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 못한 그 말..

첫 주 돌아보기

by EASYSAILING

연착되는 비행기에 조마조마해하다 오밤중에 오를리 공항에 도착해 중국인 친구 Q와 삽질을 했던 게 고작 일주일 전 일이라니! 여기서 한 달은 산 것 같은 느낌이다.
걱정했던 대로 일기를 쓰는 속도가 이런저런 일들이 마구마구 일어나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쓸거리들이 밀려 있다.
매일 4시간 + 통학시간의 학원이 하루 일과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생각보다 크다.

오전 11시에 시작해 세시 반에 끝나 하루의 정 중앙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첫 번째 이유.

학원에 에어컨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도로 소음 때문에 창문과 문을 닫고 수업을 해서 매일 더위 먹고 집에 온 뒤, 침대에 대자로 누워 몇 시간 체력 회복을 해야 하는 것이 두 번째 이유.

아직까지 자전거와 트람사이에서 통학 교통수단을 확정 짓지 못해 번번이 헤매는 게 세 번째 이유다.

처음 며칠은 이런 놀이도 했다.

오전에 집을 나서기 전에 '내가 오늘 할 만한 말'들의 리스트를 만들고 저녁에 실제로 쓰거나 필요했던 말과 비교해 보는 놀이.
예를 들어 첫날의 '예상 리스트'는 이랬다.


Bonjour. 봉쥬르? 써먹음.
Je voudrais un café. 커피 주세요. 써먹음.
Qu'y a-t-il dans ce croissant? 이 크루아상 안엔 뭐가 들어있니? 프랑스 크루아상엔 이탈리아처럼 안에 이것저것 들어있지가 않아 못 씀.
Puis-je utiliser mon ordinateur portable ici? 여기서 노트북 써도 돼요? 노트북을 펼 만한 카페를 찾지 못해 못 씀.
Je suis arrivée hier. 어제 도착했어요. 말을 거는 사람이 없어 못 씀.
Puis-je payer? 계산할게요. 써먹음.


반면, 말하고 싶은데 몰라서 답답했던 문장들:


C'est tres lent. 느려 터졌어요. 슈퍼의 긴 줄에서 앞사람과 눈 마주쳤을 때
Comment as-tu compris que je suis coréen? 내가 한국인인 거 어떻게 알았어? 몰랐기 다행. 캐셔가 다른 말을 했는데 내가 잘못 알아들었던 것.
Donc, je ne pouvais pas comprendre l'explication en français. 어차피 프랑스어 설명 알아듣지도 못할 텐데 뭐
Ce n'est pas le mien. C'est à lui. 그거 내 것 아니에요. 앞 닝겐이 버리고 간 쓰레기의 누명을 뒤집어쓸 찰나
Comment puis-je sortir? 여기서 어떻게 나가요?
Êtes-vous dans la file d'attente? 여기 줄 서신 거예요?


학원 수업은

A2.1반에서 A2.3반으로 옮긴 뒤 정착했다.
처음엔 억지로 두 반을 올린 거라 긴장했는데 며칠 지나다 보니 이 반도 쉬운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역시 실력은 있었는데 시험만 못 봤던 거 아냐? 흐흐)
처음 2시간은 교재를 가지고 독해, 문법, 듣기 등을 하는 일반적인 수업이고, 그다음 2시간은 아틀리에 수업이다. 그런데 아틀리에라고 해서 특별한 활동이 있기보다는 수업에서 배우는 것을 다지는 연습문제 위주로 수업을 한다. 아직 초급반이라 그런지 학생들에게 발언할 기회를 많이 주지 않고, 혹여라도 옆 사람이랑 상황극을 하라고 할 때엔 그야말로 재난.
이탈리아의 경우 5-6개월 어학을 하고 바로 전공 학교를 시작하는데 프랑스는 이 어학 기간이 1-2년으로 상당히 긴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학원에서 한 달에 나갈 진도도 상당히 느린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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