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운 속도로 서로를 빨아들인다
우리 축구팀의 소소한 소모임이 점점 늘고 있다. 달리기, 등산, 배드민턴, 라이딩, 탁구, 볼링까지.
기본적으로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그런지 끼리끼리 모여서 잘 논다. 이토록 건강한 관계가 또 있나 싶다.
좋아하는 취미가 같다는 건 서로를 무섭게 빨아들인다. 몸으로 친해지는 관계가 깊어지는 속도는 2배속을 한 것처럼 순식간이다.
작년 여름 어느 날은 재택근무 전에 삼삼오오 모여 새벽 라이딩을 다녀왔다. 이 동네로 이사 온 후 가끔 혼자 답답하거나 힘들어서 바람 쐬고 싶을 때 혼자 가던 코스인데, 이번에는 팀원들과 함께 달렸다.
축구 유니폼을 벗은 언니들은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몇 명 언니들은 축구만큼이나 라이딩을 취미로 즐긴다고 했다.) 시크한 선글라스에 라이딩 전용복까지 한껏 차려입은 언니들은 번쩍번쩍한 자전거를 끌고 출발 장소에 도착했다.
나도 나름 20대에는 친구들 사이에선 ‘자전거 좀 타던 놈’이었는데, 언니들 앞에선 그저 따릉이 타는 서울시민 1 같은 느낌이었다.
기세등등하게 출발했지만 따릉이로 왕복 2-3시간은 아무래도 무리였다. 반환점에 도착했을 땐 정말 따릉이를 한강에 던져버리고 택시를 타고 집에 가고 싶었다.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영화 ‘신과 함께’ 시리즈 속 ‘나태 지옥’에 떨어진 것처럼 기계적으로 다리를 굴렸다. 아마 집에 가서 바로 일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에 더 힘들었으리라.
이번 라이딩 모임에서 하이라이트는 우리 축구팀의 ‘만능 올라운더’이자 언니들의 언니 O언니의 도시락 타임이었다.
다 함께 둘러앉아서 O언니의 도시락을 나눠먹었는데 정말 꿀맛이었다. 언니의 음식에서 엄마의 맛을 느끼며 살짝 울컥한 건 비밀이다. (파워 F인 나는 사실 동네 축구 친구들의 따뜻한 나눔에 자주 울컥한다. 울보라고 놀릴까 봐 꾹꾹 눌러 담는다. 나는 이날 이후 O언니를 내 멋대로 ‘서울 엄마’라고 부르기로 했다.)
축구가 나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은 아무래도 ‘동네 친구’가 아닐까 싶다. 함께 운동하고, 맛있는 걸 먹고, 함께 웃고 떠들고. 축구 덕분에 서로의 기쁨을 축하해 주고, 슬픔을 나눌 수 있는 존재가 더 늘었다.
기꺼이 마음을 활짝 열어 준 축구 친구들. 이들의 존재가 내 삶에 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너무 기대되고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