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명욱 Feb 09. 2019

소주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발명했다?

그리스 철학에서 소주로 이어온 문화의 교류


세상 모든 만물의 구성을 4 원소로 정의한 철학자가 한 명 있다. 그의 이름은 아리스토텔레스. 소크라테스, 플라톤에 이어 유럽의 철학과 지식의 근원인 그는 세상의 모든 만물을 물, 불, 공기, 흙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것에 온(뜨겁게), 냉(차갑게), 건(건조), 습(수분을 추가)을 가하면 세상의 물질이 모두 바뀐다고 생각했다. 현대 과학을 생각하면 어처구니없어 보이지만, 철학적으로 본다면 충분히 논리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 출처 위키피디아 재팬>


사람의 몸을 보면 60% 이상이 수분으로 되어 있으며, 공기(산소)가 있어야 살 수 있고, 불로 태우면 사라지고, 사망한 후 그대로 놔두면 흙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나무에서 열매가 떨어지는 것도 흙으로 돌아가자는 귀소본능에서 시작된 것이며, 그 열매의 원소 역시 흙이라는 땅에서 올라왔으며, 태양이라는 불, 비라는 물과 호흡을 위한 산소를 필요로 하는 등, 당시로써는 설득력이 있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이 사상은 유럽이 인본주의에서 신본주의로 바뀌면서 사라지게 된다. 흔히 이야기하는 중세 암흑기다. 예술적 작품에도 인간의 표정이 없으며, 현실적, 사실적 그림보다는 신만을 나타내는 추상적인 예술작품만 있었다. 세상은 신이 만들었으니, 만물의 본질을 나누는 것도 신본주의와 맞지 않았다. 덕분에 이 4 원소 사상은 유럽이 아닌 서남아시아에서 이어져, 연금술로 발전하게 된다. 물, 불, 공기, 흙의 양을 조절하고, 온, 냉, 건, 습을 가하면 세상의 모든 것을 만들 수 있다는 사상 아래 금을 만들려고 했다. 물을 적게 넣고, 열을 가해보며, 진공으로도 만들어보며 다양한 실험을 하게 된다. 결국 금은 못 만들지만, 물질이 바뀐다는 바뀔 화(化)란 단어를 넣은 화학(化學)이란 개념을 잡아주었고, 현대 과학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프랑스 코냑 제조사 하디(Hardy)가 디자인한 4원 소설의 브랜디. 물, 불, 공기, 흙은 연상시키는 디자인이다.


술에 적용된 연금술

술에도 역시 똑같은 방법이 시도되었다. 와인이나 맥주, 막걸리와 같은 곡물 발효주에 열을 가해본 것이다. 막상 열을 가해보니 물보다 알코올이 먼저 기화되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물은 100도에서 끓지만, 알코올(에탄올)은 78도에서 끓는 것이다. 먼저 기화된 알코올은 상승하게 되지만, 이내 찬 성질을 만나면 다시 액체로 바뀐다. 이것이 바로 술의 증류. 영어로는 스피릿, 발효주의 영혼(알코올)만 뽑아냈다는 뜻이다.


서양에서는 십자군 전쟁을 전후로 이 연금술을 받아들여 위스키, 코냑, 보드카 등의 증류주가 발달할 수 있었으며, 동양에서는 몽골이 이슬람까지 정복, 연금술을 받아들이고, 고려에 소주 기술을 전래하게 된다. 결국, 소주는 연금술의 시작에서, 그것보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아리스토텔레스의 4 원소 사상이 만들었다고 말할 수 있다. 기술이 아닌 생각과 철학이 새로운 물질을 발견하게 한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그 시대에 동아시아에서도 4 원소와 역시 비슷한 부분이 있었다는 것이다. 바로 우리가 잘 아는 세상이 음과 양, 그리고, 화(火), 수(水), 목(木), 금(金), 토(土)로 이뤄졌다는 음양오행이다. 말 그대로 물, 불, 흙은 서양 사상과 같은 항목이다. 인도 철학 역시 비슷하다. 만물이 땅과 바람, 불과 물로 이루어진 지풍과 수(地風火水) 개념을 설명한다. 결국, 서양과 동양이 다르지 않았고, 사람이 생각하는 가장 중요한 가치는 같다고 생각한 것이다.


 증류의 어원은 이슬이?
전통주에서 주종을 구분할 때 자주 쓰는 단어가 있다. 바로 고(膏), 로(露), 춘(春), 주(酒). 고는 기름 고자로 다양한 약재를 넣고 푹 고아, 약재의 기름을 담고 내린 술을 의미하며 대표적으로는 정읍의 죽력고(竹瀝膏)가 있다.로(露)는 증류할 때 술이 떨어지는 모습이 이슬과 같다고 하여 일반적으로 소주에 많이 쓰이는데, 전통주에는 감홍로(甘紅露)가 있으며, 이 이름을 빗댄 대표적인 술이 진로(眞露)다. 춘(春)은 좋은 발효주를 뜻하는데, 문경의 호산춘, 약산춘, 그리고 대중적인 술로는 산사춘 등이 있다. 그런데 서양에서도 증류할 때 떨어지는 모습을 의태화시킨 단어가 있다. 바로 증류란 단어인 디스틸레이션(distillation)이다. 여기서 디스틸(distil)은 증류한다는 뜻도 있지만, 방울, 이슬과 같다는 뜻도 있다. 우리가 증류주 및 소주에 이슬을 붙인 것과 똑같은 이치다. 결국 그들에게도 소주는 이슬과 같았던 것이다.


<스코틀랜드 글렌피딕의 증류기 모습. 아래에는 보리 발효주가 끓고 있으며 상단의 긴 관을 통해 기화된 알코올이 흘러간다. 출처 위키피디아 재팬>
 
 

브랜디의 어원은 소주(燒酒)
 우리가 자주 마시는 소주(燒酒)의 어원은 간단하다. 바로 구술 소(燒), 술 주(酒)이다. 증류를 하기 위해서는 무조건 불로 끓여야 했다. 그래서 이러한 증류주는 소주라고 불렀다.
 
유사한 어원으로는 브랜디가 있다. 대표적인 과실 증류주인 브랜디는 프랑스에서 영국으로 수출하는 술의 양을 줄이기 위해, 또는 양으로 매기는 세금을 적게 내기 위해 만들어지곤 했다. 발효주에서 알코올만 빼내는 만큼 지금 말로 하면 압축과 같은 개념이다. 흥미로운 것이 이 브랜디의 어원이 네덜란드어인 브란데 베인(brandewijn)이라는 것이다. 바로 영어 식으로 표현하면 번 와인(Burn Wine)이 된다. 그것이 세월을 거듭하여 브랜디 와인, 이후 현대에 들어서는 브랜디란 말만 쓰고 있다. 결국, 브랜디를 한국말로 직역하면 소주가 된다.
 

소주와 브랜디의 어원은 결국 같다. 사진 안동소주와 프랑스 브랜디 코냑

참고로 영국과 프랑스는 역사적으로 앙숙이라고 하지만 술에서는 다르다. 영국 위스키의 1인당 소비량이 가장 높은 곳이 프랑스이며, 1인당 프랑스의 브랜디를 가장 많이 소비하는 곳 역시 영국, 또는 그 식민지였던 미국이라고 한다. 역사와 정치에는 이념과 국가가 있지만, 문화에는 없다는 것을 그대로 보여준다. 참고로 우리나라 막걸리가 가장 잘 팔리는 곳이 일본이다. 일본의 사케 역시 한국이 가장 많이 수입을 하는 곳 중 하나다.  

 
 위스키의 어원은 약주?

서양의 대표 고급술인 위스키의 어원은 우스개바하(UISGE BEATHA)로 생명의 물이란 뜻이다. 십자군 원정에서 서남아시아의 연금술에서 파생된 증류 기술을 배워온 당시 스페인의 철학자가 '신이 머무는 생명의 물'이란 이름으로 처음 불렀다고 한다. 신비로운 이름이 있는 만큼 다들 마셔보고 싶은 음료였는데, 때마침 14세기에 유럽에서 흑사병이 대유행하면서 위스키가 예방용, 또는 치료용으로도 쓰였다. 즉 약술로 쓰인 것. 흑사병은 전 유럽의 1/3이 사망했다고 할 만큼 엄청난 재앙이었다. 우연히 위스키를 마시고 살아난 사람, 또는 걸리지 않은 사람은 위스키를 신뢰하게 되고, 결국 이 시장이 커지면서 위스키가 더욱 널리 퍼지게 된다. 우리 입장에서는 위스키는 약주였던 것이다.
 

 서양의 주모 에일 와이프(Ale Wife)
 늘 사극에 등장하는 곳이 주막이다. 주막은 사람이 만나는 곳이며, 거래가 이루어지고, 화폐 및 서신교환, 그리고 물물교환에 환전까지 이뤄진 곳이다. 그렇다 보니 정보 취득에 중요한 대목에 등장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에 사람이 꼭 한 명 등장하는데 바로 주모다. 사람들을 소개, 접객을 하며, 술을 빚었던 중요한 존재다. 아이러니하게도 서양에서도 술을 빚는 여인이 있었다. 영국식 맥주를 뜻하는 단어 에일(Ale)에 여성을 뜻하는 단어 와이프(Wife)가 붙어서 Alewife. 맥주를 만들어서 판매하는 사람. 우리말로 주모다. 흥미로운 곳은 이 에일을 만들어 파는 곳은 에일 하우스(Ale House). 술을 빚어 판매했고, 음식이 있었으며 숙박도 함께 했다. 우리말로 주막이다. 이 에일 와이프는 술 빚기가 노동집약적인 산업으로 바뀌면서 상당히 사라지게 되고, 에일 하우스 역시 전문적인 숙박업체인 호텔이나 인(Inn)등이 생기면서 역사의 뒷길로 가게 된다.  
 
 아리스토텔레스에서 소주까지 이어지는 문화의 교류

저 멀리 그리스의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이 돌고 돌아 소주까지 이어졌다. 그 사이에 중세 유럽의 암흑기가 있었으며, 이슬람의 연금술이 있었고, 십자군 전쟁이 있었으며, 몽골의 세계 정복, 그리고 고려의 침공으로도 이어졌다. 세조 실록에는 대마도에 전래해 준 조선의 보리소주 이야기가 나온다. 결국 우리도 받은 것을 이웃 나라에 전래해 준 것이다. 이렇게 격동의 역사 속에서 문화는 하나씩 변모해 나간다. 알고 보면 소주라는 문화는 우리만의 것이 아니다. 가깝게는 일본, 몽골, 멀리는 이슬람, 나아가 그리스 철학까지 연결된다는 의미다. 결국 문화는 소유하는 것이 아닌 공유하는 것. 술이 내게 알려준 가장 큰 가치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이전 01화 술을 술이라고 부르는 진짜 이유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