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명욱 Feb 16. 2019

제주도가 한국 소주의 기원인 이유?

소주가 한국에 전래된 경유를 찾아

한국 소주의 기원은 제주도?


학창시절 국사시험에 자주 등장했던 실학 서적이 하나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백과사전이었던 지봉유설(芝峯類說)이다. 광해군이 집권하던 조선 중기, 이수광이 청나라 등을 여행하면서 우주와 자연, 지리에 대한 과학적 접근을 하고 영국, 이탈리아 등 서양의 문물을 소개한 20여 권의 이 책은 중국 중심의 세계관을 탈피하며, 정약용 등 후대의 실학사상에 큰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고서적 중 하나다. 재미있는 것이 이 지봉유설에는 우리나라 소주의 유래가 나와 있는데, 몽골에서 들어왔다는 것이다. 몽골의 직접적인 교류가 있었던 시기는 고려시대. 바로 몽골 간섭기인 것이다. 


몽골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제주도

그렇다면 어느 지역이 당시 몽골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았을까? 바로 몽골이 일본에 원정을 떠나기 위해 만든 병참기지가 있던 곳, 바로 안동, 개성, 합포(마산), 그리고 제주도다. 동시에 고려에 행정부를 설치하기도 했는데, 평양의 동녕총관부, 함경남도 영흥의 쌍성총관부, 그리고 제주에 탐라총관부, 이 세 곳에 들어서게 된다.


이 중 병참기지와 총관부 두 곳 다 해당되는 곳은 제주도이다. 몽골의 탐라총관부는 향후 그 이름을 달리 하지만, 몽골에 조공으로 바칠 말을 직접 목호(牧胡)라는 몽골인이 와서 사육을 했고, 제주도에 토착화되면서 그 수는 1,700명에 달했다고 역사는 전한다. 공민왕의 반원정책이 시행되고, 최영이 이들의 난을 평정하기 전인 약 100년간 실질적인 몽골의 강력한 영향 아래 있었던 것이 제주도이다. 즉, 한반도 중에서 몽골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곳은 제주도다. 따라서, 한반도의 소주 시작은 제주도부터라는 유추가 가능해진다. 흥미롭게도 제주도에는 몽골어가 가장 많이 남아있다. 

<제주도의 말. 원나라는 전쟁 때 쓸 말을 제주도에서 키웠고, 고려에서 조공으로 바치라고 한다. 원이 약해지자 명도 말을 요구하는데, 이때 거부해서 일어난 난이 목호의 난이다>

 제주도의 식혜 겸 막걸리, 쉰다리의 어원은 슌타리?
 제주도의 토속 식혜 겸 막걸리라 불리는 낮은 도수의 쉰다리란 술이 있다. 식혜 겸 막걸리란 것이 무척 아이러니하게 들릴지 몰라도 둘은 지극히 가까운 존재다. 막걸리가 되기 바로 전 단계가 식혜와 같은 쌀즙이기 때문이다. 즉, 식혜 겸 막걸리라는 뜻은 아직 완벽히 막걸리가 덜 된 식혜와 같다고 보면 된다. 한마디로 감주스타일이다. 

식혜를 막걸리로 안 만들고 식혜로만 머물게 하는 것은 간단하다. 설정 온도를 50도 이상으로 높이면 막걸리가 되지 않는다. 바로 효모가 살지 못하는 것이다. 식혜를 만들 때 우리가 뜨거운 밥통으로 만드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쉰다리 만드는 모습>

제주도의 쉰다리란 술은 쌀밥이나 보리밥에 물과 함께 잘게 부순 누룩을 넣고 버무리는 술이다. 여름에는 2, 3일, 겨울에는 5, 6일이 지나면 그 특유의 맛이 나오는데, 최근에는 이것의 어원이 몽골어라는 발표가 나왔다. 그 이름은 슌타리(Shuntari). 몽골어로는 우유, 요구르트를 뜻하는 의미다. 살짝 쉰 밥도 이렇게 발효시켜 먹기에 또는 순해서 쉰다리만은 아니었던 것이다.


제주도의 물항아리 물허벅은 몽골어 허버.
 제주도의 상징 중 하나인 물허벅은 아낙네들이 물을 운반할 때 쓰던 작은 항아리와 같은 도구이다. 부리가 좁고 배가 많이 나왔으며, 굽은 평평하여 운반하는 사람이 등에 지고 다녀도 흔들리지 않아 물이 잘 새지 않는다. 역시 이 물허벅도 최근에 그 유래가 발표되었는데, 그 어원이 바로 '허버'. 몽골어로 바가지란 뜻이다. 여기에 물이란 단어가 붙어서 물허벅이란 말이 나오게 되었다. 최근에는 이 허벅이란 이름을 활용한 술이 나왔다. 한라산 소주로 유명한 제주도 한라소주에서 ‘허벅술’이란 증류식 소주를 출시한 것이다.


<물허벅. 저렇게 뚱뚱한 항아리를 짊어지고 다녔다>

제주도의 독특한 술 오메기술, 고소리술

 제주도의 대표적인 토속 술이라면 역시 오메기술과 고소리술을 들 수 있다. 둘 다 제주 무형문화재로 지정 되어 있는데, 오메기란 좁쌀의 제주도 방언으로 오메기떡은 좁쌀 떡, 오메기술은 오메기떡으로 빚은 술이라고 볼 수 있다.

소주 증류기(소주고리)를 제주도 방언으로 고소리라고 한다. 방법은 간단하다. 오메기술을 증류하면 된다. 오메기술은 발효주인만큼 알코올 도수가 10도~13도. 고소리술은 증류를 통한 알코올을 뽑는 만큼 40도가 넘는 고도주가 주류를 이룬다.


 애월에는 대몽항쟁의 역사가 그대로
 예전에는 성산 일출봉과 가까운 성읍민속마을에서 오메기술을, 올레길에서는 쉰다리를 만나보곤 했지만, 요즘에는 그리 쉽게 찾아지지 않는다. 그럴 때는 애월읍에 있는 제주샘주를 방문하면, 오메기떡부터 쉰다리, 오메기술, 고소리 술 등 제주만의 술과 떡, 그리고 고소리술을 이용한 칵테일까지 체험해 볼 수 있다.


애월읍은 주변에는 곽지 해수욕장, 더럭분교가 있으며 가수 이효리 씨가 사는 마을로도 잘 알려졌지만, 아이너리하게도 대몽항쟁의 상징인 삼별초가 최후까지 항전한 곳이다. 그리고 100년의 세월을 지나 애월읍에서 최영 장군이 최후의 몽골 세력인 목호의 난을 제압함으로써, 제주는 완벽하게 고려에 귀속하게 한 역사의 현장이다. 애월읍 항파두리 항몽 유적지에는 당시 삼별초를 지휘했던 김통정 장군과 몽골세력을 몰아낸 최영 장군의 석상이 서 있는 등 대몽항쟁의 역사에 관한 다양한 유적과 자료를 몸으로 느껴볼 수 있다.

<오메기술과 고소리술. 출처 제주샘주>


한국 소주 기원을 찾아보는 여행, 그 시작은 제주도에서

가슴 저미는 아픈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지만, 우리 역사란 것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이러한 전쟁과 침략 속에서도 문화는 생겨나게 마련이다. 제주도의 몽골 문화로 쉰다리나 고소리술이 생겼다면, 삼별초의 제주도 이전 본거지였던 진도에는 진도홍주가 생겨났다. 병참기지였던 안동에는 주권을 회복한 후 안동소주가 사대부들 사이에 유행했으며, 동녕 총관부가 있던 평양에는 문배술, 감홍로 등 유명 전통 소주가 생겨났고, 이러한 모든 전통주를 무형문화재 분들이나 장인들이 현재도 이어가고 있다.


제주 애월의 항파두리항목유적지의 항몽순의비. 삼별초가 끝까지 저항한 곳으로 당시 항쟁했던 성이 남아있다. 


침략 속에서 전래된 문화인 것은 확실하나, 우리 것으로 만든 것이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소주의 기원을 찾아 전국을 여행해 보는 것을 어떨까? 단순히 술을 찾아 마시고 취하는 문화가 아닌 나라와 민족을 지키려고 한 우리의 역사와 그것을 통한 문화의 변모를 술이 가진 역사를 통해 몸소 느껴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이전 02화 소주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발명했다?
brunch book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젊은 베르테르의 술품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