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에서 살 집을 찾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가장 큰 문제는 뭐니 뭐니 해도 '돈'이다. 서울보다 작은 맨하탄에 모두가 기회를 찾기 위해 모여 살다 보니 뉴욕 시는 물론이거니와 주변 지역도 말도 안 되는 렌트비를 자랑한다. 현재 남편과 나는 지금 남편이 취업을 하며 들어와 살게 된 스튜디오에서 살고 있다. 우리 동네는 맨하탄과 강을 하나 낀 롱아일랜드라는 곳이지만 지하철로 한 정거장이면 맨하탄으로 들어갈 수 있는 장점 탓에 한때 공업단지여서 아무도 살지 않던 이곳은 이제 신축 럭셔리 아파트들로 가득하다. 그 덕에 우리 동네엔 없는 게 없다. 맨하탄에서 핫하다는 음식점들도 우리 동네에 분점을 낼 정도니, 사실 이곳에 살면서 단 한순간도 부족함을 느낀 적이 없다.
"원베드룸으로 언제 이사가?"
남편의 지인들을 만나면 그들은 으레 우리에게 언제 이사 갈 것인지 묻는다. 우리도 작년만 하더라도 당연히 여름 즈음에는 이사를 갈 줄 알았더랬다. 그런데 생각보다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뉴욕의 물가가 워낙 비싼 데다 이것저것 내야 할 걸 내고 나면 남는 게 별로 없었기에 현재 상황에서 원베드룸으로 옮기는 것이 과연 현명한 선택일지에 대해 우리 부부는 고민하게 되었다. 그럼 렌트가 지금보다 낮은 엘에이로 이사를 갈까 싶기도 했지만 이제 막 뉴욕에 와서 적응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엘에이로 떠나 모든 걸 새롭게 적응할 생각을 하니 생각만 해도 가슴이 벌렁댔다. 사실 엘에이에 가더라도 남편의 연봉은 똑같기도 하거니와 한국과도 더 가까워져서 안 갈 이유가 없는데도 말이다. 그렇게 우리 부부는 다시 뉴욕에 남기로 결정했고, 그렇다면 이사 시즌에 조금 더 싼 동네를 가서 살아볼 요량이었다. 하지만 며칠 전, 낯선 사람이 등교하는 나를 따라오다 이를 지켜보던 아파트 관리인에게 딱 걸려 경찰까지 오는 사건이 터지며 남편은 다시금 비싸더라도 치안이 보장되는 우리 동네에 살기로 다시금 마음을 먹게 되었다. 그렇다면 방법은 단 하나, 렌트가 내려갈 때까지 기다리는 것.
남편의 말에 따르면 뉴욕의 렌트 시장은 여름이면 유학생들과 직장인들이 몰려들어오는 탓에 가장 바쁘다고 한다. 그리하여 여름의 렌트비는 겨울에 비하여 많게는 500불가량 차이가 나기도 한단다. 그래서 남편은 지금 현재 머물고 있는 스튜디오 계약이 끝나는 11월까지 적당한 가격의 아파트가 나오지 않으면 겨울에 이사를 가자고 내게 말했다. 그리고 나는 그의 마음이 어떠할지 누구보다 잘 알기에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뉴욕에 남편을 따라오기로 결정을 했을 때부터 나의 인생은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결혼식을 준비하며 기다림, 이민을 준비하며 기다림. 이제 한숨 돌리나 싶었는데 미국에 입국하니 영주권을 받기 위해선 또 여러 가지 이행해야 하는 숙제가 많았다. 근처 구청에 들러 도장만 찍으면 끝나는 한국의 혼인신고와는 다르게 여기서는 결혼 라이센스(marriage license)를 받은 이후에 결혼증명서(marriage certificate)를 받을 수 있다. 이를 받기 위해선 무조건 예약을 해야만 했고, 우리는 가장 빠른 날짜에 예약을 했음에도 한 달여를 기다려 결혼증명서를 받았다.
그렇다면 이제 이게 끝이냐? 아니, 제일 중요한 것. 바로 임시영주권 신청이라는 가장 큰 숙제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사실 이번 달 초에 임시영주권을 신청하려 남편과 함께 카페에 갔지만 그곳에서 우리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영주권 신청 비용이 생각보다 많이 든다는 것이었다. 큰 금액을 바로 지불할 수 없었던 형편 탓에 우리는 영주권 신청을 조금 미루기로 하여 드디어 다음 주에 영주권을 신청하기로 했다. 이 상황에서 또 하나의 문제에 우리는 직면하게 되었다. 바로 콤보카드를 신청할 것인지 말지에 대한 여부였다.
콤보카드란, 약혼자 비자로 입국한 사람들이 통상적으로 영주권을 신청할 때 함께 신청하는 것으로 미국 정부에서 내주는 여행허가서와 근로허가서를 말하는 것이다. 임시영주권은 통상적으로 8개월 안에 다 나온다고는 하나, 사실 그보다 더 오래 걸리는 경우도 허다해 한국에 가야 할 일을 대비해 사람들은 여행허가서를 신청하고, 또 영주권이 나오기 전에 일을 하기 위해 근로허가서 또한 신청한다. 그래서 우리 부부도 영주권을 신청하며 콤보카드를 신청하려 했다. 그런데 남편이 갑자기 여행허가서 신청을 일단 미루자고 하는 것이었다.
최근 남편의 지인을 만나 식사를 하던 중, 그녀가 나와 같은 상황에 있는 그녀의 지인 중 한 명의 임시영주권이 두 달이 채 되지 않아 승인이 났다는 소식을 우리에게 알려주었었더랬다. 남편은 이 생각이 났던지 우리도 영주권이 빨리 나올 수 있고 여행허가서 신청이 의미가 없으니, 700불을 아낄 겸 지금은 접수하지 말고 8월까지도 영주권이 나오지 않는다면 그때 여행허가서를 신청하자는 것이었다.
순간 나의 가슴이 다시금 벌렁거리기 시작했다. 만일 영주권이 12월 전에 나오지 않는다면? 게다가 8월에 여행허가서를 넣는다 한들 삼 개월 안에 나오지 않는다면? 겨울에 만나기로 한 가족과 친구들의 얼굴이 내 앞을 스쳐 지나갔다. 이곳을 오기도 전에 계획해 두었던 2025년 겨울의 계획이 틀어질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씁쓸해졌다. 그렇지만 나는 그저, 또, 남편 앞에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우리의 현재 모든 상황이 '돈'과 맞물려 있기에 내가 근로허가서를 받고 일을 할 수 있게 되면 이 상황이 달라질 것인가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나의 결론은 '아니'였다. 돈을 번 만큼 쓰면 결국 씀씀이만 커질 뿐이고 시간이 흐를수록 우리는 계속해서 더 많이 벌어내야만 할 것이다. 결국 우리 부부에게, 그리고 나에게 현재 필요한 것은 돈을 더 많이 버는 것이 아닌 현명하게 돈을 관리하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게 관점을 바꾸고 나니 내가 처한 모든 상황이 감사하게 느껴졌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이 비록 작지만 정말 불편한 것 하나 없는 동네에 있다는 것. 교통과 치안이 좋아 내가 불안함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 작은 집에 부대끼며 살면서 서로 싸우지 않고 사이좋게 지낸다는 점. 그로써 나는 이곳에 좀 더 오래 머무는 것을 받아들이게 되었고 그러면서 사실 딱히 이사를 해야만 할 필요도 찾지 못하게 되었다. 지금 집에서 모든 걸 누리고 있었는데 그저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휘둘려 이사에 급급하지 않았나 싶기도 하고.
그렇게 두 달여 동안 아마존 장바구니에 담겨 있기만 하던 초록색 가죽 시트의 의자와 여름용 리넨 침대 커버를 구매했다. 본래는 이사를 하고 나서 사려고 했던 것이었지만 기왕 이렇게 된 거 이 집을 예쁘게 꾸며서 한동안 지내기로 결심했다. 새로 구매한 식탁용 의자는 생각보다 더 괜찮았다. 기존에 있던 식탁 의자는 벤치형이라 딱딱했던 반면 새로운 의자는 크고 폭신해 몇 시간이고 내리 앉아있을 수 있을 정도였다. 이사를 가서 사는 것이 어떻겠냐던 남편도 앉아보더니 연신 의자가 너무 좋다며 아이처럼 좋아했다. 그런 남편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뭔가 모르게 마음이 짠해지며 결혼한 것이 새삼 실감이 났다.
뭘 하더라도 내가 좋아하는 걸로, 내가 필요한 건 다 해주려고 하는 내 남편.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남편은 내게 한결같은 모습이다. 대학생 시절 내가 중국에 있는 동안 그는 힘들게 학원 알바를 해 중국까지 나를 보러 오기도 했고 용돈을 300불만 받던 그의 로스쿨 학생 시절에도 없는 용돈을 모아 내게 에어팟을 사 생일선물이라고 건넸더랬다.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남편의 용돈이 생각보다 적었다는 걸 알게 된 후에 왜 그 사실을 내게 알리지 않았냐고 물었는데 남편은 내게 부담을 지우고 싶지 않아서라고 말했다. 그땐 배달비를 아끼기 위해 눈보라를 뚫고 버거킹을 가 햄버거를 사 먹었다고 웃으며 말하는 그의 말에 그때 당시엔 함께 웃었지만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저 짠하다.
그런 남편이기에 지금 처한 상황이 누구보다 답답하게 느껴질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남편의 결정에 그저 끄덕임으로 응한다. 한겨울에 한국에서 가족을 보지 못하더라도, 괜찮아. 내가 선택한 가족은 한국에 있는 가족이 아니라 너니까. 넓은 집에 가지 않더라도 괜찮아. 내가 선택한 건 넓은 집이 아닌 너니까. 기다리는 것도 괜찮아. 언제나 멀리서 서로를 기다렸던 과거와는 다르게 이젠 함께니까. 그 기다리는 시간을 누구보다 아름답고 풍성하게 채워나가 보는 거야. 그 시간이 헛되지 않게.