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Book Review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인식 Dec 06. 2024

이미륵의 <이상한 사투리>

언젠가 어느 수도원에서 여름휴가를 보낸 적이 있다. 그것은 신앙심 때문이 아니라 단지 휴식을 위해서였고, 그것은 그곳에 사는 사람들 때문이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수도원은 아주 조용했다. 사람들은 맡은 일을 수행할 뿐이었고, 그들 모두 각자의 길을 걷고 있을 뿐이었다. 아무도 이 낯선 이방인이 종일토록 무엇을 하며 지내는지 신경 쓰지 않았고, 말을 걸어오는 사람조차도 없었다. 그래도 아주 가끔 독일에서의 생활은 괜찮은지, 고향이 그립지 않은지를 묻는 사람은 있었다.


수도원 문지기는 금발에, 얼굴이 넓적했으며, 온화한 성품을 지닌 사십 세가량의 수사였다. 그는 항상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아마 수사들 가운데서는 가장 많이 웃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는 비가 오는 날에도, 깊은 밤중에도 늘 웃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를 볼 때마다 마음이 평온해졌다. 이따금 산책하다가 정해진 시간보다 늦게 돌아와 문을 열어 달라고 청할 때면 더욱 그랬다. 사람들은 외출할 때마다 그에게 미리 이야기해야 했고 돌아올 시간도 알려 주어야 했다. 저녁 무렵 나는 늘 산책을 했다. 수도원 주변의 숲속을 걷기도 하고 때로는 조용한 시골길을 따라 걷기도 했다. 해지는 저녁 운터프랑켄의 경치를 바라볼 때면 우울했던 기분이 말끔히 사라졌다. 누구나 약점은 있기 마련인데, 내겐 바로 저녁 시간이 그랬다. 사방에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면 나는 방안에 혼자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유난히 화창한 어느 날 저녁이었다. 밖에서 산책하다가 조금 늦게 돌아오겠노라고 미리 말해두려고 문지기 수사에게 갔지만, 그가 자리에 없었다. 미닫이 창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털이 덥수룩하게 자란 농부가 건초더미를 잔뜩 싣고 지나가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바깥 날씨가 좋은지를 물었다. “네, 아주 좋아요. 한번 나가 보구려.” 그는 수염이 덥수룩한 입술로 중얼거리듯 말했다.


시간이 지나도 수사가 나타나지 않자 나는 마음이 초조해졌다. 너무 오래 서 있어서 몹시 피곤해진 나는 나중에 외출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방으로 되돌아가기로 했다. 본관 건물의 긴 복도를 지나 막 방으로 들어서려는 순간, 젊은 수사가 내 방에서 물통을 들고 나왔다. 나는 그 젊은 수사에게 문지기 수사를 보지 못했는지를 물었다. 그러자 그는 손가락으로 수도원장의 방을 가리키며 아주 낮은 소리로 뭐라고 말했다. 늘 그랬지만, 나는 그 수사의 말을 절반도 알아듣지 못했다. 그는 표준독일어를 사용하지 않았고, 게다가 아주 낮은 톤으로 말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문지기 수사가 ‘내 고향 친구’와 함께 원장실에 들어갔다는 정도로만 겨우 알아들을 수 있었다. “고향 사람이라고요?” 나는 놀라서 그에게 되물었다. “그래요, 당신 고향 사람이오.”


누가 이곳까지 왔다는 거지? 나는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일본 사람? 그럴 리 없지. 그럼 중국인? 그것도 아닐 테고. 도대체 고향 사람이라니? 날마다 내 방을 청소해 주고 있는 그 젊은 수사는 정작 내가 어디서 왔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그렇다고 그가 지리학에 조예가 깊은 것도 아니었고, 인종학이니 민족학에 대해서는 더더욱 그랬다.


그가 물동이를 들고 내 방으로 다시 돌아왔을 때 그는 그 ‘고향 사람’과 함께였다. 수줍게 들어오고 있는 그 고향 친구라는 사람은 한눈에 보아도 아프리카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젊은 수사가 방을 나가자 나는 그 고향 손님에게 자리를 권했다. 나는 그에게 독일어를 알아듣는지 물었다. 그는 고개를 저었다. 영어는 할 줄 아세요? 그러자 그는 전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중국어 혹은 일본어, 심지어 한국어까지 해보았지만, 그 남자가 아는 언어는 없는 듯했다. 그때 그가 내게 물었다. “불어를 하세요?” 나는 그 문장이 무슨 뜻인지는 알고 있었다. 순간 나는 “아니오(non)!” 라고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것은 내가 알고 있는 유일한 불어였다. 불어 사전이라도 있으면 간단 한 말 정도는 어렵게라도 읽을 수 있었을 텐데. 안타깝게도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은 방금 그가 내게 물었던 그 말이 전부였다. 나는 종이 와 연필을 가져와 그 앞에 놓았다. 그가 고개를 저었다. 나는 그가 글을 쓰지 못한다는 것을 금방 알아차렸다. 그렇다면 그는 읽을 수도 없는 셈이었다. 그는 내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모로코, 알제리, 이집트 등도 전혀 모르겠다는 듯 내가 내민 아프리카 엽서를 그저 바라보고만 있었다.


우리 두 ‘고향 사람’은 말없이 서로 마주 바라보고 앉아 있었다. 그도 내가 어느 나라 사람인지를 골똘히 생각해 보는 눈치였다. 그는 한참을 내 얼굴이며 손이며 발을 훑어보았다. 그리고는 코트며 모자며 지팡이며 방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을 주의 깊게 살피더니 뭔가를 물어보려는 듯 나를 바라보았다. 그는 내가 알아듣지 못하는 몇 마디 말을 반복적으로 말했다.


나는 그에게 담배 한 개비를 주었다. 그러자 그는 그것을 받아 들었다. 내가 불을 권하자 그는 고개를 저었다. 담배를 피우지 않으려는 듯, 그는 담배를 손에 쥐고만 있었다. 나중에 피우려는 거겠지. 그에게 성냥 한 갑을 건네자 그는 또 그것을 그냥 받아 들었다. 우리는 또다시 말없이 앉아 있었다. 그는 깃 없는 옷을 입고 있었는데, 내 짐작으로는 셔츠도, 내복도, 양말도 없어 보였다. 웃옷과 바지는 여러 군데 찢겨 있었고, 마치 거울처럼 반질거렸다. 나는 옷장에서 속옷과 양말을 꺼내 그의 무릎에 올려놓았다. 그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나는 그 물건들을 가져도 된다는 몸짓을 해 보였다. 그는 미소를 지으며 속옷을 넥타이와 담배, 그리고 성냥과 함께 둘둘 말아 챙겨 들고는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나는 그런 뜻이 아니라며, 내 방에 더 있어도 된다는 시늉으로 고개를 저으며 그를 다시 의자에 앉혔다. 그러자 그는 당혹스러운 눈치를 보이며 짐 꾸러미를 도로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물건들을 놔둔 채로 방을 나가려고 했다. 내 뜻을 잘못 이해하고 있었던 게 분명했다. 나는 이 물건들은 전부 그의 것이며, 좀 더 머물러 있어도 좋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시켜야 할지 고민했다. 그리고는 나는 그의 손을 잡아 다시 의자에 앉힌 다음, 짐 꾸러미를 그의 무릎에 다시 올려놓아 주었다. 그제야 그는 나를 이해하겠다는 듯 얼굴 가득 환하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는 한 번 더 내 방의 모든 물건을 둘러보다가 다시 나를 훑어보았다. 그는 손으로 책들을 가리키며 내 눈을 들여다보고는 내가 그것들을 다 읽을 수 있는지를 물으려는 듯했다. 나는 책 한 권을 꺼내 그에게 몇 줄을 읽어 주었다. 그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타자기 덮개를 벗겨 내가 글도 쓸 줄 안다는 듯 몇 줄 쳐 보여주었다. 그는 아주 놀랍다는 듯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그는 이내 다시 우울해졌다. 그는 더는 웃지 않았고, 더는 경이로운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지도 않았다. 그는 한동안 창문 밖으로 점점 어두워지고 있는 수도원 지붕 너머를 바라보고 있었다. 수사가 들어와 그를 그의 침실로 안내할 때까지 그는 그렇게 앉아 있었다.


다음 날, 나는 그가 프랑스 군대에서 도망 나온 모로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독일의 이 마을 저 마을로 보내졌다가 수도원 인근 시의 자치단체에서 이곳으로 보내진 것이었다. 다행히 불어를 할 줄 아는 수도원 신부 한 분이 그가 몸짓을 섞어가며 말하는 몇 마디 단어에서 그의 이야기를 알아들었다. 그는 부지런히 일만 한다면 그대로 수도원에 머물러 있어도 된다는 허락을 받게 되었다.


저녁 식사 후, 그가 다시 내 방문을 두들겼다. 내가 들어오라고 하자 그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고향 사람인 내게로 오지 않고 그 누구에게로 가겠는가. 나는 기꺼운 마음으로 그를 맞이했다. 나는 그에게 담배 한 개비를 건넸다. 그는 아주 만족스럽게 담배를 피웠다. 그는 손님이 되었고, 종일토록 밖에서 일했다는 몸짓을 해 보였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나 또한 온종일 책을 읽고 글을 썼다고 그를 이해시켰다. 우리는 웃으며 서로를 잘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에 기뻐했다. 그때 젊은 수사가 물동이를 가져가려고 다시 방으로 들어왔다. 그는 우리 옆에 서서는 우리가 ‘모국어’로 무슨 말이든 해보라고 간청했다. 나는 ‘내 고향 친구’가 나와는 다른 사투리로 말하고 있다고 그에게 설명해 주었다. 그는 곧 알아차렸다는 듯. 자신도 운터프랑켄에서 사용하는 말과는 다른 사투리를 쓰는 저 먼 어떤 마을에서 왔다고 말했다. 그래서 자기는 다른 사투리를 이해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잘 안다고 했다. 그는 내가 운터프랑켄 사람들 보다 자기를 더 잘 이해할 것이라고 확신하는 듯 내게 자기 고향 이야기를 해주었고, 나는 알아들을 수 없는 그의 낯선 발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잘 이해할 수 있었다.


아프리카인, 유럽인, 그리고 아시아인. 그렇게 세 남자는 아무 말 없이 앉아 창문을 통해 잿빛 수도원 지붕 너머, 그리고 푸른 마인강의 계곡 너머로 지고 있는 저녁놀을 바라보고 있었다.


Der andere Dialekt


* Der Beitrag erschien zuerst am 16, März 1934 in »Düsseldorfer Nachrichten«.


Einmal verbrachte ich die Sommerferien in einem Kloster, nicht aus Frömmigkeit, sondern um der Ruhe willen und der Menschen wegen, die drin lebten.


Vom Morgen bis zum Abend herrschte Ruhe. Jeder hatte seine Arbeit, seine Aufgabe, seinen  Weg. Niemand kümmerte sich um den sonderbaren Fremdling und um das, was er den ganzen Tag trieb. Man sprach nicht viel mit mir, aber doch wurde ich hier und da gefragt, wie es mir in Deutschland gehe und ob ich nicht Heimweh hätte.


Der Pförtner war ein blonder, breitwangiger, gutmütiger, vierzigjähriger Mann; er lachte gern, lachte vielleicht am meisten von allen Brüdern, die ich kannte. Selbst bei Regenwetter und in der tiefsten Nacht sah ich ihn nur lachend. Das beruhigte mich; zumal ich oft später als zur vorgeschriebenen Zeit nach Hause kam und ihn immer um Einlass bitten musste. Ich musste mich nur beim Ausgang bei ihm anmelden und den Zeitpunkt angeben, wann ich zurückkommen wollte. Ich ging abends doch so gern spazieren; abwechselnd einmal in die   umliegenden Wälder, einmal auf der ruhigen Landstraße, um mich in der Dämmerung der unterfränkischen Hügellandschaft ein wenig zu zerstreuen. Jeder Mensch hat seine schwache Seite. Die meine war der Abend. Das Dunkelwerden konnte ich nicht allein im Zimmer vertragen.


Eines schönen Abends war der Pförtner nicht da, als ich mich für mein späteres Heimkommen  vormerken wollte. Ich wartete vor dem schiebbaren Holzfensterchen. Es kam der Landwirt mit seinem Vollbart und einem hochbeladenen Heuwagen. »Ist es draußen schön?« fragte ich ihn. »Prächtig! Gehen Sie nur hinaus!« murmelte er in seinen Bart.


Ich wurde ungeduldig; der Pförtner kam aber nicht. Des langen Stehens müde, wollte ich in mein Zimmer zurückkehren, um etwas später fortzugehen. Als ich im langen Gang des Hauptgebäudes leise zu meinem Zimmer dahin schritt, kam der junge Bruder mit dem Wasserkrug aus meiner Stube. Ich fragte ihn, ob er nicht den guten Pförtner gesehen habe. Er deutete mit dem Finger auf das Zimmer vom Prior hin und sagte etwas leise darauf. Ich verstand ihn, wie immernur halb. Erstens sprach er nicht hochdeutsch, zweitens zu leise. Soviel ich aber verstehen konnte, war der Pförtner bei Pater Prior, und zwar mit einem »Landsmann« von mir. »Ein Landsmann?« fragte ich ihn. »Ja, ein Landsmann von Ihnen.«


»Wer könnte hierher gekommen sein?« dachte ich. Ein Japaner? Kaum. Ein Chinese? Auch nicht gut möglich. Was für ein Landsmann könnte dieser sein? Dieser junge Bruder, der jeden Tag mein Zimmerchen sauber machte, hatte natürlich keine Ahnung, woher ich kam. Er war in der Geographie nicht sehr bewandert, noch weniger in der Rassen-bzw. Völkerkunde.


Als er mit dem Wasserkrug wieder in mein Zimmer kam, brachte er mir den »Landsmann« mit:  einen Nordafrikancr, soviel ich den schüchtern eintretenden Gast im ersten Augenblick beurteilen konnte. Der Bruder ging, und ich bot dem Besuch Platz. Ich fragte ihn, ob er Deutsch verstände. Er schüttelte seinen Kopf. »Do you speak English?« Er machte keine verstehende Miene. Dann war es mit meiner Aktivität zu Ende. Chinesisch oder Japanisch, gar Koreanisch wäre für diesen Mann keine mögliche Sprache. Da fragte er mich: »Parlez-vous Francais?« Ich wusste, was dieser Satz bedeutete. Ich sagte »Non!«


Ja, das liebe Französisch, das war fiir mich ein scharfer Haken. Eine leichte Erzählung konnte ich mit vieler Mühe lesen, wenn ich ein Wörterbuch bei mir hatte. Verstehen konnte ich aber leider nur den eben gehörten Satz. Ich holte ein Stück Papier und einen Bleistift und legte sie vor ihn hin. Er schüttelte seinen Kopf und gab mir zu verstehen, dass er nicht schreiben könnte. Lesen konnte er auch nicht. Er sah nämlich die Karte von Afrika, auf der ich mit dem Finger auf Marokko, Algerien, Ägypten usw. hindeutete, ganz verständnislos an.


Da saßen nun wir zwei »Landsmänner« einander stumm gegenüber. Er schien auch nachzudenken, was für ein Mensch ich sei. Lange sah er mein Gesicht, meine Hände, dann auch die Füße an. Den Mantel, den Hut, den Stock, alles im Zimmer betrachtete er aufmerksam, um dann wieder mich fragend anzusehen. Einige Wörter sprach er versuchsweise wieder, die ich nicht verstand.


Ich gab ihm eine Zigarette, Er hielt sie in der Hand. Als ich ihm Feuer geben wollte, schüttelte er seinen Kopf. Er schien kein Raucher zu sein. Die Zigarette behielt er aber noch in seiner Hand. Vielleicht wollte er sie später rauchen. Ich gab ihm eine Schachtel Zündhölzer, die er ebenfalls in seiner Hand hielt. Dann saßen wir wieder stumm. Er hatte keinen Kragen an, soviel ich vermutete, auch kein Hemd, keine Unterhose und keine Strümpfe. Die Jacke und die Hose waren mehrfach zerrissen und glänzten wie Spiegel. Ich holte aus dem Schrank Wäsche und Socken und legte sie auf seinen Schoß. Seine Augen wurden kreisnind. Ich machte eine Geste, dass er die Sachen mitnehmen solle. Er lachte und wickelte die Wäsche mitsamt der Krawatte, der Zigarette und der Zündholzschachtel zu einem Päckchen zusammen und wollte damit gehen. Nein, so hatte ich es nicht gemeint. Er konnte ja noch länger bei mir bleiben. Ich schüttelte meinen Kopf und zwang ihn wieder auf den Stuhl. Er machte wieder erstaunte Augen und legte das Päckchen auf den Tisch. Dann wollte er ohne das Päckchen gehen. Er hatte mich offenbar falsch verstanden. Wie sollte ich ihm aber verständlich machen, dass die Sachen ihm gehörten, er aber noch länger bei mir weilen sollte? Ich zog ihn an der Hand zu seinem Platz und legte das Päckchen auf seinen Schoß. Dann begriff er mich doch, lachte mit seinem ganzen Gesicht. Er betrachtete noch einmal mein ganzes Zimmer und dann mich. Er deutete auf die Bücher, dann auf meine Augen und schien zu fragen, ob ich lesen könne. Ich holte mir ein Buch und las daraus einige Zeilen. Er nickte verständnisvoll mit dem Kopf. Ich machte den Deckel der Schreibmaschine auf und schrieb einige Zeilen, um zu zeigen, dass ich auch das konnte. Er sah mich bewundernd an.


Dann schien er aber traurig zu werden. Er lachte nicht mehr und sah mich auch nicht mehr bewundernd an. Er guckte lange Zeit aus dem Fenster über die Klosterdächer, die sich immer mehr verdunkelten. So saß er, bis der Bruder hereinkam und ihn zu seiner Schlafstätte führte.


Am nächsten Tag erfuhr ich, dass er ein von einem französischen Regiment entflohener Marokkaner war. In Deutschland wurde er von einer Ortschaft zur anderen geschickt, bis er durch die benachbarte Stadtgemeinde in unser Kloster empfohlen wurde. Pater Prior konnte gut Französisch und erriet seine Geschichte aus den wenigen Wörtern, die er, mit Gesten verziert, aussprach. Er durfte nun bei uns bleiben, wenn er fleißig arbeitete.


Nach dem Abendbrot klopfte er an meiner Tür. Er lachte, als ich ihn hereinließ. Freilich, wo sollte er denn sonst hingehen, wenn nicht zu seinem »Landsmann«. Ich gab ihm eine Zigarette. Er rauchte sic vergnügt. Er machte eine Geste, dass er den ganzen Tag draußen gearbeitet hätte. Ich nickte und gab ihm zu verstehen, dass auch ich den ganzen Tag gelesen und geschrieben hätte. Wir lachten und freuten uns, dass wir uns doch ziemlich gut verständigen konnten. Da kam der Bruder herein und wollte den Wasserkrug mitnehmen. Er blieb aber bei uns stehen und bat uns, wir sollten etwas in unserer Muttersprache reden. Er möchte gerne zuhören. Ich sagte, dass mein Landsmann leider einen anderen Dialekt spreche als ich. Er begriff es sofort. Er war auch aus einem fernliegenden Gau, wo man anders sprach als in Unterfranken. Er hatte es auch schwer, sich mit den anderen zu verständigen. Er schien aber zu glauben, dass ich ihn besser verstehe als die Unterfranken. Er erzählte viel von seiner Heimat und ich verstand ihn trotz denn fremden Klänge.


Stumm saßen drei Männer, ein Afrikaner, ein Europäer, ein Asiate und schauten durch das Fenster, über das lange graue Klosterdach, über das grüne Maintal in die fränkische Abenddämmerung hinaus.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