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극도로 피곤했지만, 배에서 얌전히 쉬다 잘 수는 없었다. 다운타운에서 맥주 한잔 하며 문명사회 복귀를 자축하려는데, 대중교통은 없고 4차선 도로 한편의 인도를 한 시간 넘게 걸어서야 도착할 수 있었다. 마리나에 돌아와서는 저녁 8시에 기절하듯 침대에 쓰러졌는데, 아침 8시 반까지 꿈도 꾸지 않고 깊은 잠을 잤다.
아침, 배 현창으로 들어오는 화창한 빛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번졌다. 우리는 이제 안전하고 좋은 곳에 있구나- 흔들리지 않는 잠자리와 햇살 한 가닥에 이렇게 마음이 풍족해질 수도 있다니 신기했다. 문을 열고 콕핏으로 내민 머리에 화사하게 부서지는 아침 햇살 역시 자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운동복을 입고, 이번엔 4차선 대로 대신 해안 절벽을 따라 난 흙길 따라 포트 브랙 중심가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왼쪽의 절벽 밑으로는 태평양이 펼쳐져 있고, 그 끝에 아득한 수평선이 보였다. 초원은 노랗게 마른풀로 가득 차 있었는데, 오솔길은 그 중간을 좁게 지나며 지평선을 향해 이어져 있었다. 내가 마치, 이 웅장한 대자연 한구석에서 꼬물꼬물 기어가는 개미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그마한 인간이 활동하기에 이곳의 자연은 스케일이 너무 큰 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구글 맵에서 미리 찾아 점찍어 둔 커뮤니티 센터Community Center에 도착했다. 포트브랙에서 아이스크림 가게를 하다 세계적인 보험회사를 세운 기업가가 설립한, 지역 문화센터 격의 시설이었다. 제대로 된 헬스장과 수영장을 하루 종일 이용하는 데에 주민은 8달러, 방문객도 10달러밖에 하지 않았다.
"주민인가요 방문객인가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주민이요."
우리 집(배)이 여기 있으니까 우린 주민이 맞다.
편안한 티셔츠, 반바지 차림의 배 나온 동네 아저씨들과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고, 수영장에서 수영하고, 샤워하고 나와 젖은 머리로 로비에 앉아 선주를 기다리고 있자니 마치 여기가 우리 동네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른 저녁을 먹고 노요 강 상류 쪽으로 산책하러 나갔다. 아담한 사이즈의 노요 강을 따라 올라가는 길은 울창한 숲 속이었다. 마리나에서 바로 연결되는 조용하고 쾌적한 산책로에 만족해하며 배로 돌아가는 길에 다이애나, 존과 마주쳤다. 우리와 같은 선착장에 머무는 사람들이었다.
포트 브랙 마리나에 입항했던 어제는 하필, 마리나 오피스가 문 닫는 토요일이었다. 배를 묶은 뒤, 마리나 밖으로 나가려고 보니 비밀번호 잠금장치가 있었다. 섣불리 나갔다가는 월요일 오전까지 철문 밖에서 노숙할 위험이 있었다. 그렇다고 포트 브랙 탐험을 뒤로 미루고 얌전히 마리나 안에 머무는 안전한 선택을 하기엔, 내일도 휴일. 이틀 내내 갇혀 있기는 억울하니 마리나 안에서 사람이 있는 배를 찾아 비밀번호를 물어보기로 했다. 바로 앞에 세일링 요트 하나가 보이기에 이 배부터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여기 누구 계신가요?"
사방이 투명 커버로 싸인 콕핏에 노인 커플이 앉아 있었다.
"비밀번호는 4141이야." 부인이 말하자, 남편은
"아니지. 비밀번호는 네 개가 다 1이었잖아."
할아버지는 친절하게도 배에서 나와 우리와 함께 마리나 출입구까지 걸어간 뒤, 비밀번호를 함께 확인해 주었다. 비밀번호는 1111이 아니라 4141이었다. 아.. 마리나 출입구 비밀번호조차 기억 못 하는 노인들이 세일링 요트에.. 첫 번째로 드는 생각이 "이 사람들도 혹시 배에 사는...?"였다. 부인은 다이애나, 할아버지는 존이라고 했다.
어제 출입문 비밀번호 때문에 잠깐 얘기를 나누었을 뿐인데, 어스름이 내리는 저녁에 이렇게 아는 얼굴을 마주치니 서로가 반가웠나 보다. 다이애나가 맥주 한 잔 하자며 우리를 배 위로 초대했다. 투명 커버 안 콕핏은 쾌적하고 아늑했다. 홈리스선주는 나중에 말하길, 자리에 앉는 그 순간까지도 혹시 홈리스의 배가 아닐까 했다는데, 아이스박스에서 꺼내주는 좋은 맥주를 보고서야 안심했단다. 홈리스였다면 제일 싼 맥주를 마셨을 테니까. 우리처럼.
이들은 험한 바다에 여기저기 파손된 배를 수리하며 다시 출항할 날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하와이를 향해 항해하던 중 오토파일럿이 고장 나는 바람에, 하는 수 없이 태평양 한가운데서 배를 돌려 포트 브랙으로 왔다고 했다. 우리는 태업과 파업이 잦은 오토파일럿에 대한 불신 때문에 심심찮게 수동조타를 하곤 하지만, 보통은 체력 소모가 심해 되도록 피하는 일이다. 그런데 이 70대 커플은 오토파일럿 고장 이후, 단 둘이서 500해리가 넘는 거리를 교대로 수동 조타하거나, 배를 안정적으로 떠내려가게 만든 뒤 쪽잠을 자가며 육지를 향해 왔다고 했다. 포트 브랙에는 망망대해 한가운데서 위성 메시지로 자리 있는 것을 확인하고 예약까지 한 뒤 입항했다고 한다. 출입문 비밀번호 헷갈리는 걸 보고 안쓰럽게 바라봤던 내 선입견이 무색해졌다.
배 이름은 오디세이Odyssey. 고대 그리스 서사시 오디세이아의 주인공 오디세우스의 표류에서 유래된 말로, 고생스럽고 긴 모험을 뜻한다. 그러나 이들의 고생스러운 경험이 배 이름 때문은 아니었길 바란다. 개인적으로 우리의 고된 항해가 멕시코에서 마무리되길 바라는 입장에서, 호라이즌스Horizons(복수형으로 수평선)도 그리 좋은 이름은 아닌 것 같다.
이들은 유타 주 솔트레이크에서 왕성한 레가타 활동을 하고 매년 좋은 성적을 얻는 세일링 실력파일 뿐 아니라, 배의 운용에 대해서도 박식했다. 특히 은퇴 전 엔지니어였다는 존은 오디세이 호의 시스템과 항해 장비를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 오프쇼어로 나가는 요트들이 중요 장비의 여유분을 준비하는 것이 일반적이긴 하지만, 이 배에는 모든 핵심 장비가 세 개씩 있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각각 독립된 안테나로 작동하는 두 개의 설치형 VHF에 더해, 성능 좋은 휴대용 VHF까지 갖추고 있다는 점이었다. 불의의 사고로 안테나가 하나가 손상되더라도 문제가 없는 구조였다. 휴대용 VHF만 가지고 출항했던 우리와는 정반대의 준비성을 보여주는 요트였다. 노인 둘이서 먼바다로 나가는 것이 너무 위험하지 않을까 하던 염려가, 그들의 완벽한 항해 준비태세 앞에서 무색해졌다.
"우리 둘 다 나이가 나이인 만큼 위험하지 않다고는 할 수 없어. 하지만 안전한 집에서 소일하느니, 바다에 나가야 비로소 살아있는 느낌이 들어. 그리고 최악의 경우를 가정하더라도, 난 내 삶을 충분히 잘 살았고, 이미 만족스러워. 설마 바다에서 죽는다고 해도 아쉬울 게 없을 거야."
다이애나의 말에 잠시 말을 잃었다.
포트 브랙 중심가에서 돌아다니다 맥줏집 재즈 공연 벽보를 발견하고는 다이애나와 존을 초대했다. 음식도 별로였고, 음악은 재난 수준이었지만 그래도 친구들과 함께 라이브 공연을 즐긴다는 자체가 참 행복한 일이었다. 이후 우리는 매일 같이 서로의 배에 방문하여 함께 시간을 보내는 친구가 되었다.
우리의 수많은 대화 주제 중 하나는 얼마 전 출간된 내 책이었다. 밴쿠버에서 아스토리아까지의 항해기를 담은 책인데, 아스토리아 공항 착륙 직후 출간 소식을 들었지만 아직 실물을 보지 못한 상태였다. 쉼 없이 남쪽으로 항해하는 바람에, 책이 배송되기 전에 이미 마리나를 떠나야 했기 때문이다. 이 얘기를 듣고 다이애나가 책 제목을 메모했는데, 그 자리에서 바로 주문할 줄은 미처 생각지 못했다.
배송된 종이책을 만져보며 신기해하는 나를 흐뭇한 눈으로 바라보던 다이애나,
"일단 책을 다 읽고 나서 저자 사인과 코멘트를 부탁할게."
그리고 그날밤부터 존과 함께 침대에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고 했다.
마리나와 포트 브랙 중심가 사이에는 4차선 도로 다리가 있는데, 인도가 좁고 차들이 빠른 속도로 달리는 데에다 태평양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그대로 노출되어 걷기에 유쾌하지는 않은 구간이다.
이날도 커뮤니티 센터에서 운동하고 마리나로 걸어 돌아오는데, 다리 한가운데에서 누군가 우리를 불러 세웠다.
"너희들, 세일링 요트 타고 온 사람들 맞지?"
꺽다리처럼 마르고 키가 큰 남자의 한 손엔 슈퍼마켓에서 파는 스시 플라스틱 통이 들려 있었고, 마지막 스시 한 점의 잔해를 마저 씹느라 입은 아직도 우물거리고 있었다. 이 차 많고 시끄러운 다리 위를 걸으며 스시를 먹은 것인가. 그러나 그 사실만으로 미국인이라고 치부하기엔 발음이 뭔가 이국적이었다.
"사실 너희 배를 뉴포트에서도 봤었어."
아.. 뉴포트에서 인사도 못하고 떠났다며 아쉬워했던 그 세일링 요트 스키퍼를 여기서 만났다! 이 요트는 우리와 비슷한 루트로 내려왔는데, 쿠스 베이에서도 우리 배를 봤다고 했다. 두 번 다 인사할 기회가 없었다가 세 번째로 우리를, 이번엔 외나무다리(만큼 좁은 인도)에서 마주쳤던 것이었다. 그리고 하필 이 시끄럽고 바람 부는 다리 위에서 수다 보따리가 풀렸다. 알고 보니 요트를 배달 중인 전문 스키퍼였다.
우리의 고생담에 멘도시노가 빠질 수 없었다. 경험 많은 스키퍼라면 같은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했을까 몹시 궁금했다. 그는 단호하게, 일기예보 앱에서 보는 계산 모델들은 이런 연안 항해에서는 소용이 없다고 했다. 대양 항해처럼 넓은 지역에 걸친 전반적인 추세를 알려줄 뿐이라, 이렇게 국지적 예보가 필요한 지역에서는 참고할 자료가 따로 있다고 말하며 엉거주춤 핸드폰을 바지 주머니에서 꺼냈다.
NOAA(미국 해양대기청) 그래픽 예보에는 케이프 멘도시노 아래쪽에 무서운 색깔이 매달려 있었다. 역시, 이것은 내가 확인하는 일기예보 앱에서는 본 적이 없는 모양이었다. 그는 이 색깔을 피해 가기 위해 육지에서 멀리 떨어져 오프쇼어로 지나왔다고 했다. 그 무서운 색깔 한가운데를 우리는 멋도 모르고 신나게 지나갔다는 사실에, 항해 정보와 일기예보가 세일러들의 안녕에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 뼈저리게 깨달았다.
그는 이 루트로 세 번째 요트 배달인데, 전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 오프쇼어로 나가 한 번에 장거리를 쏘는 방식으로 항해했다고 했다. 그러나 피항이 필요할 경우 육지에 돌아오는 데에만 24시간 이상 걸리는 데에 불안함을 느껴, 이번엔 항구마다 들르는 방식을 시도해 보는 중이라고 했다. 아까부터 궁금했던 것도 물어봤다.
"근데 너 미국사람 아니지?"
"어.. 미국에 오래 살긴 했지만.. 난 벨기에 사람이야."
오랜 시간 서서 목청껏 수다를 떨었더니 목이 칼칼하고 좀 추웠다. 무려 세 곳의 마리나에서 동선이 겹쳤으면서도 하필 차들이 쌩쌩 달리는 다리 한가운데에서 만나게 된 이 친구 이름은 장피에라고 했다.
포트브랙은 안개 없는 날이 많고, 날씨도 확실히 북쪽보다 덜 추웠다. 아침마다 화창한 햇살에 저절로 얼굴에 웃음이 번지는, 그리고 원하면 얼마든 늦잠도 맘껏 잘 수 있는 평화로운 날들이 이어졌다. 강풍은 언제쯤 얌전해질지 기약이 없었고, 포트 브랙 마리나에 저렴한 2주 계류 요금이 있다는 사실은 참 다행이었다. 출항 때부터 날씨에 발이 묶여 장기 계류할 일이 있을 거라고 예감했는데, 그게 미뤄지고 미뤄지다가 결국 포트 브랙에서 실현되는 모양이었다.
해안 절벽 위 벤치에서 품속에 숨겨 간 샴페인을 종이컵에 몰래 따라 마시며 도둑 음주를 하기도 하고, 요즘 화제라는 난해한 영화를 보며 영화관에서 졸기도 했다. 이틀에 한 번씩은 커뮤니티 센터에서 운동하고, 배낭 가득 밀폐용기를 메고 오솔길을 따라 걸으며 야생 블랙베리를 따서 오디세이 호에 놀러 가 아이스크림에 얹어 먹으며 수다를 떠는 나날이 이어졌다. 언제 출항할 수 있을까 조바심이 일기는 했지만 이렇게 마음에 쏙 드는 곳에서, 친구들과 함께 지내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도 들었다.
포트 브랙 마리나에 오래 지내다 보니 지역 축제에도 참여하게 되었다. 이런 종류의 노는 이벤트 정보가 빠른 우리는 다이애나와 존에게서 함께 가자는 약속을 받았고, 쓰레기 봉지를 들고 화장실 앞을 지나다 우리에게 딱 걸린 장피에에게는 열심히 축제 홍보를 하며 참여를 설득하기도 했다.
포트 브랙 마리나는 아기자기하거나 사람이 북적북적하는 분위기와는 좀 거리가 있었다. 하지만 공터에 부스들이 하나둘 자리 잡고 라이브 가수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자 나름 뭔가 축제 분위기가 나는 것도 같았다. 건너편에서 마주 걸어오던 다이애나와 존이 반갑게 인사했다. 우리를 발견하는 순간 반가움에 빛나는 다이애나의 얼굴을 보니 마음이 따뜻해졌다. 연고도 없고 먼 이곳에서 반가운 얼굴을 마주치는 것이 얼마나 큰 기쁨이자 행운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배 고장으로 포트브랙에 비상 입항을 하게 된 유타 주의 70대 미국인과, 한 달을 예상했던 항해에 발 묶여 계속하지 않았다면 여기 올 일이 전혀 없었을, 아들 딸 뻘의 한국인. 사람의 인연이란 얼마나 기막힌 것인지, 국적과 나이를 떠나 마음이 맞는 사람들을 만났을 때 울리는 마음의 공명은 참 크다.
축제의 가장 큰 볼거리는 계류한 어선마다 파는 각종 해산물. 우리는 보름달빵만 한 초대형 성게 몇 마리와 생선을 좀 사서 다이애나와 존을 배에 초대해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장피에는 딱히 축제 스타일이 아니었는지 눈에 띄지 않았지만, 또 다른 친구들을 사귀게 되었다.
며칠 전, 조용한 마리나에서 이목을 끈 배가 한 대 있었다. 선착장에 배를 대려다 몇 차례 다시 대는 듯하더니 다음날 다른 자리에 묶여 있던 배다. 마리나 세탁실엔 건조기가 항상 있게 마련인데 배에 가득 널어놓은 빨래도 뭔가 어설프고, 배에서 내리는 여자의 밀짚모자와 청반바지도 뭔가 초보 관광객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그래서
“왠지 저 쪽도 우리랑 비슷한 과인 것 같다” 라며 친근함을 느꼈다.
축제용 벤치 중 하나에서 이 두 사람을 발견하고는,
“너희들을 이미 본 것 같은데”라고 말하며 합석을 했다.
알고 보니 남자는 캐나다에 사는 이탈리아인, 여자는 한국인이었다. 우리처럼 멕시코를 향해 남하하고 있는 조반니&희진. 북 캘리포니아의 작은 어촌 마을 포트 브랙이 이렇게 핫한 메트로폴리탄일 줄은 예상 못했다.
이들은 캐나다에서 만나 약혼한 커플로, 멕시코에서 가장 멋진 바닷가를 골라 결혼식을 올릴 거라고 했다. 배에서 살며 하는 장거리 항해는 은퇴 후 시작하는 경우가 많지만, 그때는 이미 늙어 시간이 촉박할 것 같다며 젊은 나이에 바다로 나왔단다. 이미 1년간 밴쿠버 근처를 세일링 하며 준비를 한 뒤, 배에서 원격근무를 하며 항해 중이라고 했다.
뭔가 어리버리한 분위기가 우리와 비슷하다며 느꼈던 친근감은 근거가 없었음이 곧 밝혀졌다. 이들은 대부분의 구간을 오프쇼어로 나가 기항지들을 그냥 지나치는 항해를 하고 있었다. 안개가 자욱하게 낀 밤, 도저히 견딜 수 없는 멀미에 시달리지 않았다면 포트 브랙 역시 멀리서 지나칠 예정이었다고 했다. 세일링 경력이 많지 않은 두 사람이 이렇게 망망대해로 나가 며칠씩 항해하는 걸 보면, 이런 대담함은 타고나는 것인가 싶었다.
마리나에서는 반갑지 않은 친구들과도 함께 지내야 했다. 어느 날 밤 새벽, 어딘가에서 돼지 멱따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더니, 최소 세 군데 이상의 로케이션에서 꾸웨엑꾸웨에에엑 소리가 스테레오로 울리기 시작했다. 우리 배 바로 옆에서도 꽤애액- 하는 소리가 나 화들짝 놀라 콕핏 밖으로 머리를 내밀었다. 어둠 속 거대한 갈색 모피 덩어리가 바로 옆 선석에 드러누워 울부짖고 있었다. 바다사자들이 선착장에 올라와 있었다!
바다사자는 가까이 다가가기에 무서울 정도로 덩치가 컸다. 북미 서부의 마리나 안에서 흰색에 점박이 물범을 보는 일은 꽤 흔히 일어나는 일이었다. 하지만, 물범은 상대적으로 사이즈도 작고 귀여운 이미지가 있다. 게다가 이렇게 괴상한 소리를 지르지도 않는다.
고요한 밤, 마리나에는 바다사자들의 못난 소리 합창이 울려 퍼졌다.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인지, 싸우는 소리 같기도 하고, 단체로 교미를 하나 싶기도 한 흥분한 괴성은 몇 시간 동안 울려 퍼졌다. 잠을 설친 것은 물론이고, 나중에는 그 목청 좋은 못난 소리를 듣는 것이 너무 힘들어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까지 동원해야 했다. 생긴 것도 못생겼지만 그 소리는 정말 참을 수가 없었다.
그날 밤 이후, 이 바다사자 무리는 마리나를 떠나지 않고 머물렀다. 얘기를 들어 보니, 원래 마리나에 들어와 사는 바다사자들이 꽤 있다고 했다. 오밤중에 단체로 소리를 지르는 일은 다시 일어나지 않았지만, 그 큰 덩치로 선착장에 올라와 길을 막는 일은 빈번하게 일어났다. 호라이즌스 호 근처에도 종종 올라오는 한 마리가 있긴 했지만, 건너편 선착장은 이들이 특히나 좋아하는 핫 플레이스였다. 그 끝에는 안타깝게도 장피에의 배가 홀로 계류하고 있었다.
하루는 구부정하게 양손에 쓰레기 봉지를 들고 선착장으로 나오다 흠칫- 하는 장피에의 모습이 보였다. 그 앞에는 마치 삥 뜯는 불량 청소년 무리처럼 바다사자 몇 마리가 드러누워 길을 막고 있었다. 어쩔 줄 몰라하던 장피에는 결국 배로 돌아갔다. 그다음 날, 마리나가 울리도록 박수를 치고 소리를 지르는 소리가 들려 나가 보니, 마리나 사무실 직원 안나가 장피에를 위해 길을 뚫어주고 있었다. 알고 보니, 바다사자 때문에 장피에가 배 안에 감금돼 있었다고.
“안나처럼 너도 쫓아내면 되는 거 아니었어?”
“아냐, 누가 그러는데 바다사자는 개랑 비슷해서 자기한테 못되게 군 사람 얼굴을 기억하고 해코지 할 수도 있대. 안나는 여기 바다사자들이 무서워하는 존재라고 하더라고.”
날씨 때문에 장기간 발이 묶인다면 최소한 그 안에서 즐겁게 지낼 수 있는 곳이었으면 좋겠다는 막연한 희망이 있었다. 우린 포트 브랙 마리나 안의 주민들과 더할 나위 없이 즐겁고도 안정된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출항을 할 수 있을 만한 날씨가 드디어 일기예보에 보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