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국뽕의 심장
학원에서 주 초부터 시몬 베이유(Simone Veil)이라는 사람에 대한 텍스트로 독해와 문법 연습을 했다. 전혀 들어본 적이 없는 이름이라 '뭐 초급반에서 이런 프랑스 정치인 텍스트를 읽게 하나'라고 생각했다. 집에 TV가 있었으면 왜 수업시간에 시몬 베이유에 관한 텍스트를 읽었고 팡테옹에 단체로 방문하게 했는지 알수 있었을 지도 모르겠다.
지난 7월 1일 이 시몬 베이유가 팡테옹에 안치됐다. 78번째 사람이자 네번째 여성이었다.
정면에 프랑스어로
AUX GRANDS HOMME LA PATRIE RECONNAISSANTE
라고 써 있다. '위대한 인물들에게 국가는 감사한다' 정도의 뜻이다.
병이 나 낫게 해주면 교회를 헌정하겠다는 왕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짓기 시작한 교회는, 프랑스혁명이 일어나고 루이 15세가 교수대에 매달린 지 2년이 지나서야 완공이 되었다고 한다. 당연히 여느 교회의 파사드에처럼 D.O.M.(Deo Opt. Max., 우리 신이 짱) 따위의 라틴어를 넣었을 리는 없다.
시몬 베이유는 나치에 의해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끌려갔으나 생존하여 프랑스에 돌아온 이후 보건부 장관을 지내고 최초 유럽의회 의장에 선출되기도 했다. 특히나 1974년, IVG라고 불리는 낙태법을, 엄청난 반대를 뚫고 관철시켜 프랑스 페미니즘의 선구자라고 불린다.
낙태법이 통과한 이후 아래의 명연설을 한다. 찾아보다 보니 쫌 멋있어 링크를 올린다. grand homme(위대한 남성)이 아닌 grande femme(위대한 여성)의 신념과 의지, 그에서 나오는 아우라..
Je voudrais tout d’abord vous faire partager une conviction de femme - je m’excuse de le faire devant cette Assemblée presque exclusivement composée d’hommes :
aucune femme ne recourt de gaieté de cœur à l’avortement. Il suffit d’écouter les femmes. C’est toujours un drame et cela restera toujours un drame..
여자가 갖는 운명적인 임무에 대해서 여러분과 나누고 싶다. 대부분이 남성으로 구성된 의회 앞에서 이런 법안을 제출하게 되어 미안하다. 어떤 여자도 임신중절을 가벼운 마음으로 말하지 않는다. 그들의 말을 들으면 충분히 이해가 갈 것이다. 그것은 항상 비극적이며, 항상 비극적으로 남는다. 번역 출처
흔치 않은 '팡테옹 신규 입주' 덕에 이번주 내내 팡테옹 입장이 무료였다.
원래 팡테옹(pantheon)이라는 말의 어원은 그리스어 Pantheion, of all the gods 즉, 모든 신의 (신전)이라는 뜻이란다. 그런데 이 곳에 프랑스의 '위인'들의 묘지를 모셔놨으니 이 위대한 인간들이 곧 신이라는 뜻 아닐까. 그런 만큼 팡테옹 안에는 안치된 인물들의 업적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찬양'되고 '선전'되고 있었다.
앙리 베르그송(Henri Bergson) 스펙:
PHILOSOPHE DONT L'OEUVRE ET LA VIE ONT HONORÉ LA FRANCE ET LA PENSÉE HUMAINE
그 작품과 삶이 프랑스와 인류의 사상을 영광되게 한 철학자
점자의 발명가 루이 브라유(Louis Braille)는 사망 100년 후 팡테옹에 안치되었다. 100년이나 지나 왜 무덤을 옮겼을까? 사후에 점자가 유명해진 이후에야 '이 분도 프랑스인'임을 선전하기 위해 팡테옹으로 이사 가야 했던 루이 브라유는 기뻤으려나?
이 외에도 퀴리 부부, 볼테르, 루소 등 익숙한 이름들이 보였다. 관이나 벽은 honneurs(영예), grands hommes(위대한 인간), humaine(인류) 등등 뭔가 목에 힘이 가득 들어간 듯한 단어들로 가득이다.
팡테옹 중항 홀에는 의자와 함께 비치되어 있는 책장에 책이 가득 꽂혀 있었다. 팡테옹 입주민인 장 조레스(Jean Jaurés)와, 역시 입주민 빅토르 위고(Victor Hugo)의 작품들이 꽂혀 있다.
팡테옹의 축소모델이 전시된 듯한 곳으로 입실하려니 입구 좌우로 수많은 이름들이 새겨져 있고 그 위로는 아래와 같은 굵은 글자가...
AUX ECRIVAINS MORTS POUR LA FRANCE
프랑스를 위해 죽은 작가들
어, 잠깐만요..
저 작가들이 과연 프랑스를 위해 글을 쓰고 프랑스를 위해 죽었던가?
자유'를 위해서 혹은 '정의'를 위해서-처럼 어떤 가치에 여기 누워 있는 사람들의 인생을 봉헌하는 것이라면 얘기가 다르겠지만 '프랑스"를 위해? 퀴리 부인이 프랑스를 위해 연구를 해 라듐을 발견하고 에밀졸라가 프랑스를 위해 프랑스를 '고발'했던가. 빅토르 위고가 프랑스를 위해 레미제라블을 쓰고 뒤마가 삼총사를 쓰고..
그렇다, 이것은 국뽕이었다.
프랑스는 상당히 국가주의가 강한 나라 같다. 성향이 아나키스트인 이탈리아 사람들과는 비교할 것도 없고, 파리와 함께 유럽의 양대 메트로폴리탄을 이루는 런던과 비교해도 그렇다.
파리의 건물들을 보면 말 잘 듣는 군인들을 보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질서정연한 중심가의 건물들과 외곽에 고분고분하게 들어선 고층건물들. 새로 세워진 도시도 아닌데 라데팡스의 개선문 앞부터 일자로 길이 뚫려 저 멀리 오리지날 개선문이 직통으로 시야에 들어오는, 도시 디자인의 엄청난 오거니제이션.. 각자 개인의 의견이 강하고 남과 다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프랑스 사람들을 생각하면 언뜻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