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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민 Sep 12. 2019

파리 제일의 우동 맛집 그리고 센 강

K와 약속한 2시간이 지났다. 아쉬움에 미술관에서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다음에 또 올 기회가 있겠지!”라고 생각하며 오랑주리 미술관을 나섰다. 올 때와 달리, 건물 밖으로 나가는 내 두 손엔 무언가 가득 들려있었다. 미술관 기프트샵에서 산 기념품들이었다. 전시의 감동이 채 가시기 전에 나는 미술관 1층에 있는 기프트샵에 들렀다. 엽서를 사기 위해서였다.


엽서 모으기는 나의 수많은 취미 활동 중 하나였다. 미술 전시를 다니면서 지금까지 모은 엽서만 수백 장이 넘었다. (그렇다. 나는 기프트샵의 큰손이었다.) 나는 좋아하는 작품이 그려진 엽서를 차곡차곡 모았고, 특별한 날 엽서에 편지를 써 친구들에게 선물했다. 

엽서 수집은 모을 때보다 모은 엽서를 누군가에게 선물할 때 더 큰 즐거움이 된다.

전시가 인상 깊었던 만큼 사고 싶은 엽서도 많았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작품들이 하나같이 엽서 꽂이에 진열되어 있지 않았다. 그래서 난 몇 가지 엽서만 손에 들었고, 대신 내년 달력과 티코스터 세트를 장바구니에 넣었다. 나에게는 에펠탑 열쇠고리와 마그네틱보다 더 가치 있는 기념품이었다.


뿌듯한 마음으로 미술관을 나서며 나는 휴대전화를 열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K에게 열 개가 넘는 카톡이 와 있었다. 휴대전화를 진동으로 해놨지만, 분명 메시지가 오면 진동이 울렸을 텐데…. 나는 진동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오랑주리 미술관 안에서는 휴대전화가 잘 터지지 않았다.) 부랴부랴 메시지를 확인하고 K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디야? 미안!

미술관 안에서 휴대전화가 잘 터지지 않아서 메시지 온 지 몰랐어….”


나는 변명 아닌 변명을 늘어놓고, K에게로 얼른 발걸음이 옮겼다. 


K와 나는 튈르리 공원의 중간지점에서 만났다. 우리는 2시간 동안 어떤 일이 있었는지 이야기하며 점심 식사 장소로 향했다. 오늘의 점심은 일본식 우동. 처음 K가 점심에 우동 먹으러 가자고 했을 때, 나는 파리까지 와서 웬 일본식 우동이냐고 볼멘소리를 했었다. 하지만 K는 파리지앵도 줄 서서 먹는 우동집이라며 나를 설득했고, 나는 그 설득에 넘어갔다. 


K의 말이 전혀 근거 없는 말은 아닌 듯했다. 우동집은 이미 점심식사를 하는 현지인들로 가득했다. 한국인 관광객의 모습도 눈에 띄었다. K와 나는 대기행렬에 합류했다. 앞에 꽤 많은 사람들이 서 있었지만, 이제 와서 다른 음식점을 찾아 헤맬 순 없었다. (참고로 말하면, 나는 원래 맛집에서 줄 서서 들어가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나에게 대기시간은 10분 미만. 10분이 넘게 기다려야 한다면 나는 다른 곳을 가는 편이다.)


처음엔 다른 음식점을 찾아 헤매는 게 귀찮아서, 나중엔 얼마나 맛있길래 이렇게 사람이 많나 궁금해서 30분 가까이 되는 대기 시간을 기다렸다. 드디어 우리 차례가 되었다. K와 나는 야외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조금 있으니 일본인 점원이 일본어와 영어로 쓰인 메뉴판을 가져다주었다. 그러곤 한국인 메뉴판이 필요하면 말해달라고 덧붙였다. (이때 알았다. 여긴 파리지앵에게도 인기 있는 곳이었지만, 한국인 관광객들이 사랑하는 곳이라는 걸.) 


엉터리 해석이 난무하는 한국어 메뉴판을 보는 것보다는 일본어 메뉴판을 읽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해외에서 한국어 설명서, 한국어 메뉴판이 제대로 된 걸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특히 한국인이 운영하는 곳이 아닌, 외국인이 운영하는 곳일 경우엔 말이다.) K는 대학에서 영어와 일본어를 전공했다. 그리고 난 제2외국어로 일본어를 익혔기에 초중급 수준의 일본어는 구사할 수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일본어 메뉴판을 보고 냉우동과 비빔우동, 그리고 시원한 맥주 2잔을 주문했다. 


우동이 입에 맞지 않을 리 없었다. 뜨끈한 국물이 있는 운동은 아니었지만, 여름에 먹기에 꽤 괜찮은 색다른 운동이었다. 우리는 우동 2그릇과 맥주 2잔을 깨끗이 비운 뒤 가게를 나섰다. 


다음 일정까지는 조금 시간이 있었다. K와 나는 숙소로 바로 돌아갈까 고민하다가 콩코드 광장에서 센 강을 따라 조금 걷기로 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우리는 콩코드 광장에서 숙소까지 걸어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지도상에서는 거리가 얼마 되지 않아 보였기 때문에….) 센 강 건너로 과거 기차역이었다는 오르세 미술관 건물이 보였다. 오르세 미술관 건물을 똑바로 본 건 처음이었다. 5년 전에도 오르세 미술관을 다녀갔지만, 그때는 메트로를 타고 이동했던 터라 건물을 자세히 보진 못했다. 그래서 왠지 새로운 느낌이 들었다. 5년 만에 돌아온 파리에서는 5년 전에 보지 못했던 것들을 많이 보게 되는 것 같다. 


나의 왼편으로 오르세 미술관이 보였다면, 오른편에는 그랑팔레가 있었다. 그랑팔레는 파리 만국 박람회 때 지어진 건물인데, 지금은 미술관과 박물관 등으로 사용되고 있다. 사실 그랑팔레 역시 가보고 싶은 곳 중 하나였다. 하지만 아직 나에게는 가야 할 미술관이 너무 많이 남아 있었고, 모든 일정을 미술관에서만 보낼 수 없어서 그랑팔레 국립 갤러리는 과감하게 생략했다. 그렇지만 약간의 아쉬움은 남았다. 그래서 난 남몰래 “아침에 조깅하면서 그랑팔레 앞까지 가봐야겠어!”라고 다짐했다. (하지만 결국 그건 이루어지지 않았다.)

여행 중 우리는 자주 센 강변에 앉아서 휴식을 취했다.

지도상으로는 짧게만 보였던 거리가 너무나 길게 느껴졌다. 아무래도 쨍쨍한 날씨 탓인 것 같았다. K와 나는 처음엔 다른 관광객들처럼 눈앞에 보이는 풍경들을 사진으로 담으며 패기 있게 출발했다. 하지만 곧 무더운 날씨에 지쳐버렸고, 이내 센 강변에 주저앉았다. 햇볕이 너무나 뜨거워서 더는 걸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강변에 앉아 우리는 잠시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가만히 앉아 있으니 솔솔 바람도 불고 시원해지는 것 같았다. 센 강에 앉아서 바라보는 풍경도 좋았다. 관광객을 가득 태운 유람선이 우리 앞을 지나갔고, 살랑이는 바람결에 나무들이 흔들려 샤르륵 샤르륵 나뭇잎 부딪치는 소리를 냈다. 저 멀리서 노트르담 대성당의 종소리도 들렸다. “댕~댕~” 울리는 종소리가 어찌나 아름답던지 방금 전까지 느꼈던 힘듦은 모두 잊어버렸다.

아무 생각 없이 앉아만 있어도 저절로 힐링이 되는 공간, 센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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