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 위에 올라가 있는 배에서 생활하는 것이 처음은 아니었다. 이탈리아에서 배 수리하는 친구를 도와 일할 때 며칠씩 친구 배를 숙소로 쓰곤 했다. 그 친구는 조선소 사장과 친구였기 때문에 배수에 문제가 없는 명당에 배를 댈 수 있었다. 그래서 부엌에서 요리를 할 수 있었고, 변기 배출구에 연결해 놓은 호스 덕에 급한 화장실 사용도 어느 정도 가능했다(이탈리아에서 소형 선박은 오수탱크holding tank를 쓰지 않는다).
이번엔 배 올리기 전에 물탱크를 완전히 비워놨기에 배에서 물을 못 쓴다는 것, 잠결에 사다리 내려가다 발 헛디딜 위험에 대비해 화장실에 비상 요강을 놓은 것 정도가 다른 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 우리는 아직까지 호라이즌스 호 오수탱크의 정확한 사용법을 터득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올해는 동생의 결혼식 때문에 9월 초까지는 한국에 가야 하는 일정이 있었다. 작년처럼 다음 해 여름까지 발이 묶이지 않으려면, 한국 가기 전에 따뜻한 남캘리포니아까지는 도착해서 배를 올려놓는 것이 중요했다. 남캘리포니아부터는 겨울이 오더라도 이어서 항해를 계속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세일러들 경험담을 보니 샌디에고San Diego나 멕시코 엔세나다Ensenada에서 태풍 시즌이 끝나는 11월까지 기다렸다가 출항하는 모양이었다. 우리는 적어도 8월 말에 배를 올려놓고, 한국에 갔다가, 11월 이후에 돌아와 항해를 계속해야 한다. 서둘러야 했다.
다시, 준비
뒷짐 지고 배 주위를 한 바퀴 돌아보았다. 선체에 따개비가 거의 붙지 않았다. 보조 방향타에는 나사 하나가 빠져 있었다. 프로펠러와 방향타의 금속이 부식되는 것을 막아주는 아연zinc은 아직 멀쩡했지만, 기왕 배 올렸을 때 교체하는 게 좋을 터였다. 선체가 밖에 있을 때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정비를 마친 뒤엔, 올려놓은 배에서도 할 수 있는 일들은 최대한 해 놓아서 출항까지 걸리는 시간을 절약해야 했다.
우선, 우물에서 두레박 내리듯 필요 없는 물건들을 동아줄로 묶어 배 밑으로 내린 뒤 과감하게 버렸다. 버리면서 가장 속 시원한 아이템은 뱃머리 선실을 가득 채우고 있던 각종 어구들. 이건 새우용 통발, 저건 게 잡이 통발, 그건 어부한테 직접 산 전문가용 통발... 선주는 내내 아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한때 이 많은 어구를 사 모으며 항해의 꿈에 젖었을 선주를 생각하면 약간 안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로망과 현실의 차이를 절감한 바에야 쓸모없는 최첨단 어구보다는 뱃머리 선실의 공간이 우리에겐 요긴했다.
실내 표면의 곰팡이까지 닦아내고 나니, 이제 끝없는 빨래의 시간이 왔다. 배에서 생활하며 하는 온갖 집안일(배안일?) 중에서도 빨래는 유난히 난도가 높다. 이유는 기다리는 시간 때문이다. 마리나에서 항상 부족한 공동 세탁기와 건조기를 제 때 비워주지 않는 건 민폐이다. 그래서 빨래가 끝나는 타이밍에는 세탁실에 있어야 한다. 게다가 이 조선소는 20분이나 걸리는 먼 거리에 있어, 차라리 빨래가 다 되기를 그 앞에서 기다리는 편이 낫기도 했다.
못해도 세 사이클은 돌려야 할 빨래더미를 이고 지고 마리나 세탁실까지 행군을 시작했다. 이미 깜깜한 밤이 되었다. 생각해 보니 작년 배 올리기 전날도 세탁실 앞 벤치에서 꾸벅꾸벅 졸며 새벽까지 빨래와 씨름을 했었다. 빨래에서 빨래로 이어지는 항해의 끝과 시작.. 이럴 줄 알고 이번엔 세탁실에 올 때 배에 남은 위스키와 간단한 안주거리를 챙겼다.
벤치에 자리 잡고 앉아 열심히 돌아가는 세탁기를 등 뒤로 한 채, 깜깜한 마리나를 바라보며 잔을 부딪쳤다. 언제 돌아올까 싶었는데, 벌써 시간이 흘러 우리가 다시 아스토리아에서 빨래를 하고 있다니.. 컬럼비아 바를 건너 입항했을 때에는 호라이즌스 호가 이렇게나 오래 여기 머물 줄 몰랐다. 빨리 아스토리아를 떠나고 싶었다. 곧 잔잔한 날들이 며칠 이어진다는데 어서 출항을 할 수 있을지, 오랫동안 잠자고 있던 엔진은 과연 시동이 걸릴지, 인적 없는 오밤중의 세탁실 앞 벤치에서 이야기꽃을 피웠다.
조선소 직원들은 능숙한 솜씨로 배를 올리더니 조선소 반대편 끝까지 크레인을 운전한 뒤 천천히 배를 내렸다. 배가 물에 뜨자, 슬링벨트를 해제하고 크레인을 철수하기 전에 시간을 달라고 요청했다. 만약 엔진 시동이 걸리지 않는다면 그대로 다시 배를 올려 원래 자리로 돌아갈 참이었다. 시동 걸리지 않는 스타트모터의 마른 소리가 아직 귓가에 맴도는 것 같았다. 케케케켕.. 케케케케케케켕...
부르르릉!
힘찬 시동 소리에 선주와 나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 마주 보았다. 얼굴엔 밝게 웃음이 번졌다. 작년의 고생 뒤, 시동 걸리는 소리는 여전히 감추기 어려운 기쁨을 불러왔다.
그 뒤엔 그동안 봉인해 두었던 해수 유입구들을 하나하나 열어 점검했다. 선체에 뚫린 구멍인 해수 유입구에서 물 새는 곳이 없는지 꼼꼼히 살펴보는 작업은 엔진 시동 체크에 이어 가장 필수적인 점검 사항이었다. 작년에 교체했던 엔진 해수 호스 연결부에서 물이 좀 새지만 다른 곳은 문제가 없었다. 슬링벨트를 해제하고 조선소 직원들에게 작별인사를 한 뒤, 강을 거슬러 올라갔다. 10개월 만에 다시 호라이즌스 호 위에 오르니 약간 얼떨떨했다.
바람을 거슬러 올라가다 사전에 점지해 놓은 지점에 닻을 내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속도를 잃는 즉시 배가 대책 없이 돌아가, 순간 당황하고 말았다. 바람이 아니라 조류에 따라 뱃머리가 돌아간다는 사실을 또 잊은 것이었다. 배가 바람 방향을 향하게 해서 세일을 설치하기 위해 닻 내리려던 것이었는데 말짱 헛수고를 했다. 작년에 배운 것들을 그나마 잊어버린 걸까- 긴장이 되었다. 제노아는 마리나에 들어간 뒤, 바람 방향으로 배를 대서 설치할 수 있었다.
다시 물로 컴백한 호라이즌스호를 자축하기 위해 아스토리아 시내의 피자집에 가 늦은 점심을 먹었다. 작년에도 왔던 곳인데 일 년 사이에 물가가 많이 올랐음을 실감했다. 시내에 나온 김에 근처 슈퍼마켓까지 20분 더 걸어 택시비를 아끼기로 했으나, 마리나 방향으로 돌아가는 관광 트람이 눈에 들어오자 둘 다 아무 말 없이 트람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아침부터 분주하게 움직이고 종일 걸어 다녔는데 역시 슈퍼마켓까지 더 걷는 것은 무리였던 것이다. 아직 비행 피로도 풀리지 않았고, 시차 적응도 하지 못했다. 100년 전 차장 유니폼의 안내원 할아버지는 작년과 다름없이 창 밖의 아스토리아 명물 설명을 시작했다. 미안하게도 우리는 자리에 앉자마자 곯아떨어졌다.
어리버리 팔랑귀
원래는 일주일 즈음 아스토리아에서 준비하고 적응한 뒤 출항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일기예보 앱에 의하면 며칠 뒤부터 이 동네에 강풍이 불 것 같았다. 게다가 요즘엔 해가 길어서 밤 항해를 없이도 커버할 수 있는 거리가 넉넉한데, 하루하루 해가 짧아지는 것도 아까웠다. 기상 상황에 묶여 움직이지 못하는 때가 온다면 휴식은 그때 취하고, 이 황금 같은 시기에는 최대한 진도를 빼놓는 게 좋은 전략 같았다. 그러나 출항 날짜와 시간은 우리 맘대로 정하는 게 아니었다. 바를 건널 수 있는 시간을 알아봐야 했다.
조급한 우리 마음과 달리, 조류 타이밍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우리가 다음에 들어갈 항구는 틸라묵Tillamook인데 여기서 약 60해리 거리. 5노트 속도 기준으로 12시간이 소요된다. 바를 건널 수 있는 틸라묵의 밀물 타이밍이 우리 일정과 맞지 않았다. 조류 타이밍 기다리느라 며칠을 그냥 흘러 보내기 참 아깝지만 어쩔 수 없었다.
동네 산책을 하고 돌아오는 길, 마리나 사무실 옆의 요트클럽 앞에서 할아버지 한 분을 발견했다. 비비드 컬러 스트랩이 달린 스포티한 선글라스, 다린 듯 주름 없이 깨끗한 폴로 티셔츠와 버뮤다 반바지. 금방 화보 촬영하고 오신듯한 옷차림이 '나 세일러야'라는 메시지를 강렬하게 전하고 있었다. 언젠가 "이 동네 바 건너는 문제는 요트 클럽의 노인들에게 물으라"라는 말을 들은 것이 기억났다. 이 할아버지라면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하고 얼른 붙잡아 바 크로싱에 대한 조언을 구했다. 할아버지는 그렇잖아도 틸라묵에 배를 대고 차로 오는 참이라고 했다.
"이렇게 바람이 없으면 재미없어서 못하지. 내일도 이 모양이라는 것 같은데 그럼 난 배 안타. 차라리 며칠 뒤에나 여기로 배를 가지고 오는 게 나아."
우리는 귀가 쫑긋했다. 그것은 우리가 출항할 최적의 조건이라는 말인데.. 반면, 현지의 세일러는 태평양의 공동묘지 컬럼비아 강 입구를 자유로이 드나들며 오로지 세일링의 즐거움으로 배를 타는구나 신기하기도 했다. 오늘 산책하다 운 좋게 임자를 만난 것 같았다.
할아버지는, 컬럼비아 강 바를 건널 최고의 타이밍은 바로 '썰물이 끝나고 밀물이 시작하기 바로 전의 간조'라는 중요한 정보도 주었다. 아마도 유량이 많고 속도가 빠른 컬럼비아 강에서 썰물을 타고 나간 뒤, 물이 멈추어 있는 간조 타이밍에 바에 도착해 건너는 것이 효율적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추측했다. 컬럼비아 강 입구는 워낙 해저 정비를 잘해 놓는 데에다 깊어서 수심 문제가 적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은 것도 같다. 게다가 아스토리아 마리나에서 컬럼비아 강어귀까지는 나가는 데에만 무려 두 시간이 넘는 먼 거리다. 따라서 컬럼비아 강의 조류 역시 무시할 수 없을 것이었다.
하지만 배에 돌아와 확인해 보니 '썰물이 끝나고 밀물이 시작하기 바로 전의 간조'는 해가 중천에 뜬, 하루의 한가운데였다. 이렇게 늦게 출항한다면 틸라묵에 해 지기 전 도착하기는 어렵다.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었다. 아무래도 이 도시가 호라이즌스 호를 놔주지 않는 것만 같았다.
'썰물이 끝나고 밀물이 시작하기 바로 전의 간조' : 나중에 이 얘기를 들은 세일러 친구는 "그럴 리가 없다"라고 단언했다. 바는 원래 밀물이 끝나고 썰물이 시작하기 전 만조 때 건너는 것이라고. 나는 '컬럼비아 강에서는'에 방점을 찍은 지역 특화 정보라고 생각했으나, 친구는, 어느 바가 되었든 수심이 얕을수록 파도가 격한 데에다 썰물 때엔 반대 방향에서 충돌하는 물 때문에 안정적이지 않다고 했다. 밀물이 끝난 직후에 바를 건너는 게 좋은 이유는, 깊어진 수심도 있지만, 대양 스웰과 조류로 인한 파도의 방향이 같아 파도 주기가 길어지는 이유도 있다. 그래서 그 직후 물이 멈출 때 즈음이면 물이 매우 안정적이라고 한다. 컬럼비아 강의 특수한 환경 요인이 있는 것인지, 할아버지가 말실수를 하신 것인지, 내가 반대로 알아들었던 것인지는 아직까지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마리나 옆 자리에는 40피트 정도 길이의 플라이 브리지 파워요트가 정박하고 있었다. 배에서 작업을 할 때마다 감각적인 힙합을 크게 틀어놓고 온몸에 문신이 있는 젊은 남녀 커플의 배였다. 한 번은 배가 마리나로 들어오고 있길래 선주가 나가 계류줄을 잡아 주었다. 그런데 작업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WTF"을 내뱉었다고 했다. 즉시 선주에게 사과를 했다지만 선주는 놀라고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
WTF: What The F....
"저런 배들이 원래 세일링 요트들이랑 좀 달라요. 담에 줄 안 잡아주면 되지 뭐."
플라이 브리지 파워요트에 대한 부정적인 선입견을 더더욱 단단히 다지며 선주를 위로했다.
다음날 저녁은 마리나 안에 바람이 상당했는데 이 배가 들어오려다 몇 번을 옆으로 밀려 후진하기를 반복했다. 플라이 브리지에서 조타하던 남자는 데크에서 계류줄을 잡고 서 있던 여자에게 소리를 지르며 싸우는 것 같았다. 우리는 한창 저녁식사 중이었던 데에다 그의 WTF 전력 때문에 그냥 모른 척하려다, 세 번 네 번 실패가 계속되자 나가 줄을 잡아 주었다. 조금 전까지 여자에게 소리를 지르던 남자가 감사를 표했으나, 칼을 품은 한 마디로 선주의 복수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별 걸요, 늦게 와서 미안해요. 제 친구 얘기로는 계류에 도움이 필요 없는 실력파라고 하셔서 개입을 망설였죠."
그런데 한 밤중에 이 남자가 찾아왔다. 그날 잡은 게로 요리를 했는데 우리를 저녁에 초대하고 싶다고. WTF은 순간적으로 잘못 튀어나온 말이었던 것 같고 나쁜 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저녁, 또 다른 플라이 브리지 파워보트가 마리나 옆자리에 접근하는 것이 보였다. 줄을 잡아주러 나가 기다리는데 이 배는 한 번에 아주 능숙하게 정박을 했다. 왠지 고수의 느낌이 난다 싶더니만 역시나, 프로 스키퍼가 선주 부부와 함께 배를 옮기는 중이라고 했다. 이들이 내일 새벽 5시에 출항한다는 말에, 우리도..? 하는 생각이 고개를 들며 갑자기 피가 빨리 도는 느낌이 들었다.
스키퍼는, 내일 새벽이 최적의 타이밍은 아니지만 바다 상태가 좋기 때문에 문제없다고 했다. 바를 건널 수 있는 시간 계산이 계속 헷갈리고 자신 없었는데, 믿음직한 스키퍼도 나간다고 하니 그 자리에서 출항을 결정해 버렸다.
출항!
새벽 다섯 시.
준비를 마치고 시동을 걸었는데 걸리지 않자 선주와 나는 그대로 돌처럼 굳어 버렸다. 곧 정신을 차린 선주,
"기어 중립 확인해 봐"
이런 걸 트라우마라고 하던가. 그 몇 초 사이 지난 10개월이 눈앞에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치는 느낌이었다.
부르르르릉!
옆 배는 우리 계류줄을 푸는 것을 도와주고 우리보다 뒤에 나왔지만 이미 저 멀리 시야에서 사라지고 있었다. 이 배도, 또 한 척의 다른 파워보트도 채널을 한참 벗어난 지름길로 재빨리 멀어져 가고 있었다. 저렇게 채널 밖으로 가도 되는 것인가 궁금해졌다. 반면, 우리는 당당당당 요란한 엔진 소리를 울리며 느리고 충실하게 바 채널을 따라갔다. 오늘 갈 길이 먼데 우리도 지름길을 따라갈까- 잠깐 마음이 혹했지만, 첫날인데 안전한 것이 나았다.
출항이 며칠 미뤄지는 줄 알고 느긋하게 있다가 옆 배 때문에 다소 성급히 출항한 감이 있었다. 강 입구까지 가는 동안 잭 라인jack line도 설치하고, 아직 공부해 놓지 못한 다음 정박지 틸라묵 부분을 읽기 위해 가이드북을 찾아왔다.
틸라묵은 치즈와 유제품으로 유명하다. 미국 슈퍼마켓에서 틸라묵 체다치즈와 요구르트, 아이스크림 등을 쉽게 볼 수 있다. 개인적인 취향으로는 그다지 훌륭한 것은 잘 모르겠다. 가이드북을 훑어보니 다음과 같은 글귀들이 눈에 들어왔다.
* 틸라묵 바는 가장 위험한 바 중에 하나이며.. * 어떤 이유에서든 불안함을 느낀다면 코스트 가드에게 당신이 이곳에 처음임임을 알려라. * 틸라묵에 입항을 해야 할 명확한 이유가 있지 않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