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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욱 Feb 02. 2019

술을 술이라고 부르는 진짜 이유는?

그토록 자주 마시는 술의 어원을 찾아서

한국에서 ‘술’하면 어떤 느낌이 들까? 아마도 긍정적인 이미지보다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하지 않나 싶다. 이유는 상명하복 등 군대문화에서 기인한 회식문화에서 나온 과음과 폭음이 떠올라서가 아닌가 싶다. 이렇다 보니 애주가의 기준을, 술맛을 즐기는 사람보다는 그저 많이 마시는 사람을 떠올리기도 한다. 그런데 정말 ‘술’은 원래 어떤 뜻을 가지고 있을까? 그저 술술 들어가서 술이라고 불렀을까? 


술은 어떻게 만들어질까?

술의 어원 이전에 먼저 술이 되는 구조를 한번 보자. 실은 술이 되는 원리는 지극히 간단하다. 주스와 같은 과즙을 공기 중에 노출시키면 무조건 술이 된다. 공기 중에 가장 많은 진핵 생물이 효모인데, 이 효모가 주스 속에 들어가면 살아남기 위해 당을 먹는다. 이때 당을 먹고 부산물로 만들어 내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알코올과 탄산(CO2)이다. 알코올은 효모밖에 못 만드는 만큼, 이 당이 없으면 절대로 술이 될 수 없다. 따라서 세상의 모든 술은 효모의 먹이가 되는 주스(당과 수분이 같이 있는 상태)에서 시작을 하는 것이다. 쌀로 만드는 막걸리도 마찬가지다. 우선은 당분이 있는 쌀 주스로 만들어야 막걸리를 만들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쌀 주스를 만들 수 있을까? 가장 기본적인 것은 씹으면 된다. 타액 속의 아밀라아제가 녹말을 분해하여 당분으로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키나와나 남미에서는 옥수수 경단을 만들고, 그것을 씹어서 술을 빚었다. 하지만 이렇게 씹어서 만들기에는 위생도 위생이지만 양적으로도 한계가 있었다. 이러한 역할을 대신해 주는 것이 우리 전통에서는 누룩이며, 맥주에서는 맥아(몰트)가 나왔다.  즉 누룩은 쌀을 쌀 주스(물론 누룩에 효모도 같이 붙어 있어 알코올 발효도 함께 한다)로 만들어주며, 맥아는 보리를 보리 주스로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일본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을 보면 밥을 입으로 씹어서 빚는 장면이 나오며, 이렇게 3년간 발효 숙성된 술을 남자 주인공이 마시며 3년 전의 여자 주인공을 만나게 된다. 57초~4분 10초 >


증류주는 이렇게 발효된 술을 넣고 끓여서 만든다. 맥주를 증류하면 위스키의 원액이 되고, 와인을 증류하면 코냑(브랜디)이 된다. 그리고 막걸리나 청주를 증류하면 안동소주와 같은 전통 소주 또는 증류식 소주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증류주가 만들기 위해서는 무조건 발효주가 있어야 한다. 따라서, 술을 발효주와 증류주로 이분법 형태로 나누는 것은 맞지 않다. 세상의 모든 술은 발효주이며, 증류주는 발효주의 하위 개념으로 보는 것이 맞다. 


탄산이 올라오는 모습, 물속의 불, 수불

세상의 어떤 술도 알코올 발효를 하면 바로 탄산(CO2)이 나온다. 생맥주의 거품도, 샴페인의 기포도, 생막걸리의 탄산도 그 원초적 상황을 거슬러 찾아가면 다 발효에서 나오는 과정이다. 그래서 이렇게 발효하는 모습을 전통주 관계자들은 '술이 끓는다'라고 표현을 한다. 


 그래서 한국어 학회 회장을 역임한 천소영 교수는 이렇게 탄산(CO2)이 나오는 모습에 술의 어원은 '수불'이라고 주장했다. 수불이라는 것은  ‘물속에 불’. 탄산이 나오는 술의 모습인 것이다. 그래서 이 수불이 수불>수을> 수울> 술로 변천되었다고 언급했다. 한마디로 술의 어원은 발효라는 것이다. 


수불은 구조가 한자와 한글로 되어 있는데, 이러한 문자가 어떻게 어원이 되냐고 질문하는 경우가 있다. 실은 유사한 단어가 여러 개 있다. 바로 수박과 장마다. 수박은 물 수(水)에 순 한글인 박이 하나가 된 단어이며, 장마 역시 길장(長)에 비를 뜻하는 마가 합쳐진 단어로 수불과 같은 구조를 가지고 있다. 



유라시아 대륙을 잇는 단어. 술

술에 대한 또 하나의 어원은 문화인류학적으로 해석한 육당 최남선 선생의 이야기이다. 술의 어원을 고대 인도의 표준 문장어인 범어의 수라(Sura), 헝가리 계열의 웅가르어의 스라(Sra), 투르크족의 언어인 타타르어의 스라(Sra)에서 술이란 단어가 왔다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단어는 일본어서의 국물을 뜻하는 시루(汁)하고도 유사한 발음을 보이는데, 이 역시 같은 어원이라고 보고 있다. 즉,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발효음료의 통합 단어라는 인류학적인 해석으로 볼 수 있다. 흥미로운 것은 북방지역의 여진어로 술은 누러라고 하는데, 이 단어가 한반도의 누룩과 비슷하다는 것. 결국 뿌리는 하나였다고도 말할 수 있다.  


막걸리, 맥주, 샴페인의 탄산도 결국 효모가 만들어 낸 CO2에서 시작한다.

수작(酬酌) 문화에서 온 술, 좋은 맛에서 왔다는 술

조선 말기의 통속어원학자 정교가 쓴 동언고략 (東言考略)을 보면, 순박하고 좋은 술맛 순(醇)에서 비롯되거나 손님을 대접하는 수(酬)에서 '술'로 되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술술 넘어간다고 해서 술이라는 말도 전혀 주장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동언고략 내용 자체가 워낙 신빙성이 떨어지는 내용이 많아 언어학적 가치는 떨어진다고 학계는 보고 있다. 


술과 유사한 발음은 고려 시대의 기록부터 보여

술이라는 발음상으로만 본다면 중국 서적에서 먼저 발견할 수 있다. 1103년 고려에 왔던 송나라 손목(孫穆)이 편찬한 계림유사(鷄林類事)라는 견문록에서는 한국의 술을  ‘수’(酥 su∂)로 발음했고, 명나라의 조선어 교재였던 ‘조선관역어’ 에는 술을 수본(數本, su-pun)으로 표현하고 있다. 우리 기록으로는 중국 당(唐)나라 두보(杜甫)의 시를 한글로 번역한 시집(詩集). 두시언해(杜詩諺解)와 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등에는 ‘수을’로 기록되어 있으며, 중종 대의 한자학습서 훈몽자회(訓蒙字會) 등에서는 술로 기록되어 있다. 


서양에서도 술 관련 어원은 끓는다는 뜻

개인적으로는 술의 어원은 수불에 손을 들어주고 싶다. 이유는 서양에서도 비슷하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술을 빚는 효모는 영어로 이스트(Yeast). 이것의 어원은 라틴어로 기스트(gyst)인데 이것이 '끓는다'라는 뜻이다. 발효라는 뜻의 퍼멘테이션(Fermentation) 역시 어원이 피버(Fever)로 '끓는다'라는 의미가 있다. 아무리 동양과 서양이 달라도 결국 인류는 하나라는 것. 결국 술의 어원이 수불일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지 않나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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