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잉여일기

2023.07.28 (금)

by 박인식

오래 전에 서예가이신 교회 장로님이 쓰신 한문 성구 족자를 보면서 감탄을 금치 못한 일이 있었다. 그러다가 터무니없는 욕심이 일었다. 언젠가 나도 한 번 저렇게 써보리라. 그런데 정말 터무니없는 욕심이기는 했다. 붓 한 번 변변히 잡아본 일이 없었으니 말이다. 그때 장로님께서는 백 년 가까이 된 영인본 한문성경을 사용하셨다.


한동안 잊고 지내다가 십 년쯤 전에 인쇄본으로 발간된 <1912년 한문성경>을 구했다. 그거 읽는데 몇 년 걸렸다. 그것만 펼쳐놓고 읽을 정도는 못 되어서 다른 성경 몇 가지를 함께 펴놓고 읽었다. 때로 한글성경보다 훨씬 시적이고 직관적인 구절이 나오면 감탄하느라 읽기는 잊고 넋 놓고 바라보기만 했다.


한문성경 읽기를 마치고 나서 국한문 혼용 성경을 놓고 하루 한 장씩 쓰기 시작했다. 나이가 들어가니 글씨도 흔들리고 한자도 까먹어서 겸사겸사 시작한 것이 아직도 마치지 못하고 계속 쓰고 있다. 지금 속도면 내년이면 끝낼 수 있겠다.


아침나절에 정혜경 선생께서 서예전에 다녀와 올려놓으신 글을 읽었다. 색다른 작품이 눈에 띄어 궁금하기도 했고 선생께서도 한 번 다녀오라고 권하셔서 도서관에 책 반납하러 간 길에 인사동 전시장에 들렀다.


사진으로만 봐서는 요령부득인 작품이 몇 점 있었다. 얼핏 봐서는 점자가 아닌가 싶기도 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옆에 짝 맞춰 전시해놓은 서예작품의 글씨가 아래 종이에 배어나온 흔적이었다. 오늘 서예전을 연 이창수 선생께서는 소개의 글에서 우리 서예가 쓰는 글씨에서 보는 글씨, 보이는 글씨로 변해 간다면서 원 작품으로는 ‘보이는 글씨’를 배어나온 흔적으로는 ‘그 속에 담긴 뜻’을 함께 표현하려 했다고 작품의 의도를 밝히고 있다.


새로운 시도도 인상적이었지만 사실 오늘 서예전을 찾은 것은 그것보다 틀린 글씨를 그대로 남겨둔 모습이 파격적이면서도 통쾌하게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내가 성경 쓰기를 시작한 초기에는 글자가 틀릴 때마다 처음부터 다시 썼지만 그것이 쉬운 일도 아니고 굳이 그래야 할 이유도 없을 듯싶어 두 줄을 긋고 쓰기를 계속했다. 그랬으니 그 마음이 이심전심 통한 것이었을 테고.


그런데 마음먹은 붓글씨 쓰기는 언제쯤이나 시작할 수 있으려는지, 시작할 수 있기는 하려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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