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구 박사의 다양성 칼럼
이전에 경영적 측면의 다양성 분야를 연구하면서, 필자가 내린 다양성의 정의가 있었다. 물론 그 배경에는 먼저 다름을 인지해야 한다는 인문학적인 접근이 시초였다. 그리고 인간 사이의 소통을 통하여 내면을 이해하고 서서히 다른 생각을 이해하고 수용하는 것, 협력을 통해 공동의 목표로 항해하면서 시너지를 만드는 과정 등, 나름의 논리적 흐름을 전개했다. 그리고 기업도 마찬가지로 이같이 다양성의 생태계에서 생존하고 발전해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필자만의 다양성을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먼저 다름을 인지하고, 이해하고, 인정하고, 수용하고, 장려하는 끊임없는 여정이다.”1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 다양성의 정의가 과연 올바른 것일까?’하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과연 요즘 말하는 DEI(Diversity, Equity, Inclusion) 사조(思潮)와 맥을 같이 할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이 떠나질 않았다. 다행히 관련하여 최근 HBR(Harvard Business Review)의 어느 수준 높고 통찰력 있는 논문을 통해 일정 부분 확신을 갖게 되었다. 많은 기업의 DEI 노력에는 여러 순차적인 여정이 있고, 그 여정들을 예측할 수 있는 뚜렸한 단계가 있다는 내용이다. 그것은 인지(Aware), 준수(Compliant), 전술(Tactical), 통합(Integrated), 지속(Sustainable)의 단계를 말한다. 단계마다 DEI를 성공으로 이끄는 전략이 있고, 기업이 이를 행동으로 전환하도록 만드는 중요한 질문들이 있다고 했다.2 이제 그 내용을 살펴보겠다.
인지(Aware)
DEI 초기 단계의 기업은 어떤 사건, 즉 직접적인 소송이나 투자자의 요청 또는 조지플로이드 사건과 같은 어떤 사회적 사건을 계기로 DEI를 인지하게 된다. 사실상 생존의 사투를 벌이는 스타트업들은 물론이고 이미 성공한 오래된 기업들조차도 DEI를 인지 못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결국 재무적 성과에만 매달려 온 대부분 기업이 이 단계를 경험한다.
이 단계의 리더들은 다음의 질문을 통해 그 해결법을 찾아야 한다. 먼저 ‘왜 DEI는 개인 단위의 문제인가?’이다. 즉 기업 구성원의 내, 외부적인 차별이나 제도의 공정성 문제 등, DEI 문제에 어떻게 대응하는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다음 질문은 ‘우리의 DEI는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까?’이다. 즉 기업의 상황에 부합하는 DEI 비전과 목표를 수립하여 모든 구성원과 공유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인적 다양성의 노력, 다양한 커뮤니티와의 관계 정립, 포용적인 기업문화 조성 등이 여기에 해당할 것이다.
준수(Compliant)
인지 단계를 지나면서 기업들은 다양성에 관한 여러 규제나 엄격한 요구사항에 직면한다. 예를 들어, 미국의 경우는 EEOC(Equal Employment Opportunity Commission) 법령이 있다. 이 단계의 기업들은 DEI의 의무, 즉 ‘We do DEI because we have to’로 받아들인다. 최근의 선진 사례 연구에 의하면 전체 기업의 1/3이 이 단계에 머물러 있다고 한다.3 여전히 다양성의 문제를 규제로 생각하고 요구사항만 지키면 된다는 식의 기업들이 많다는 의미다.
이 단계에서 생각해야 할 질문은 다음과 같다. 먼저 ‘우리 기업의 DEI가 단지 준법(Compliance)을 넘어 더 큰 차원의 목표로 나가야 하는 것이 왜 중요할까?’이다. 리더는 이 답을 찾으면서 기업의 거시적이고 장기적인 DEI 비전과 모습을 생각하게 될 것이다. 다음은 ‘DEI가 어떻게 우리 기업의 목표와 연계될까?’이다. 기업의 DEI 노력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목표, 즉 그것이 재무적 성과든 글로벌 마케팅이든 간에, 중요한 목표와 연계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기업의 ERG(Employee Resource Group)를 활용, 지역 커뮤니티와 연계하여 여러 마케팅 성과를 노릴 수 있다.
전술(Tactical)
이 단계의 기업들은 대개 자체적으로 DEI 목표를 수립하고 실천한다. 즉 ERG와 같은 DEI 팀이나 기업 특성에 적합한 DEI 프로세스를 만들어 아래로부터 다양한 목소리를 듣는 문화를 조성해 가기 시작한다. 전 구성원이 편견이나 선입견, 고정관념에 관련한 어려운 주제를 서로 피드백하면서 진지하게 나눈다. 또한 어떤 중요한 의사결정에 앞서서 다양한 목소리를 경청하는 환경이 서서히 조성된다. 하지만 이 단계의 DEI는 기업에서 대체로 팀이나 본부 단위, 즉 부분적이거나 단편적으로만 수행되고, 기업 전반으로는 아직 연계되지 않았다.
예를 들어, 우리가 잘 아는 기업인 ‘나이키(NIKE)’는 ‘Just do it’이라는 슬로건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것은 인종이나 나이 성별, 신체적 조건 등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누구나 할 수 있다는 DEI적 캠페인을 포함하는 마케팅이었다. 또한 인종차별에 저항하여 싸우는 운동선수를 공개적으로 지지하면서 더욱 성공적인 마케팅으로 이끌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는 400명이 넘는 직원이 사내에서 인종차별을 당했다고 한꺼번에 소송하는 일이 벌어졌고, 그 이후에 어떤 곳에서는 여성 노동자에 대한 학대와 열악한 근무 환경으로 고발을 당한 사실이 알려지게 되었다. 결국 나이키의 DEI는 부분적인 노력이었다.
이 단계의 리더들은 다음 질문을 해야 한다. 먼저 ‘무엇이 우리의 전사적인 DEI 전략이 되어야 할까?’이다. 즉 기업의 조직 전체가 함께 노력하여 달성하는 DEI 전략을 정의해야 한다. 다음은 ‘어떻게 표준화된 DEI 전략을 수립할 수 있을까?’이다. 가깝게는 채용 프로세스부터 포용적 문화를 위한 여러 정책에 이르기까지, 하나 된 전략이 필요하다. 다음으로 중요한 질문은 ‘기업의 DEI 정책이 어떻게 조직 전체에 스며들게 할 수 있을까?’이다. 팀 멤버들이나 매니저들, 그리고 리더들이 DEI 정책을 충분히 이해하고 서로 피드백하는 체계가 매우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리더가 해야 할 질문은 ‘과연 우리 DEI 전략의 영향력이 기업 전반의 가치사슬에도 미치는가?’이다. 즉 DEI 전략이 기업의 전체 조직을 넘어 모든 이해관계자까지 확대되어 있는지 물어보는 것이다. 고객이나 파트너, 공급자, 주주 등 주변의 모든 이해관계자와 같이 공유되고 실행되는지, 혹 어떤 불공정이나 차별의 문제가 없는지 점검해야 한다.
통합(Integrated)
기업의 DEI 전략이 조직의 탑-다운이나 바텀-업으로 잘 연결되면서, 전사적으로 수행되고 있으면 이제 통합 단계라고 말할 수 있다. 이 단계의 기업들은 이런 말을 한다. ‘DEI is part of everything we do.’ 또한 이 단계에 속해있는 리더들은 DEI에 관한 한, 대체로 겸손하다고 한다. 왜냐하면 DEI 노력이 모두 성공하는 것이 아님을 깨닫기 때문이다. 즉 DEI에 대한 새로운 도전을 발견하여 실천 계획을 수립하고, 잘 동작하지 않으면 변화를 주면서 다시 도전하는 등 여러 실험을 진행하면서 선순환의 구조를 만들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이 단계의 리더들은 DEI 노력이 한순간으로 끝나지 않을지, 즉 어떤 이벤트성 행사나 시장 상황 또는 특정한 고위 리더의 열정으로만 추진되고 있는지를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그래서 이 단계의 리더들은 다음을 질문해야 한다. 먼저 ‘지속적인 DEI 전략을 위해 어떤 시스템이나 구조를 만들어야 할까?’이다. 즉 현재 수립된 최적의 DEI 전략과 정책이 시스템에 의해 지속해서 운영되어야 한다는 의미다. 그리고 다음 질문은 ‘과연 현재의 시스템이 궁극적인 DEI 목표에 부합할까?’이다. 기업의 상황이나 외부 환경에 따라서 DEI 시스템 또한 변화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기업의 모든 이해관계자의 인구통계학적 특성이나 시장의 변화 등에 따라 DEI 시스템을 주기적으로 점검해야 한다.
지속(Sustainable)
마지막으로 지속 단계다. 이 단계는 기업의 DEI 전략이 기업의 DNA에 깊이 내재한 상태를 말한다. 기업이 직면하는 여러 도전이나 리더십의 변화가 있더라도 DEI의 노력은 지속해서 유지한다. 거대 기술기업인 인텔(Intel)의 사례가 대표적인 지속 단계의 기업 사례로 볼 수 있다. 2015년 인텔의 CEO 브라이언 크르자니치(Brian Krzanich)는 ‘Full Representation’이라는 5년간의 야심 찬 인력 다양성 전략을 세우고 3억 불의 예산을 책정하였다. 소수그룹의 인력 추천에 대한 보너스 프로그램, 지역 고등학교 그룹과 파트너십을 맺고 컴퓨터 공학 프로그램을 개설, 소수그룹이나 여성 직원을 늘리는 목표 등 공격적인 DEI 투자와 지원으로 다양한 시스템을 만들었다. 물론 퇴임 이후에도 이미 조성된 DEI 문화와 시스템이 작동하여, 다양한 소수그룹 커뮤니티를 통한 인력 채용, 여성 기술 인력 비율의 40% 이상 유지 등 여러 돋보이는 정책을 계속 유지해 왔다. 이것은 1990년대에 IBM의 CEO인 루 거스너(Louis Gerstner)가 보여준 수준 높은 다양성 전략에 이어 또 다른 모범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4
앞서 기업의 DEI 단계에 관한 연구 내용을 고찰하면서, 기업의 DEI 노력은 어떤 목적을 달성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확신에 이르렀다. 이것은 필자가 꽤 오래전에 주장했던 다양성의 정의, 즉 “먼저 다름을 인지하고, 이해하고, 인정하고, 수용하고, 장려하는 끊임없는 여정이다”의 맥락과도 같이 한다. 결국 기업의 DEI는 각 단계를 거치면서 발전하고 지속해서 노력해야 하는 여정인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문제는 내가 속해있는 기업이 정확히 어느 단계인지를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고, 다음으로는 어느 단계에 있든지 DEI 노력을 자칫 소홀히 하거나 무시하면, 매우 쉽게 이전 단계로 미끄러진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기업의 DEI는 변화하는 여러 대내외 환경에 대응하면서 발전해야 함은 물론이다.
참고문헌
1. “다양성 전략”, 이종구, 2016, 서울경제경영
2. “The Five Stages of DEI Maturity”, Ella F. Washington, 2022, Harvard Business Review
3. “A Snapshot of Companies’ DEI Progress”, 2022, Slack’s Future Forum
4. “IBM's diversity strategy: bridging the workplace and the marketplace”, Thomas, D. A., & Kanji, Ayesha, 2004, Harvard Business Revie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