 무슨 운이 따랐는지 다음 일정에 참석하라는 메일이 왔다. 다급하게 아르바이이트 일정을 조율한 뒤 다시 4시간 거리의 지방으로 향했다. 마지막 임원 면접을 앞둔 대기실에서, 인사담당자가 내 얼굴을 기억하고는 반갑게 인사를 건네주셨다. 그리고 나와 함께 면접을 본 다른 세 명의 지원자는 대기실에 없었다.
아버지가 회사에 재직 중이신 분, 합격자를 많이 배출한 대학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을 앞둔 분, 그리고 3년 전 이미 근무를 하다가 복귀를 희망하시는 분이셔서 모든 대답이 우수했는데 어떤 연유로 떨어졌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잘한 것이라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있는 분 계세요?"라는 질문에 반사적으로 손이 올라가 불쑥 진심을 전한 것, 그 하나였다.
그 진심은 자소서에서 시작되었다. 고졸 학력에 3년 간의 경력 공백, 그리고 짧은 경력과 현재 아르바이트를 하는 사유까지 모두 녹아들어 있었다. 일종의 자기반성이었다. 사실 2년 전, 같은 기업의 인성 면접에서 불합격을 받았었다. 다른 지원자들이 "꼭 합격할 것 같아요"라고 말할 정도로 자타공인 잘 봤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와서 돌이켜 보면 모두 변명이었다. 대답만 잘했지 진정성이 없었다.
자기반성의 결론은 '입사를 해야만 하는 절박한 지원동기'로 연결되었고, 그 내용은 부서배치에도 영향을 미쳤다. 임원면접과 토론면접까지 통과하여 입사를 확정 지었고, 신입사원 연수기간부터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다. 3달의 연수기간을 매일 촬영하며 영상으로 제작하였고, 수료식에서 회장님 앞에 선보였다. 그룹 사보에 연재 글을 기고하기도 했으며, 1년이 채 되지 않아 인사팀의 권유로 정기적으로 취업 특강을 나섰다.
면접에서 내가 마지막에 반사적으로 내뱉은 말이 무엇인지는 시리즈의 가장 마지막에 담겠다. 취업을 준비하는 분이라면 '자신만의 진정한 지원동기'를 찾았으면 한다. 취업은 게임 캐릭터처럼 스펙으로만 합격하는 게 아니다. 어느 영역보다 지극히 현실로써, 스펙 뒤에 가려진 경험과 인성까지 고르게 판별하는 게 채용시장이다. 그러니 부디, 커뮤니티에서 자격증이나 학점을 비교하는 행동은 접고 경험과 인성 - '나'를 드러낼 방법을 궁리해 봤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