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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ASYSAILING Oct 02. 2024

항구의 천사들

세일러들은 서로 돕는다


그동안 미국 국경을 넘지 못해서 항해가 엎어질까 봐 걱정이 컸다. 그런데 그 국경에서 겨우 100미터를 더 가고 항해가 엎어질 위기에 처했다. 우리는 깊은 상심에 빠졌다. 마치 포트 앤젤레스 사람처럼 일상을 채우고 평정을 유지하며 이렇게 오랜 시간 고군분투했는데 겨우 100미터 전진하고 끝이라니. 


"지금 우리 배 엔진은 몇 마력 정도 되는데요?"


"이 엔진은 30마력정도 될걸요."


상심한 우리는 덩어리 삼겹살을 구워 과식을 하고 과음을 한 뒤 낮잠으로 현실 도피를 시도했다. 늦은 오후, 숙취와 함께 일어나 해변 산책로를 걷다 보니 뭐가 앞뒤가 안 맞는 것 같았다. 호라이즌스 호는 배수량이 11톤이 넘는 배인데 30마력 엔진이라니, 이런 경우는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이 정도 세일링 요트들은 40마력 엔진으로도 충분하지 않다. 배에 돌아와 확인해 보니 우리 엔진은 48마력이었다. 300,000시간이라던 엔진 시간도 영을 두 개 뺀 3,000시간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제야 25마력 엔진이 30,000 달러 정도라는 가격도 이상했다.


게다가, 우리는 이 문제가 정말 부란자 문제인지 확인해 달라고 일찌감치 요청했었다. 부란자 제거 전에 인젝션 이상을 점검하고 압력 테스트도 해봐야 하는 것이 아닌지, 공식 기술 고문 태민 씨의 사전 자문을 받아, 물어보기도 했다. 그때도 그들은 부란자 문제라고 단언하며, 압력 테스트를 정 원한다면 장비를 가지고 다시 와야 한다고 했다. 가장 빠른 날짜가 다음 주였고, 출항이 급했던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순한 양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제 크리스가 보내온 거한 견적서에서 얼마나 깎을 것인지를 생각해 보고, 엔진 교체를 할 때까지 호라이즌스 호를 어디에 둘 수 있을지 등을 알아봐야 했다. 아쉬운 마음에 비행기라도 타고 멕시코에 갔다 올까, 아니면 바로 한국에 갔다가 엔진이 준비되면 돌아올까 등의 문제도 논의를 시작했다.


그 사이 뭔가 새로운 정보를 얻었는지 크리스에게서 이메일이 왔다. 어쩌면 엔진을 고칠 수 있을지도 모른다며, 월요일에 릭과 다른 엔지니어 하나를 보내겠다고 했다. 크리스는 엔진룸 덮개를 닫지 않은 채 공중에 매달린 계단을 오르내리다 경첩을 부러뜨리기도 했다. 월요일 와서 그것도 고쳐 놓겠다고 했다.


그러나 이미 우리의 신뢰는 보름날 썰물처럼 싹 빠져나간 뒤. 월요일 와서 또 소득 없이 제3 제4의 시도를 해 보면서 시급은 150달러씩 계속 나갈 위험이 있으니 어떻게 해야 할지 빠른 결정이 필요했다.



살아있는 정보: 바 크로싱


마리나 게스트 선착장에 2주가 넘게 머물며 매일 엔진 시동에 실패하는 캐나다 국기 단 세일링 요트는 이제 그 동네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같은 게스트 선착장에 임시로 머물던 배들과 친구가 되어 연락처를 주고받고, 포트 앤젤레스 마리나에 상주하는 배들과도 이웃처럼 지내게 되었다. 


이 동네는 서로 모르는 사이인데도 서로에게 관심이 많은 듯했다. 콕핏에 앉아 있으면 배가 멋지다며  말을 걸어오는 사람이 심심찮게 있었다. 뱃머리에서 항해등을 교체하고 있노라면 중 등뒤에서 "이거 혹시 필요하니?"라는 목소리가 들리고, 고개를 돌리면 초면의 이웃이 전류 테스터를 들고 서 있기도 했다. 우리가 다시 출항할 수 있을지는 기약이 없었지만, 이 친구들로부터 많은 것을 묻고 조언을 얻었다. 포트 앤젤레스는 캐나다에서 오는 배들이 국경 심사를 위해 꼭 거치는 곳인 만큼, 우리와 목적지가 비슷한 배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다들 후앙 데 푸카 해협을 빠져나가자마자, 하버 호핑을 하는 대신 오프쇼어로 나갈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배를 거의 꽉 채우고 여러 명이 세일링을 하는 이탈리아에서 온 나는, 대부분의 배가 두 명이서 항해를 한다는 데에 놀랐다. 캘리포니아까지 오프쇼어로 가겠다는 사람들 대부분이 오프쇼어 경험이 전무한 초보라는 사실에도 또 한 번 놀랐다. 이탈리아에서는 둘 다 능숙한 세일러들이나 하는 일이다.


포트 앤젤레스에서 출항한 배가 후앙 데 푸카 해협의 서쪽 끝까지 항해한 뒤, 뱃머리를 왼쪽으로 돌리면 드디어 태평양에 진입하게 되는데 이를 '큰 좌회전The Big Left Turn'이라고 한다. '열린 바다'로 처음 진입하는 요트들이 이때 태평양 파도의 스케일을 처음 영접하게 되는데 이에 더해, 이때부터 입항할 때마다 바 크로싱bar-crossing이라는 산도 넘어야만 한다.


바다로 흘러나가는 강물과 태평양에서 밀려오는 바닷물이, 퇴적물로 인해 수심이 낮아진 해저 지형에서 충돌해 만들어진다는 위험한 해양 환경. 바 크로싱에 대해 알아볼수록 더 궁금하고 더 두려웠다. 정도가 심할 때는 항구를 아예 폐쇄해 버려 배가 입항이나 출항을 할 수도 없다고 했다. 악천후와 싸우며 간신히 도착한 항구 입구가 닫혀 있는 상황은 상상만으로도 깜깜했다. 그래서 항구에 도착하는 시간을 잘 맞추어 바를 안전하게 건너는 것이 중요하지만 이게 만만한 일이 아니다. 대부분의 서부 해안 항구들이 강어귀에 위치해 있고, 항구 외에는 딱히 닻 내리고 타이밍을 기다릴 만한 곳도 거의 없는 데다가, 항구와 항구 사이 거리도 상당히 멀기 때문이다. 초보들에게 오프쇼어 루트가 인기 있는 이유 중 하나가 아마 바 크로싱일 것이다.


태평양에 나가기 전 마지막 항구가 후앙 데 푸카 서쪽 끝의 니아 베이Neah Bay이다. 니아 베이는 방파제 안쪽에 넓고 안전한 닻 내림 공간이 있어, 배들이 여기서 좋은 날씨가 올 때까지 기다린다. 포트 앤젤레스로부터는 52해리 떨어진 곳이다. 만약 우리가 엔진 문제를 해결하고 출항을 하게 된다면, 우리의 첫 번째 목적지가 될 곳이었다.


밴쿠버행 비행기를 타기 직전에 항해했던 코르시카에서는 가다가 '아무 데나' 닻을 내릴 수 있을 만큼 안전한 만이 많은 지형이다. 반면, 이곳에는 궁서체로 '항구'라고 쓰여 있는 곳에만 갈 수 있는 느낌이었다. 마치 미리 정해진 정류장이 있는 버스로 여행하는 것 같았다. 니아 베이 다음 '정류장'은 라 푸시La Push 라는 곳인데, 아주 매력적인 아메리카 원주민 보호구역이라지만 입항이 어려운 곳이라는 데에 이견이 없는 것 같았다. 


바 크로싱이 필요한 항구에 들어갈 때는, 작은 배들도 양쪽으로 둑을 쌓거나 부표로 경계를 표시해 놓은 '길'을 따라 들어가야 한다. 그런데 라 푸시는 그 길이 너무 좁고, 낮고, 해변과 가까워서 웬만하면 들어가지 않는 게 좋다고 했다. 그러나 라 푸시를 건너뛰자니 그다음 '정류장' 그레이스 하버까지 거리가 100해리를 넘고, 밤 항해에서 게통발과 그물 등에 걸릴 위험을 피해 오프쇼어로 나가기까지 한다면 그 길이는 더더욱 늘어난다. 그 와중에 나갈 항구와 들어갈 항구의 바 크로싱 타이밍도 맞춰야 하다니, 보통 복잡한 일이 아닌 듯했다.


하와이에서 막 도착했다는 배 친구들은 근심에 빠진 우리에게 중요한 정보를 주었다. 바 크로싱은 분명 쉬운 일이 아니지만 코스트 가드Coast Guard, 미국 해경가 도움을 줄 수 있다고 했다. 항상 출항 전 도착 항구의 바 상태를 전화나 VHF로 코스트 가드에게 문의하는 게 좋고, 필요하다면 에스코트나 견인 요청도 할 수 있다고 했다.


2,000해리가 훌쩍 넘는 태평양 바다를 밤낮으로 달리며 치즈 마카로니만 주구장창 먹었다는 이들은, 이제 이 동네 식당을 죄다 뽀개러 갈 거라고 했다.


"아스토리아 근처에서 필요한 게 있으면 연락해." 라며 명함도 주었다. 콜롬비아 강 초입의 항구 아스토리아Astoria 는 그레이스 하버 다음 '정류장'이다.



살아있는 정보: 게통발


같은 아스토리아 출신 또 다른 세일러의 게통발 일화도 재미있었다. 이 지역 항해에 또 하나의 복병이 게통발인데, 주민들의 생업인 경우가 많아 통발들이 심심찮게 설치돼 있다. 사람들이 오프쇼어를 선호하는 또 다른 이유이기도 하다.


이 친구는 야간 항해 중 통발이 프로펠러에 걸렸는데, 운 나쁘게도 파도가 높은 날이었다. 우선 통발을 잘라내야 하는데 파도가 너무 높아 처음엔 방법이 없어 보였다고 한다. 결국 긴 줄 하나에 무게추를 달고 칼을 묶은 뒤, 선체 밑으로 통과시켜 양쪽에서 박 타듯 하며 잘라내는 데에는 성공을 했다. 하지만 프로펠러에 엉킨 통발 줄 때문에 엔진을 사용할 수가 없는 상태.


그래서 코스트 가드에 VHF로 상황을 알리고 견인을 요청했단다. 그때 위치가 라 푸시와 그레이스 하버 중간 지점이라 어느 항구로 견인되기를 원하는지 선택을 해야 했다. 모항 아스토리아에서 더 가까운 그레이스 하버로 답을 했더니 코스트 가드가,


"정말 그레이스 하버로 가길 원하시는 게 맞습니까?"라고 재차 확인을 요청하는데 뭔가 느낌이 이상했다고 한다.


"맞는데요."


코스트 가드는 엔진 동력에 문제가 생긴 배를 항구까지 무료로 견인해 준다. 하지만, 입항할 항구에 사설 견인 업체가 있는 경우, 코스트 가드가 견인을 할 수 없는 법이 있다고 한다. VHF 16번 채널에서 오가는 대화를 이 견인 업체 역시 동시에 듣고 있는 상태라, 코스트 가드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이나 권유를 못하고 "그레이스 하버가 확실한 겁니까"라는 확인만 재차 했던 것이다.


견인되어 항구에 들어가는 순간은 기상 악화로 바가 닫히기 직전이었다고 한다. 견인업체 직원이 '바를 건너기 만만한 상태가 아니니 주의해서 조타하라'라고 했고, 긴장 속에 앞 배를 따라 조타하며 바를 건너 항구 안까지 무사히 들어오자마자 등 뒤로 닫혔다고 한다. 그리고 800달러의 청구서가 날아왔다. 코스트 가드의 '확실합니까?'의 뉘앙스를 파악 못한 부주의가 가슴에 사무치게 하는 청구서였다고 한다.


우리는 오프쇼어로 나가지 않고 야간 항해도 가능하면 피한다는 계획을 가지고 출항했으나, 우리처럼 하버 호핑을 한다는 배는 아직 만난 적이 없었다. 사람들을 만나 얘기를 나눌수록 꼭 하버 호핑이 쉬운 옵션도 아닌 것 같았다. 그렇다고 선뜻 오프쇼어 항해를 마음먹기도 쉽지 않았다.


믿고 먼바다로 나가기엔 아직 배를 완전히 이해하지도 못했거니와 오프쇼어에서 기상 정보를 받을 통신 장비도 없었다. 선주나 나나 하늘을 육안으로 관찰해 기상 변화를 감지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하고 있지 않았다. 악천후를 만나면 통신이 되는 해안까지 다시 돌아오는 데에만 하루 종일이 걸 것이다. 대양 항해 경험이 없는 어리버리 둘이 태평양 스케일의 악천후를 견딜 수 있을 것인가... 회의적이었다.


그리고 실은, 연해 항해용 통신 장비도 충분하다고 할 수 없는 상태였다. 호라이즌스 호에 설치된 VHF 라디오는 고장으로 제조사에 반송한 뒤라, 배에는 핸드 무전기밖에 없었다. 전용 안테나에서 신호를 받는 설치형 라디오와 달리, 핸드 무전기는 수신 영역이 좁아, 먼 거리에서는 통신이 잘 되지 않는다. 교체품이 9월 이후에나 배송이 가능하다는 말에 포기하고 출항했는데, 최근 라디오가 캐나다로 잘못 배송이 되었다는 황당한 통보를 받았다.


그 바다에서 코스트 가드의 존재감이 이렇게 크다면 그들과의 통신을 보장해 줄 VHF 라디오의 성능이 중요할 텐데 좀 불안했다. 이래저래 우리는 아직 준비가 덜 된 게 아닐까-라는 생각으로 출항이 어려워진 상황을 자위해 보았다.



또 다른 가능성


선착장에서 케케케케켕 마른 엔진 소리를 낼 때마다 주위 마리나 친구들이 안타까운 표정으로 한 마디씩 건네곤 했다.


"자동차라면 뒤에서 힘껏 밀어주겠는데 배는 소용이 없겠네!"


건너편에 있는 배 주인 할아버지였다. 종종 마리나에 혼자 와 배 이곳저곳을 손보는 모습을 봤는데, 배가 호라이즌스호와 같은 모델이라 그렇잖아도 궁금하던 차였다.


"우리랑 같은 타야나 37군요!"


그렇게 시작된 대화는 긴 수다로 이어졌다. 타야나 37피트의 탄생 비화와 문제점, 태평양에서 고래와 부딪힐 뻔한 모험담까지. 그러다 귀가 쫑긋해지는 이야기를 들었다. 할아버지 역시 멕시코까지 두 번이나 다녀왔는데 부인이 뱃멀미가 심해서 오프쇼어로 나가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해봤다는 사람을 만나본 적이 없어 의심의 안개에 싸여 있던 하버 호핑을 한 사람을 드디어 만나다니! 이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할아버지 이름이 웨이드라고 했다.


그다음 날, 누군가 배 밖에서 부르는 소리가 나 나가 보니 웨이드 할아버지였다. 마지막 멕시코 하버 호핑 항해의 로그북을 찾아 복사한 것을 손에 들고 있었다. 명함 하나도 건네주었다. 디젤 엔진 수리 회사가 한 개뿐인 포트 앤젤레스와 달리 근처의 포트 타운센드Port Townsend 에는 옵션이 더 많으니, 그쪽에서 고칠 경우 배를 옮겨줄 만한 사람의 명함이라고 했다.


몇 시간 뒤 또다시 밖에서 부르는 소리가 났다. 또 웨이드 할아버지였다. 이번엔 우리와 같은 모델의 엔진을 리퍼해서 창고에 두고 있다는 사람을 안다는 사람과 만났다고 했다. 마리나에서 만나는 친구마다 우리 배의 엔진 문제에 대해 얘기를 했던 것 같다. 잠깐 얘기를 나눈 남의 배 문제일 뿐인데 이렇게 깊은 관심을 가지고 걱정을 해 주다니 어떻게 감사를 표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웨이드 할아버지가 말한, 리퍼한 엔진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아는 사람의 배에 연락처를 남기고 돌아왔다. 몇 시간 뒤, 누가 배에 찾아왔다. 폴이라는 이름의 남자인데 아름다운 긴 머리가 인상적이었다. 폴이 안다는 사람은 디젤 엔진 정비사인데, 가지고 있던 엔진을 집 차고에서 수리해 그냥 묵혀두고 있다고 했다. 이제 다 접고 인생을 즐기려고 은퇴한 사람이므로 엔진 수리는 안 하겠지만, 차고에 있는 엔진을 좋은 가격에 줄 수는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 폴의 의견이었다. 뭔가 익숙하다 싶더니만, 이 은퇴한 정비사 이름이 '짐'이라고 했다. 애초에 라이언이 소개해 주고 싶어 했던 그 인물. 짐은 은퇴하고 인생을 즐기는 대신 차고에서 엔진 수리를 하고 있었던 것인가.


어쨌든 선체 형태 때문에 작은 엔진으로 다운그레이드할 필요도 없이,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과 동일한 모델이라면 간단하게 엔진 교체가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 생겼다. 일단 월요일 릭 등이 오기로 약속이 되어 있으니, 그 이후에 연락을 하기로 했다.


이렇게 엎어질 듯 엎어질 듯 아슬아슬한 이 항해가 이어질 수도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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