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의 바다가 되어 흘러가는 곳
낯선 새들의 소리에 눈이 띄었다. 이어 맞춰둔 알람이 힘차게 울렸다. 몽생미셸에서 차로 한 시간 남짓 걸리는 오두막에서 막 일어난 터였다. 파리에서 떠난 처음의 여행. 충분히 초록빛을 머금은 파리의 여름을 만끽한 후였지만 쉽게 가버리는 여름이 아쉬워 어디론가 떠나기로 해 새벽이 되어서야 도착한 이 곳.
달력의 숫자는 여름이었지만 이곳의 새벽은 이미 가을의 중간을 지나는 듯했다. 혹시 몰라 챙겨 온 두터운 겉옷을 가방 깊숙한 곳에서 꺼내어 걸친 채 마당으로 나왔다. 침대 위에서 한없이 게으름 피워도 무어라 할 사람은 없었지만 일찍 일어난 까닭은 전 날 보았던 물안개 때문이었다. 대천사 미카엘의 명령으로 지어졌다는 수도원 몽생미셸의 야경을 보기 위해 해가 넘어가기 시작하던 순간부터 그곳에 있었다. 삼각대를 세워 둔 채 슈퍼에서 구입한 샌드위치와 음료수를 먹으며 꽤 오랜 시간을 바다 바람과 함께 수도원 앞에서 보냈다. 늦여름에도 낮은 여전히 길었기에 밤 또한 더디게 찾아온 탓이었다.
자정이 가까워진 시간이 되어서야 도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숙소로 가는 길. 어느 중간부터는 폭넓지 않은 산길이 시작되었는데 그 길을 통과해야만 오두막에 도착할 수 있었다. 조명 하나 없던 곳에는 낮과 달리 피어 오른 물안개로 가득하였다. 코 앞의 거리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아 사람이 걷는 속도로 겨우 그곳을 통과했다. 짧지 않던 그 시간은 벼랑 끝에서 하는 곡예 운전이 이러한 느낌이지 않을까.
무사히 도착했다는 안도와 함께 시동을 끄고 차에서 내렸다. 헤드 라이트가 꺼지자 동시에 다른 세상이 눈 앞에 펼쳐졌다. 하루 종일 서 쪽 저편으로 넘어가는 해의 움직임을 두 눈으로 좇았고 몽생미셸의 야경을 보느라 마주하였던 얼룩진 하늘은 어느새 까마득한 밤하늘 속 환하게 빛나는 별들로 가득하였다. 오두막집은 숲 속에서도 약간 높은 곳에 위치해 있었다. 위험했던 물안개는 깜깜한 숲의 바다가 되어 눈부신 밤하늘 은하수와 평행하게 흘러갔다.
노르망디의 짙푸른 숲 내음을 품고 이러 저리 옮겨 다니다 우연찮게 나와 조우한 듯했다. 아찔한 그 순간을 놓치기 싫어 집으로 뛰어 들어가 따뜻한 커피 한잔을 들고 나왔다. 두리번거리다 마당이라 하기에는 경계 없는 거대한 들판의 한 구석에 자리 잡고 흘러가는 노르망디의 바다를 한참 동안이나 바라보았다.
그날 밤 꿈을 꾸었다. 헐렁하고 높다란 모자를 쓴 채 보자기 하나를 어깨에 둘러멘 난쟁이였다. 그 속엔 노르망디의 바닷물 위로 떠 오른 은하수의 별자리를 읽는 방법이 적힌 책들로 가득하였다. 누군가에게 들키고 싶지 않아 감쳐둔 이야기들을 읽어내는 방법이었던 탓에 그것들을 깜깜한 숲의 바다 어딘가에 숨겨 두려 하였다. 그렇게 보자기 속에 책들을 한 아름 짊어지고 안개 속으로 사라져 갔다. 산책을 위해 문을 열고 나와 마주한 풍경은 전날 밤의 꿈속에서 본듯한 숲의 입구와 흡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