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소서에서 의외로 '역량'보다 '성격'을 파악하는 문항들이 자주 출제된다. 특히 신입사원 채용일 때 더 두드러지는데, 아마도 역량은 회사에서 교육할 수 있으나 성격은 어찌할 도리가 없어서 그런 듯하다. 과거에는 신입사원 연수가 약간 인간 개조 용광로처럼 극기 훈련을 동반하는 경우도 있었다. (나도 처음 입사했던 2010년에 겪었는데, 그런 훈련들이 성격이나 태도를 정말 용광로처럼 바꿀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이런 문항이 등장하면 당황하는 지원자들을 꽤 많이 만났다. 평소에 "나는 이런 사람이에요"라고 잘 말하지 않기도 하고, 자신에 대해 살펴본 사람 자체가 적다. 그나마 다행인 건 MBTI가 유행하면서 자신의 성격, 성향을 어느 정도 파악한 분들이 많아졌다. MBTI를 무조건 신뢰하는 건 아니지만, 꽤나 신뢰할 만한 자료가 된다.
MBTI 문항들은 "자신이 평소에 어떤 생각을 하는지, 이런 상황에서 어떤 행동을 하는지"를 묻는다. 애초에 답변을 선택할 때부터 "나는 이런 사람이야"라고 제출했고, 그걸 토대로 MBTI 범주가 정해진다.
예를 들어 보겠다.
나는 빵집 냄새를 그냥 지나치기 어렵다.
나는 피자와 파스타를 좋아한다.
나는 아침에 밥보다 빵을 자주 먹는다.
나는 입맛이 없을 때 라면을 끓여 먹곤 한다.
이런 답변을 했다고 가정할 경우 이 사람의 MBTI는 <대체로 밀가루를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때 "나는 밀떡보다 쌀떡이 더 좋은데?"라고 반박하는 케이스가 있는데 밀가루 음식을 대체로 좋아한다는 것이지, 무조건 좋아한다는 게 아니다.
성격도 마찬가지이다. 대체로 고민을 잘 들어주는 사람, 내성적인 범주, 계획이 있으면 더 안심할 수 있다는 정도. 그런 수준에서 놓고 본다면 꽤나 신뢰할만하다. 만약 아직 내 성격을 잘 모른다면 MBTI를 한 번쯤 해보자. 자소서 성격 문항 작성이 훨씬 수월할 것이다.
한 가지 유의할 게 있다. MBTI 16가지 중 어느 것이 좋고, 어느 것이 나쁘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냥 각 유형별로 성향이 다를 뿐이다. 마찬가지이다. 성격에는 장단점이 없다. 자소서 문항에서 '성격의 장점과 단점을 서술하시오'라 했다고, 정말 '내 성격은 이래서 문제야.'라고 답할 필요도, 심각해질 이유도 없다.
단지 내 성격 중 이 직무에서 유용한 부분과 그렇지 않은 면이 있을 뿐이다.
'빨리빨리 성격'이 탑재된 사람이라면 무슨 일이든 쉽고 빠르게 처리하지만 놓치는 게 많을 수 있다. '수줍음이 많은 성격'이라면 발표나 리드를 하기 어렵지만 경청 기회는 상대적으로 많다. '완벽함'을 선호한다면 모든 일에 퀄리티를 높일 수 있으나 시간이나 정신적 에너지고 많이 소모될 수 있다.
이처럼 어느 한 성격을 좋다/나쁘다고 단정 지어 말할 수 없다. 업무에 좋은 영향을 발휘하거나 지장을 주는 양면을 모두 표현할 수 있다. 그러니 부디 1) 기업과 직무 분석을 선행한 후 2) 주요 성격을 발굴하고 3) 이 직무에서 장점과 단점 양면을 고루 고민해 보자.
고민을 토대로 일단 내 성격 리스트를 만들자. 이때 되도록이면 '타인과 함께 있을 때 내 모습'에 주목하면 좋다. 회사 생활이란 게, 결국엔 일보다 사람이 먼저라서 공동체 생활에서 드러나는 내 모습이 자소서에 쓸 성격이 된다.
만약 사회 경험이 부족한 상황이라면 어떤 행동이나 생각 앞에 특수한 상황을 부여해 보자. 조금 더 명확하고 다양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 ENFJ인 나를 예시로 들어보겠다.
나는 친구들과 밥을 먹을 때 마지막 한 점을 먹지 않거나 반으로 나누는 편이다.
나는 축구를 할 때 골을 넣는 것보다 어시스트를 만들려고 움직인다.
나는 편의점 알바를 했을 때 손님들에게 인사를 하는 게 꽤나 재밌었다.
나는 조별 과제를 할 때 미리 시간을 할애해서 자료를 찾고 조원들에게 공유했었다.
나는 스터디에서 사람들의 사소한 지식을 칭찬하곤 한다.
이런 항목들을 준비했다면 이걸 직무와 연관해서 장점과 단점을 생각해 보자.
성과를 독차지하지 않고 동료들과 나눈다. / 반면에 눈치를 본다.
협업 시 상대의 역량을 잘 이끌어 낸다. / 반면에 혼자서는 마무리가 어렵다.
상대에게 먼저 친절하게 다가가는 편이다. / 반면에 업무량이 과다해질 수 있다.
업무 준비를 상당히 잘한다. / 반면에 에너지 소모가 크고, 내 실수가 팀에 영향을 끼친다.
분위기를 긍정적으로 이끌 수 있다. / 반면에 상대방이 부담을 느낄 수 있다.
이렇게 특수한 상황을 부여한다면 성격의 양면을 고루 살필 수 있다. 만약 업무에 지장을 주거나 누군가에게 불편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면 보완하고, 예방하면 그만이다.
성격을 고치는 건 상당히 어렵지만 상황에 알맞게 보완하는 건 쉽다. 자소서에 단점을 적어야 한다면 어떻게 보완할 수 있는지, 혹은 보완해 왔는지 반드시 드러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