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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나무 Jan 10. 2021

입사 세 달, 시발과 친해지는 법

이길 수 없는 싸움

 사수는 자신의 과거 이야기를 즐겼다. 그는 두 가지 목적으로 개인 서사를 활용했는데, 첫째는 자신이 바라는 이상적 모습으로 스스로를 꾸며내기 위한 (물론 대부분 거짓말인) 경험담들이었고, 둘째는 자신의 미래 성공을 더욱 극적으로 만들어 줄 가난한 어린 시절 이야기였다. 어설프게 꾸며낸 전자의 이야기와 달리 그의 성장기에는 나름대로 진솔한 맛이 있었다. 


 개중에는 학창 시절 주먹다짐 에피소드도 있었다. 혈기왕성한 고등학생 때 주먹 한 번 휘둘러본 적 없는 남고생이 어디 흔하겠냐만은 그의 이야기는 조금 섬뜩한 구석이 있었다. 대개 그렇듯 그의 싸움도 아주 사소한 이유로 시작되었다. 매일 등교를 함께하던 친구가 어느 날 늦잠을 잔 자신을 기다리지 않고 먼저 학교에 가버렸다는 게 전부였다. 


 소박한 발단에 비해 주먹다짐은 아웅다웅하는 수준이 아니었다. 사수는 안경 낀 친구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딴에는 안경 때문에 다치면 안 되니까 코와 입을 조준했다고 했다. 친구는 예고 없이 날아오는 주먹에 꼼짝 못 하고 맞기만 했다. 사수는 앞니가 빠진 채 피 흘리는 친구의 모습을 보고서야 주먹질을 멈추었다. 그는 이후로 다신 그 친구와 등교하지 않았다고 웃으며 에필로그까지 덧붙였다.


 나는 몇 번이나 사수의 눈에서ㅡ뭐라 형언할 수 없는ㅡ빛이 꺼져가는 순간을 본 목격자이자, 피해자였다. 

 나는 친구의 얼굴을 내리치는 그의 모습을 아주 쉽게 상상할 수 있었다. 


 그 주먹이 나를 향해 날아오는 모습도.




 각티슈에 맞고도 결국 사직서를 내지 못한 나는 매일 착실하게 출근길에 올랐다.  


 그런 꼴을 당하고 도대체 왜,라고 묻는다면

 무엇보다 나는 무력하게 지고 싶지 않았고, 내 힘으로 이 상황을 변화시킬 수 있으리라 믿었다.


 너무 순진하다고 느끼겠지만ㅡ그리고 그게 실제로 맞다ㅡ그때의 나는 그게 정답이라고 여겼다.



 불행 중 다행 혹은 더 큰 불행


 각티슈 사건 일주일 뒤 나는 사수가 제안한 신사업 아이디어 회의에서 질문을 던졌다가 어김없이 돌아오는 그의 짜증 섞인 무시를 감내하는 중이었다. 사수는 이번 약속만큼은 잘 지키고 있었다. 그는 각티슈를 포함한 어떤 물건도 ‘나를 향해’ 던지지 않았다. 대신 열 받을 때면 바닥을 볼펜으로 내리치는 새로운 취미를 만들었다. 나는 바닥과 볼펜에게 미안한 감정을 가져야 하는지 고마운 감정을 가져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회의는 그날도 조금 격정적인 방향으로 흐르고 있었다. 계속되는 무시에도 나는 지치지 않고 질문을 던졌다. 어쩌면 나는 사수의 화를 돋우고 싶었는지도 몰랐다. 전처럼 그가 이성을 잃고 한 번 더 내게 무언가 던져주길 바랐다.  자제력을 잃고 실수하기를. 나에게 조금만 더 확실한 탈출의 명분을 만들어주기를.


 그런 부질없는 상상과 그의 말에 대꾸를 반복하던 중 사무실에 전화가 울렸다. 곧이어 통화를 마친 올빼미가 우리에게 프로젝트 수주 소식을 알렸다. 나에게 각티슈를 맞힌 바로 그 제안서, 그 프로젝트였다. 사수와 나는 바로 직전까지 끓어올랐던 감정을 제쳐놓고 기쁨의 함성을 질렀다. 그 해 팀의 첫 프로젝트 수주였다. 4월에서야 처음으로 성과가 났다. 그걸 우리가, 해낸 것이다. 


 그야말로 팀의 경사였다. 자축하는 의미로 다 같이 점심을 먹기 위해 사무실을 나섰다. 나는 팀원들과 조금 떨어져서 평상시에는 말도 거의 섞지 않는 그들이 들뜬 채 농을 주고받는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나 역시도 들떴던 감정이 조금씩 천천히 가라앉기 시작했다. 차분해지다 못해 냉정해진 내면은 답을 구하기 어려운, 그러나 아주 명확한 질문을 띄웠다. 


 정말 기쁜 일인 게 확실해?



최악 대신 차악


 사실 분노에서 해방된 상태의 사수는 꽤 괜찮은 사람처럼 굴었다. 그는 맛있는 음식을 찾아 먹으러 다니는 것을 좋아했고, 영화도 즐겨 보았다. 가끔 그런 일상적인 얘길 하면서 어린애 같이 천진난만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 그럴 때면 나도 아무 경계심 없이 그와 사사로운 대화를 나누었다. 친구가 된 것 같다는 느낌도 받았다. 게다가 그는 나에 비해 업무 역량이 뛰어난 사람임엔 분명했고, 무엇보다 일에 대한 ‘일부’ 가치관은 잘 맞는 편이었다. 


 팀엔 물개 팀장과 K, 올빼미도 있었지만, 그들은 시간이 떠먹여 주는 권력의 노예와 같았다. 그저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연차가 늘고 직급이 올라간 사람들. 자신의 빈약한 역량을 들키지 않으려 전전긍긍하며 눈치껏 자리를 보전하고 있는 사람들. 일을 제대로 배우기 위해선 사수를 붙들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인성이 더 중요하지 않냐,라고 하면 나는 회사에선 일 못하는 게 제일 나쁜 인간이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었고,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이 없다. 


 게다가 그들은 겉으로 보이는 인자한 모습과 달리 알면 알수록 어딘가 찜찜한 구석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무엇보다 갱생 불가능한 건 물개 팀장이었다. 나보다 스무 살은 족히 많은 그는 말을 걸 때마다 은근히 내 어깨나 등을 툭툭 건드렸다. 대화 중에는 숨소리까지 느껴질 정도로 얼굴을 들이대기도 했다. 나는 그의 불쾌한 숨결에 아득해지는 정신을 붙잡으며 사수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눈빛을 보냈다. 사수는 그때마다 회의나 업무를 핑계로 나를 구출해주었다.


 어느 회식 자리에서는 화장실 가려던 나를 물개 팀장이 취한 채로 쫓아온 적도 있었다. 그때도 낌새를 눈치챈 사수가 따라와 팀장을 부축하는 척하며 데려갔다. 무슨 일이 벌어졌을지 모르는 아찔한 상황에 나는 술이 다 깬 상태로 도망치듯 집으로 돌아왔다. 그 이후로 나는 물개 팀장을 피해 다녔고, 팀 회의 때만 제외하곤 그와 말도 섞지 않았다. 그의 얼굴만 봐도 역겨웠고, 존재 자체가 끔찍했다. 그런 나를 못마땅해하는 K에게 솔직하게 전후 사정을 설명했다. K는 한심하다는 듯 쳐다보며 말했다.


팀장님은 여자나 남자 할 거 없이 누구한테나 그래요.
그냥 팀장님이 싫으면 싫다고 해요.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대. 


 최악보다는 차악. 나에겐 그다지 다양한 선택지가 없었다. 



나에 대한 욕심, 나를 향한 욕심


 팀의 첫 프로젝트는 자연스럽게 제안서를 쓴 나와 사수가 맡게 되었다. 나에게 결정권은 없었으나, 고생해서 따낸 프로젝트라 당연히 수행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나는 빨리 성장하고 역량을 키우고 싶었다. 욕심이었으나, 어쨌든 좋은 욕심이었다. 이제 진짜 ‘내’ 프로젝트를 할 수 있다, 라는 생각에 설레었고 잘 해내고 말겠다는 마음가짐도 컸다.


 하지만 어김없이 초반부터 사수와 나는 매번 삐걱거렸다. 그는 새로운 취미인 볼펜 던지기가 내게 충분히 효과적인지 매 회의 때마다 시험하고 있었다. 그러나 위협을 느끼기에는 볼펜은 너무 약하고 가냘팠다. 탁, 하고 또르르. 고작 그 정도 소음이 전부였다. 나는 굴러가는 볼펜을 보다가 그런 나를 지켜보던 사수와 눈이 마주쳤다.  


 사람은 자신과 닮은 욕심을 가진 사람을 금세 알아채는 법. 나는 그가 나만큼이나 조급하고 초조해하고 있다는 걸 느꼈다. 그는 분에 넘치는 욕심을 내고 있었다.  


 나만큼은 아니지만 사수 역시도 낯선 분야의 일이었다. 그러나 사수는 프로젝트도, PM 역할도 다른 팀원들에게 뺏기고 싶지 않아 했다. 그는 나만큼이나, 아니 나보다 훨씬 더 그들을 못마땅해하고 있었다. 매일 성과 없이 제안서만 쓰고 있던 그들은 어려운 프로젝트라 둘이 하기 힘들 거라며 은근히 참여하길 원했으나, 그런 기미가 보일 때마다 사수는 웃으며 말을 둘러댔다. 팀의 문화는 점점 가식으로 포장된 미소와 겉으론 드러내지 않는 서로에 대한 시기로 매워져 갔다.


그들의 말은 한편으론 일리가 있었다. 힘에 부치는 일이었고, 덕분에 사수의 예민함은 날로 늘어 갔다. 팀원들은 ‘어디 한 번 어떻게 하나 보자’라는 듯 뒷짐을 지고 지켜보고 있었다. 어떻게든 겉으로라도 일이 착착 진행돼가야 했으나, 사수와 나 두 사람으로는 무리였다. 그는 나 역시도 더 큰 역할을 해낼 것을 기대했다. 때로는 본인이 못하는 것까지 내가 해결해주길 바랐다. 


 나는 매일 퇴근길 리서치 자료와 각종 보고서를 들고 다니며 읽고 또 읽었다. 주말마다 스터디 카페에서 6시간씩 나머지 공부를 하고, 다음 주 있을 회의 자료를 미리 준비했다. 분에 넘치는 역할을 해내야 했다. 나는 욕심내고 있었다. 좋은 욕심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정도론 사수를 만족시킬 수 없었다.



시발, 점


 프로젝트는 초반부터 고객사의 까다로운 요청이 계속되고 있었다. 그는 몇 주간 눈에 띄게 인상이 달라져 갔다. 평소에는 적어도 나를 제외한 팀원들에겐 사람 좋은 척 허허실실 잘도 웃었으나, 마음이 조급해지니 연기도 맘처럼 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누가 말을 걸거나 사무실에서 조금만 소음이 생겨도 그는 미간을 찌푸린 채 한숨을 쉬거나 마우스를 집어던지곤 했다.


 나는 지워도 지워도 늘어만 나는 투두 리스트를 바라보며, 조금 버겁다고 사수에게 한탄을 했다. 마침 그와 나는 카페에서 커피를 받아 들고 사무실에 돌아가려던 참이었다. 내 말에 사수는 다짜고짜 들고 있던 커피를 바닥을 향해 집어던졌다. 나는 놀라 비명을 질렀다. 소리는 나왔으나, 몸은 얼은 채 그 자리에서 꼼짝하지 못했다. 주위 사람들의 시선이 나에게로 모였다. 나는 뜨거운 라떼가 흐르는 아스팔트와 멀어지는 사수의 뒷모습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카페 문을 나서자마자 벌어진 일이었다. 유리문 안쪽에서 황당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바리스타와 눈이 마주쳤다. 나는 멋쩍게 웃으며 그에게 눈인사했다. 오해하지 마세요. 커피가 맛이 없어서 그런 게 아니에요. 이게 분노조절장애라는 건가 봐요. 저도 이번에 처음 겪었답니다. 


 라떼를 던질 때 그는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다만, 


 시발!
하고 많은 의미가 함축된 감탄사만 내뱉었을 뿐.


 사수는 더 이상 물건으로 나를 치거나 하지는 않았다. 대신 원래도 매일 날카롭게 갈아온 말이라는 무기에 욕을 박아 넣었다. 나는 매일 말로 맞고 찔려야 했다. 재밌게도 말이 남긴 상처는 잘 드러나지 않았고, 숨기려면 쉽게도 숨겨졌다. 나조차도 상처가 난 줄 모를 때도 있었다. 

 

 나는 ‘시발’이라는 말이 웃기다고 생각했는데 내 상처는 하나도 웃겨하지 않았다. 



손에 쥔 약점


 나보다 몇 년은 더 먹고 만큼 사수는 이런저런 요령도 많았다. 그는 내가 이 프로젝트에 꽤 많은 것을 걸었다는 걸 금세 알아챘다. 그리고 그걸 아주 잘 이용했다. 사수는 내가 자신의 말에 반박하거나 그가 시키는 거짓말을 내켜하지 않을 때마다 업무의 권한을 줬다 빼앗기를 반복했다. 내게 맡겼던 업무를 그럴 가치도 없다는 듯 다시 거둬갈 때마다 나는 큰 자괴감을 느꼈다. 


 일도 제대로 못하면서, 할 줄 아는 것도 없으면서, 내가 또 따지고 들었구나. 

 나는 도대체 잘하는 게 뭐지. 왜 성격만 이렇게 나쁜 거지. 


 나는 그에게 아주 손쉬운 상대였다. 사수와 나의 동등한(줄 알았던) 관계는 그렇게 다시 전세가 바뀌었다. 나는 위축되었고, 그의 말과 행동 하나하나에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사수는 그런 내 모습을 가만 지켜보다가 자신이 다시 승기를 잡았다는 것을 알아챘다. 그는 이제 감정이 격해진 상태에서만 욕을 쓰지 않았다. 팀원들이 없는 자리에서는 서두부터 시발, 을 달고 시작했다. 어떨 때는 말의 시작과 끝에 모두 시발, 이 붙을 때도 있었다.


 시발은 다양하지만, 매번 뻔하게 쓰였다. 


 내가 말을 못 알아듣거나 답답할 때면, 한숨을 내쉬며 ‘하, 시발’ 

 자신의 말에 반박이라도 할라치면 ‘시발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뭔데’

 일이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땐 ‘시발 진짜 미쳐버리겠네’


 물론 오직 내 앞에서만 이었다. 


 욕이라는 게 원래 자주 쓰면 본래 가진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고 하는데 이상하게 사수의 ‘시발’은 뭔가 달랐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내 심장이 미간으로 옮겨온 게 아닐까 생각했다. 심장이 쿵쾅거리는 소리가 원래 이렇게 잘 들리나? 


 나는 나도 모르게 꽉 쥐고 있던 손을 폈다. 손바닥에 빨갛게 남은 손톱자국을 바라보며 얼른 시발과 친해져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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