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민 Sep 14. 2019

디즈니랜드는 좋아하지만…

파리에서의 네 번째 날, K와 나는 파리 외곽에 있는 디즈니랜드로 향했다. 오늘 일정은 오로지 K를 위한, K에 의한 일정이었다. 난 유니버설 스튜디오는 좋아하지만, 디즈니랜드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게다가 프랑스 파리에서 디즈니랜드라니…. 파리의 디즈니랜드는 디즈니랜드 중 가장 망한 곳이라고 평가받는 곳이었다. 그래서 난 굳이 갈 필요가 없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K는 달랐다. K는 이미 여러 나라의 디즈니랜드를 섭렵한 ‘디즈니 덕후’였다.


값비싼 입장료가 조금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난 기꺼이 K의 디즈니랜드행에 동참했다. 지난날, 파리의 무더위가 만만치 않음을 느낀 우리는 니스에서 입으려고 했던 시원한 휴양지룩을 꺼내 들었다. 휴양지도 아닌 도시에서 노출이 심한 옷을 입는 게 예의가 아니진 않을까 고민하기도 했지만, 파리의 더위를 이겨낼 방법은 이것뿐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 기준에 노출이 심한 옷이었지, 개성 강한 파리 시민들 틈에서 내 휴양지룩은 노출 축에도 끼지 못했다.)


K와 나는 디즈니랜드로 향하는 메트로를 탔다. 일반 메트로와 달리 노선이 길고, 요금도 조금 더 비싼 노선이었다. 공항철도처럼 깨끗한 메트로를 타고 40여 분을 달린 것 같았다. 차고지로 향하는 열차처럼 메트로 안에는 나와 K, 그리고 누가 봐도 디즈니랜드에 가는 게 틀림없는 꼬마들과 그들의 부모만 남아 있었다. 늘 북적이는 지옥철만 타다가 텅 빈 열차를 타는 건 오랜만이었다.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

열차에서 목적지에 도착했음을 알리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열차의 유일한 손님이었던 우리와 꼬마들은 경쾌한 발걸음으로 열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꿈과 모험의 세계, 디즈니랜드로 들어갔다. 


K가 미리 e티켓을 프린트해 왔기 때문에 우리는 오래 기다리지 않고 빠르게 디즈니랜드로 입장했다. 파리의 디즈니랜드는 크게 디즈니랜드와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 두 개 구역으로 나뉜다. K와 나는 두 군데를 모두 들어갈 수 있는, 그러니깐 가장 비싼 티켓을 구매했다. (나중엔 가장 저렴한 티켓을 살 걸이라는 후회가 들었다. 내가 왜 그런 마음이 들었는지는 뒤로 가면 알 수 있다.)

디즈니 성

본격적인 디즈니랜드 투어가 시작됐다. 우리는 디즈니 영화에 가장 먼저 등장하는 디즈니 성을 지나 재미있는 놀이기구가 있는 곳에 들어섰다. 나는 놀이공원 지도를 펼치고 “어디 먼저 갈까?”라고 물었다. K는 주저하지 않고 “미키마우스 하우스!”라고 말했다. 미키마우스 하우스가 뭘 하는 곳인지는 잘 몰랐지만, 나는 일단 K를 따라 미키마우스가 있다는 그곳으로 갔다. 


미키마우스 하우스에 도착하고서야 알았다. 이곳이 미키마우스의 방에서 미키마우스와 사진을 찍는 장소라는 걸. 미키마우스 하우스에는 미취학 아동들과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아이들이 줄을 서 있었다. (거기에 성인 여자는 우리 둘뿐이었다. 아이들의 부모를 제외하고) 미키마우스 애니메이션이 무한 반복되는 미키마우스 하우스에서 K와 나는 1시간을 기다렸다. 그리고 긴 기다림 끝에 미키마우스와 찍은 사진 한 장을 얻을 수 있었다. 


 참으로 허무한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내가 미키마우스랑 사진 한 장 찍자고 한 시간이나 기다렸다니…. 절망적이었다. 다음 코스는 조금 더 신나는 곳이기를 바랐다. 하지만 K는 놀이공원은 좋아하나 놀이기구를 전혀 못 타는 그런 유형의 사람이었고, 디즈니랜드에서 K와 내가 즐길 수 있는 거라곤 고작 인형 탈을 쓴 직원들과 사진을 찍는 것뿐이었다. 


원화로 십만 원 즈음되는 티켓 가격이 아까워서라도 이대로 디즈니랜드를 떠날 순 없었다. 나는 다시 놀이공원 지도를 펴고 우리가 갈 수 있는 장소들을 차근차근 찾아보았다. 하지만 기껏해야 꼬마 열차를 타고 영화 기법을 체험하는 것, 어디서나 먹을 수 있는 피자, 햄버거 따위를 먹기 위해 식당에 가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우리가 갈 수 있는 장소 중에 어린이들을 위한 놀이터도 있었으나, 성인 여성이 정글짐을 타고 놀 순 없는 노릇이었다.) 


“아니, 너는 놀이기구도 못 타면서 디즈니랜드는 왜 왔어?! 이럴 거면 디즈니 스토어를 가면 됐잖아!”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카페 가는 걸 좋아하지만, 커피를 마시지 못하고 디즈니를 좋아하지만 디즈니랜드에서 놀이기구를 단 하나도 탈 수 없는 게 바로 K였으니까….


기분 전환이 필요했다. K와 나는 일단 더우니깐 점심이나 먹으러 가자고 했다. 우리는 디즈니랜드 안에 있는 여러 레스토랑 중 햄버거 가게에 들어갔다. 우리는 각각 버거와 사이드 메뉴를 주문하고 자리에 앉았다. 우리가 간 햄버거 가게는 작은 공연과 함께 식사를 할 수 있는 곳이었다. 그날 공연은 스타워즈. 스타워즈 분장을 한 직원들이 무대 위에서 함께 악당을 무찌를 아이들을 모집했다. 10여 명의 아이들이 무대에 올랐고 그들은 망토와 광선 검으로 영화 속 주인공이 된 듯한 기분을 냈다. 


곧이어 “빰빰빰 빰빠밤 빰빠밤” 스타워즈 하면 떠오르는 바로 그 음악이 흘렀다. 그리고 무대 위에 악당이 나타났다. 악당이 나타나자 아이들은 방금 직원에게 배운 검술로 차례차례 악당을 물리쳤고, 엄마 아빠의 큰 환호성을 받으며 무대 아래로 내려갔다. 이게 내가 파리 디즈니랜드에서 본 가장 재미있는 장면이다. (파리 디즈니랜드에 가거든 꼭 라따뚜이라는 놀이기구를 타 볼 것을 추천한다. 모두가 가장 재미있는 놀이기구라고 추천하는데, 나는 그 앞 벤치에서 놀이공원 지도만 뚫어져라 쳐다보기만 했다.) 

안녕, 설리. 안녕 디즈니랜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기에 우리는 결국 몇 시간 만에 디즈니랜드를 떠나기로 했다. 우리는 마지막으로 몬스터 주식회사에 나오는 설리와 인증사진을 찍고 디즈니랜드를 나왔다. 디즈니랜드 출구에는 커다란 디즈니 스토어가 있었다. 기념품을 사기 위해 들린 그곳에서 K는 다시 활기를 되찾았다.


우리는 각자 찢어져 기념품을 샀다. K는 거기에 있는 모든 제품을 쓸어 담을 듯한 기세로 눈여겨봤던 것들을 모두 장바구니 담았다. 나도 얼마 전 태어난 조카를 위한 기념품을 샀다. 오늘 함께 사진 찍은 미키마우스 빨대 컵 하나, 그리고 미키마우스와 미니마우스 마그네틱. 그게 내가 산 전부였다. 

미키마우스로 시작해 미키마우스로 끝난 디즈니랜드 투어

계산대에서 만난 K는 일일이 나열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물건을 샀다. “어머, 이거 너무 귀여워!”를 연발하며 장바구니를 채워갔을 K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날 K는 디즈니스토어에서만 몇만 원어치 쇼핑을 했다. 샹젤리제 거리에도 디즈니스토어는 있는데, 굳이 디즈니랜드 앞에 있는 디즈니스토어까지 찾아와서 말이다. 


돌아가는 길, 나는 다시 한번 생각했다.

디즈니랜드는 좋아하지만, 놀이기구는 못 타는 K에 대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