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고생길에
아스토리아에서 이륙한 비행기가 향한 곳은 한국이 아닌 브라질이었다. 선주의 볼 일도 있었지만, 멕시코에서 따뜻한 겨울을 나려던 계획이 어긋났으니 어쨌든 똑같이 따뜻한 남반구의 브라질에서라도 겨울을 보내자는 생각에서였다. 리우 데 자네이루Rio de janeiro에 처음 갔을 땐 정말 좋았다. 지긋지긋하던 안개 없는 푸른 바다와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의 상콤한 색상, 오리털 패딩 입고 항해하며 꿈에 그리던 따뜻한 날씨(남반구는 계절이 반대라 막 여름이 시작되고 있었다)...
곧, 고층 건물이 늘어선 도시적인 바다 리우보다 좀 더 원시적인 바다를 찾아 일랴 그란지Ilha Grande라는 섬으로 옮겼다. 차 없는 섬이다. 차가 없기에 도로도 없고, 물류 이동이 어려우니 개발도 어려워, 자연 그대로 남아 있는 섬이다.
외딴섬에서도 심심해하지 않고 잘 지낼 자신이 있었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대서양에서 직접 왕림하는 파도는 푸른 성벽을 만들었다가 으르렁거리며 해변을 내리쳤다. 그 아래 깔리면 살아남을 자신이 없었다. 경이롭지만 등골이 서늘해지는 광경 앞에서, 브라질이 왜 서핑 강국인지 깨달았다. 바다가 잔잔한 만에는 마을이 형성되어 있는데, 통통배로 육지에서 건축자재를 싣고 와 대충 지은 집들은 하수도 시설 없이 오물을 바다에 흘려보냈다.
왕성한 물놀이는 물 건너간 데에다, 가장 가까운 옆 동네에 놀러 가려해도 길 없는 밀림 산을 왕복 네 시간이나 타야 했다. 차 없는 섬에서는 배가 필요했고, 배 없는 우리의 섬 생활은 점차 귀양살이가 되어 갔다. 원래 귀양 가서 책 쓰는 거라고.. 그 덕에 지난 항해를 돌아보며 글을 쓴 건, 이 긴 시간의 유일한 위안이 되었다.
이 섬에서 겨울을 나려던 계획을 접고 세 달도 못 채우고 떠나기로 결정한 이유는 식수 문제였다. 마을에는 수돗물이 들어오지만 마실 수는 없었고, 그동안 믿고 마시던 지하수 샘의 물이 누런 색이라는 것을 어느 날 발견하게 되었다. 충격을 받고, 최소한 깨끗한 물이 있는 동네로 옮기기로 했다. 그래서 끝없는 언덕과 소떼, 그리고 카샤사Cachaça(브라질 술)로 유명한 미나스 제라이스Minas Gerais주의 카샴부Caxambu라는 곳으로 옮겼다. 천연 암반 광천수로 유명한 동네다.
하지만 하필 연말과 카니발 시즌인지라, 단기 월셋집 중 아직 남아 있는 빈 집들을 전전해야 했다. 번번이 바뀌는 남의 집, 남의 가구, 남의 숟가락을 사용하며 말도 잘 안 통하는 곳에서 친구조차 없이 붕- 뜬 느낌.
브라질에 간 덕에 추운 겨울 대신 여름을 한 번 더 누렸지만, 진정한 떠돌이 생활을 했다. 한국에 돌아왔을 때 '정착'에의 욕구가 극에 달했던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게다가 오랜만에 돌아온 남해는 너무나 좋았다. 느긋한 어촌 바이브, 코앞의 바다, 내 친구들, 내 숟가락...
이 좋은 정착생활을 고작 세 달 만에 접고 미국 돌아갈 짐을 싸면서는 그저 한숨이 나왔다. 북미 항해 내내 함께하던 불안이 몽글몽글 되살아났다. 크루를 못 구한 선주를 돕겠다는 자신만만한 생각으로 시작했지만 배도, 바다도, 항해도 내가 알던 그것이 아니었다. 구식 데크 장비, 온갖 잡동사니로 가득 찬 데에다 정비 상태를 알 수 없는 무거운 풀킬full keel 세일요트, 엔진 의존도가 높은 항해일정, 그간 개념조차 없었던 조수차, 강한 조류, 항구마다 있는 위험한 바bar... 예상 밖의 상황들이 펼쳐질 때마다 자신감을 잃어갔다. 처음으로 나보다 경험이 적은 사람과 함께 하는 더블핸드double-handed 세일링도 빠질 수 없었다.
항해 내내 배도 못 미덥고, 같이 항해하는 사람도 못 미덥고, 바다는 통 모르겠고.. 두려움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다시 어렵고 힘든 여정으로 돌아갈 될 날이 가까워질수록 불안은 더욱 깊어졌다.
하지만 13시간 비행 후 포틀랜드Portland 공항에 내리자, 알 수 없는 막연한 자신감 같은 것이 생겼다. 심리적 방어기제였을까? 이번엔 그래도 뭔가 준비된 느낌이 들었다. 어려움이 있겠지만 이미 경험해 본 일이니 괜찮을 것 같기도 했다.
이제, 풀킬 요트가 핀킬fin keel 요트와 어떻게 다르게 행동하는지도 경험했고 배를 뒤흔드는 태평양 스웰, 험하지만 이 역시 이미 겪어본 어려움. 쉬는 동안엔 날씨와 장비, 타야나Tayana 37피트 모델에 대해서 공부했고, 선주와 요트 용어도 함께 살펴보았다. 몇 차례 집 근처에서 데이세일링을 하며 함께 기본적인 세일링 연습을 하기도 했다. 가방 안엔 성능 좋은 방한용 내복과 착용감이 편한 구명조끼까지 챙겨 왔으니, 마음 한 구석에 ‘이번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느낌이 조심스레 머리를 들었다.
그러나 '준비가 되었다'는 느낌에 가장 큰 기여를 한 것은 항해기였다. 글을 쓰며 지난 항해를 돌아보고, 잘못을 발견하고, 차분하게 다른 각도에서 상황을 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이제 좀 북미 태평양 바다를, 그리고 이 항해에 임하는 나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포틀랜드의 싸구려 모텔에서 하루 묵고, 다음날 버스로 아스토리아 도착했다. 별다른 교통수단이 없는 마리나까지는 가방을 하나씩 끌며 30분 정도 걸어 도착했다. 이제 배를 물에 내리는 예약을 하고, 조선소의 황량한 콘크리트 바닥에 올라가 있는 배에서 며칠을 보내야 할 것이다. 거의 10개월 만에 만나는 우리의 호라이즌스 호는 어떤 모습으로 우리를 기다릴 것인가.. 그래도 물이 아니라 땅 위에 올려놓았으니 당장 오늘밤 쓸 멀쩡한 침대시트 정도는 있지 않을까- 기대하며 조선소 한 구석에서 긴 사다리를 주워 타고 배에 올라갔다.
아니 그런데 이런...
콕핏이 난장판이었다. 스프레이 후드spray hood는 찢어져 바람에 날리고 있었고 스테인리스 프레임은 빠진 채 앞쪽으로 넘어가 있었다. 조타대의 나침반은 박살이 나고 금속 커버가 찌그러져 있었다. 콕핏 라커도 열려 있는 것을 보아하니, 누군가 열쇠를 찾다 실패하자 뭔가를 휘둘러 배에 해코지를 한 것 같이 보였다.
"아니, 이런 곳에 사다리까지 타고 올라와서 누가 왜..?"
다행히 데크나 콕핏 표면에 손상은 없었지만 나침반이 깨져 열려 있는 것은 좋지 않았다. 조타대 기둥pedestal 위에 있는 나침반 속 액체가 아래로 흘러들어 가고 열린 틈으로 빗물이 계속 유입되었다면 금속 체인과 케이블로 이루어진 조타 시스템에 녹이 났을 수 있기 때문이다.
든든한 자물쇠 덕에 배 안은 멀쩡했다. 하지만 씌워놓은 천막 탓인지 아스토리아 겨울의 습한 날씨 때문인지 곰팡이가 슬어 있었다. 당장 오늘밤 쓸 침대시트 등 급한 세탁물을 내리고 사다리를 내려와 조선소 오피스에 들렀다.
직원에게 상황을 설명하니 아니나 다를까 올 1월 즈음 이 조선소에 반달리즘Vandalism(기물파손행위) 신고가 있었던 모양이다. 마리나 조선소의 펜스는 출입을 통제하지만, 자동차만 막는 정도여서 사람은 드나들 수 있는 개구멍들이 몇 개 있었다. 누군가 들어와 여러 척의 배를 파손하고, 선체에 스프레이로 낙서를 해 놓았다고 했다.
아아.. 지금 이 상황에서 배를 물에 내리는 게 맞을까, 작년의 엔진 문제들이 올해는 잠잠할까. 조타 시스템에 녹이 슬었는지, 문제가 없이 깨끗한지 우리 능력으로 확인할 수 있을까. 이 배로 컬럼비아 강 바를 건너서 다음 정박지까지 무사히 갈 수는 있는 걸까..
썰렁한 조선소 한 구석에 올려놓은 배 안에 잠자리를 만들고 누워 잠을 청하려니, 오랜만에 떠돌이가 된 것 같은 느낌에 휩싸였다. 밖에서는 강한 바람이 부는지 을씨년스러운 소리가 끊이지 않아 더더욱 심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